클라이밍 최애템
클라이밍의 최대 장점은 장비가 심플하고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다는 점이다. ‘아니 신발하나에 이십 만원이 넘는데?’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등산, 테니스, 당구, 악기 류 등등 어떤 취미활동을 한들 이십 만원에 중급 장비가 구비된다는 점은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실내 클라이밍 한정의 이야기)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쵸크나 테이프, 가격도 1만 원 내외이고 그마저도 선택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가격 부담이 없는 편이다. 난 초크나 테이프도 바리바리 챙기는 것이 귀찮아져서 암벽화만 달랑 들고 운동을 다니곤 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워낙 손이 건조해 굳이 초크를 바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만큼 경제적 취미 활동을 추구하는 내가 달랑 50g에 2만 원을 육박하는 클라이밍 아이템을 필수로 상비하게 되었는데 그 제품은 바로 ‘그랜즈 레미디‘. 일명 할머니 뼛가루다. 별명은 괴랄하지만 신발냄새 예방에는 이만한 제품이 없다. 이 제품이 나의 클라이밍 필수템이 된 일에는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무난히 매드락 초급화를 벗어나 처음으로 중급화를 구매한 뒤 일어난 일이었다. 신다 보니 늘어난 매드락은 양말을 신어야 딱 맞는 사이즈가 되었고 늘 양말을 신고 운동하던 나는 맨발에 땀이 나는 일이 없어 몰랐던 것이다. 여름날 맨발의 암벽화가 그렇게 위험한 줄은…네 시간 정도 발바닥에 땀나게 운동을 하고 차 뒷좌석에 던져둔 암벽화는 여름날 뜨거운 열기로 빠르게 삭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르고 친구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떠난 나. 차를 타자 스멀스멀 올라오는 발냄새에 우리는 서로 한동안 어색하게 침묵해야 했다. 냄새의 범인이 암벽화임을 알게 되고 나서 친구가 선물해 준 ‘그랜즈 레미디’. 친구는 이미 시작된 냄새를 없애주진 않지만 악화되는 건 막아줄 거라며 건넸다. 가루를 쓸 때마다 그날의 민망함과 미안한 마음을 담아 암벽화 안을 가루로 뽀얗게 채웠다.
그 뒤로 두 번 더 암벽화를 바꿨지만 나는 여전히 그랜즈 레미디를 사용한다. 운동을 마칠 때마다 그날을 떠올리며 냄새가 시작될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할머니 뼛가루를 뽀얗게 탕탕 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