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22
몇 주 전 친구들과 홍대에 갔다. 비가 찔끔찔끔 내리기에 비닐 우산을 샀고, 이내 잃어버렸다. 그리고 신경 쓰지 않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역에 내리니 굵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두고 온 우산이 떠올랐다.
짐을 추스르려 화장실에 갔는데 화장대에 비닐 우산이 하나 놓여 있었다. 나는 한참 그 앞에 서서 주인을 기다리다가, 우산대 하나가 부러진 것을 확인하고 그것을 주워 밖으로 나왔다.
주운 우산을 쓰고 돌아오는 내내 이것은 다정인가 아닌가에 대하여 생각했다. 내가 두고 온 우산은 다정이 됐을까 쓰레기가 됐을까 그것도 생각했다. 여튼 나는 덕분에 비를 맞지 않아 좋았다.
어릴 땐 종종 비를 맞았다. 지금이야 삼천 원짜리 우산 몇 개쯤 사고 버려도 끄떡없지만 용돈 타 쓰던 학생 시절엔 아니었다. 엄마 아빠는 늘 회사에 있었으므로 소나기가 내리면 나는 곤란해졌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때부터 늘 접이식 우산을 챙겨줬다. 학기 초 내 사물함 한편엔 언제나 접이식 우산이 있었다. 한 번도 펴보지 않고 버리는 해가 더 많았다.
학교 안까지 차를 끌고 들어와 딸이 비 한 방울 맞지 않게 하려는 엄마들을 보면 오, 저런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당시엔 바람막이 점퍼가 유행이었고 방수 기능이 제법 괜찮았다. 나는 모자를 눌러쓰고 집까지 걸었다. 걷는 동안 마주친 어른들이 우산을 자꾸 씌워주려고 했다.
어머 얘, 이리로 들어와. 집이 어디야?
엄마 같은 얼굴들. 나는 한사코 거절하며 계속 걸었다. 지금이었으면 감사합니다! 하고 얼른 웅크린 채 우산 밑으로 들어갔을 텐데. 어떤 치기였다. 명치가 답답했다.
집에 가니 엄마가 있었다. 어느새 퇴근 시간이었다. 왜 전화를 안 받았느냐고 다그쳤다. 휴대폰을 열어보니 부재중 전화가 몇 통 찍혀 있었다. 나는 현관에 서 있고 엄마는 수건을 가져와 나를 벅벅 닦았다.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날은 비를 맞은 탓인지 저녁도 먹기 전에 잠들었고 잠결에 엄마가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 비를 다 맞고 걸어왔다니까. 속상해 죽겠어. 이래서 다들 그만두는구나 싶고…….
곧이어 엄마가 내 바람막이를 손빨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퇴근하자 엄마는 내가 비를 쫄딱 맞고 온 얘기를 또 했다. 아빠가 내 방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가 닫았다. 나는 눈을 감고 전부 듣고 있었다. 비가 와서 참 좋다고 생각하면서. 이것은 확실한 다정이다.
나는 아직도 철들지 않아서 비가 오면 감쪽같이 새살이 차오른 약간의 결핍을 더듬어보면서 웃는다. 엄마는 나와 살며 몇 번이나 속상했을 것이다. 나는 그저 히히 웃고 쿨쿨 자는데. 그래도 나는 이 기억으로 아주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 오래. 이것은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