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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위로 Jun 24. 2015

취향의 문제

"내 취향이야"라는 말


    무심코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노래가 있었다. 매일은 아니어도, 가끔 찾아 듣곤 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듣기 싫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가수나 노래 자체의 잘못이 아니었다. 단지 그 음악을 즐겨듣던 누군가가, 내게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내 경우에만 해당하는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사람이 싫어지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거의 모든 것이 싫어지곤 한다. 그 사람이 좋아라했던 대상을 마주하면서,


아마 그 사람은 여전히 이걸 좋아하겠지,
그런데 나까지 아직도 좋아하고 있는 건 뭔가 분하잖아.

라는, 사실 말도 되지 않는 이유 때문이다.

    똑같은 이유로, 그 사람이 좋아하던 TV 프로, 그 사람이 자주 가던 곳, 그 사람이 잘하던 것, 그 사람이 즐겨 먹던 음식... 그렇게 그 사람과 관계된 모든 것에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하지만 취향의 문제는 사실 이렇게 변덕스러워서는 안 될 것 같다. 무릇 하나의 대상에 "내 취향이야"라는 말을 덧붙이려면, 그것은 어떠한 상황이 되어도 끝까지 좋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비슷한 논리로, 한끝 차이인 감정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특히 그렇다.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좋던 사람도, 다시는 마주치지 않았으면 싶을 만큼 싫어지는 순간이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내 결론은 이렇다. 그건 연애지, 사랑이 아니었던 거다.

    단순히 '저 사람과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내가 만나는 사람이거나 나를 만나는 사람과의 연애는 척 봐도 견적이 나온다. 상대의 취향이나 성격 같은 건 그다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서로 호감만 있으면 그만이지, 무언가를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다르다.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을 가장 먼저 위하게 되고, 무엇보다 그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또 내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그 사람과 나는 무엇이 같은지 또 다른지, 오래도록 고민하게 된다.

    이렇듯 취향의 문제나 감정의 문제는 절대 단순하지 않다. 그러니 우리는 섣불리 취향을 말하고, 감정을 앞세우기 전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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