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은 늘 언제나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등을 긁어달라고 한다. 오늘도 문 앞에서 신발을 신기 직전에 그의 등을 긁어줬다. 연애할 때는 등으로 시작했지만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긁기의 범위도 점점 넓어져 갔다. 등, 날갯죽지, 뒷목, 두피, 팔, 팔꿈치, 손가락, 손목, 배, 허리, 엉덩이, 엉덩이와 허벅지의 연결지점, 허벅지, 종아리, 뒤꿈치, 발등, 발가락, 심지어 발가락 사이사이 까지도 긁어달라 아우성이다.
알고 있다.
신랑이 왜 긁어달라고 하는지. 뭐 1차원적으로 '가려우니까'가 가장 첫 번째 이유이고, 가려움이 해소되고 난 다음에 찾아오는 건 바로 나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애정의 욕구다. 일종의 애착 인형 같은 것이랄까. 신랑의 경우 애착의 대상이 물건이 아니라 행위에 있다는 것일 뿐. 그 의미는 같다. 비율로 따지자면 체감상 '가려우니까' 20% 나머지 80%가 '나 사랑해줘' 다.
분명한 이유를 알고 있음에도 연애부터 결혼까지 8년간 봐왔던 그 익숙하고도 변치 않은 습관은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화를 불러일으키는 빨간 버튼이 되었다.
나는 신랑이 "여보~!"라는 운을 띄우기만 해도 화가 났다. 나를 부르는 호칭 뒤에 어떤 말을 할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긁어 주기가 싫었고긁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노동처럼 느껴졌다. 내가 집에서 처리해야 하는 수만 가지 일 들중에 하나처럼 여겨졌다. 집에 효자손도 있는데 자기 몸뚱이 긁는 것 정도는 어른인 자신이 좀 직접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신랑은 다른 건 다 포기해도 등 긁는 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하니 나는 내 세포에 남아있는 에너지를 짜내어 그의 등을 긁어준다. 그럴 때면 나는 곱게 긁지 않는다. 온갖 짜증과 분노와 불편함을 내 얼굴과 마음에 담는다. 때로는 내가 너무 심한가 싶어 내 가슴속에 올라오는 것들을 한숨과 함께 삼킨다. 내가 그 정도로 싫어하는 티를 내면 나 같으면 '에라이~ 더러워서 못하겠네' 하고 백기를 들 법도 한데 신랑은 그런 법이 없다. 언제나 나에게 등을 들이민다.그러면 나는 또 미안함과 죄책감에 시달린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물음표가 생겼다. 신랑의 등 긁어달라는 말이 나는 왜 화가 날까? 고민이 들었다. 주변에게 물어봐도 주변의 반응은 대부분 "그 까이거 그냥 긁어줘~ 그게 뭐 별거라고"라는 반응들이었다. 그래서 고민의 답을 찾기 시작했다. 앞으로 같이 살 날이 한 50년은 남은 것 같은데 50년 내내 화를 내며 살 수는 없는 노릇 이질 않나.
처음에는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불러서 내 일을 방해받아 그런가 싶었다. 그래서 신랑에게 다른 식의 화법을 부탁했다.
"여보, 여보 하는 일 다 끝나면 등 좀 긁어줘"
그렇게 얘기하니 처음에는 기분이 좀 누그러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매일 들으니 똑같이 화가 났다. 도대체 이 분노의 원천은 무엇이란 말인가! 부부관계에 관한 책도 읽어보고 부부싸움에 관한 책도 읽어보고 인터넷에 떠도는 부부에 관한 글들도 읽어보았지만 그다지 효과적인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나에게 뼈 있는 조언을 명쾌하게 해주는 친한 언니와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날은 신랑일로 통화한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신랑에 관한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언니는 나에게 구체적인 질문들을 던졌고 나는 그에 대한 답변을 곰곰이 생각해 내어놓았다. 그렇게 언니의 질문에 리드당하며 나를 헤집고 나니 나는 문득 잊고 있던 내 안의 결핍 덩어리를 찾을 수 있었다.
언니와 통화를 마친 뒤 나는 예전에 오은영 말씀하셨던 이 단어가 생각이 났다.
허구의 독립
의존적 욕구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은 아이들이 의외로 의젓하고 자기 할 일을 잘하게끔 성장하는데 이처럼 겉으로는 독립적이고 의젓한 모습으로 보일지 몰라도 정신의학과 용어로는 '허구의 독립'이라고 부른다. 대체적으로 장남, 장녀들에게 많이 발견된다.
언니와 찾은 내 안의 결핍 덩어리와 허구의 독립이라는 개념이 엉겨 붙자 그토록 찾아 헤매던 '신랑의 등 긁어달라는 말이 왜 그토록 화가 났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결핍 덩어리는 신랑과의 관계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딸에게도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허구의 독립을 찾고 박사님의 솔루션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징징거려 봤던 적이 있는가... 그냥 '흐어엉 이 이잉 나 오늘 너무 힘들어쩌' 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의 몸뚱이를 내던져 그 사람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던 적이 있는가... 나는 꺼이꺼이 토하듯 울어본 적도 없었다.
나는 줄곧 늠름했던 딸이었다. 어릴 적 단 한 번도 바닥을 구르며 떼를 써본 적이 없었고4살 때조차 나는 힘들어하던 엄마를 괜찮다며 위로하던 딸이었다. 늘 엄마가 나를 걱정하지 않게 내가 알아서 척척 다 해내던 딸이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났다. 아빠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
'애가 애답지 않다'
그렇다. 나는 애였던 적이 별로 없었다. 어리광은 나에게 옆집에서 들리는 소문 같은 것이었다. 사람이란 늘 어떤 과정을 충분히 겪고 다음 스텝을 밟아야 단단해지는데 나는 어린이라는 스텝을 너무 일찍 지나가버렸다. 순탄치 않았던 어린 시절 때문에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도 있었고 장녀라는 직위로 인해 나에게 부여되었던 것도 있었다. 이해한다. 엄마도 나도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최선의 삶을 살아내었다.
떼를 부리고 어리광을 부려본 적 없는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등을 긁어달라며 잔망을 부리는 신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러움 질투 어색함 혼란 당황 억울함 등의 감정들은 한데 섞여 내 마음의 화를 지펴줄 든든한 땔감이 되었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책에서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다.
내가 하지 못하고 꾹꾹 참아온 것들을 다른 사람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해 버리면 내 안에 결핍이 건드려져 화가 난다고.
비로소 알았다. 신랑의 등 긁어달라는 말은 어릴 적 채워지지 못한 내 안의 의존의 욕구가 건드려지는 말이었다.
나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잔망, 나는 못했던 사랑하는 이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행위. 엄마에게조차 안아달라느니 사랑한다느니 그런 말을 뱉어본 적 없이 성장한 나는 다른 이들의 어리광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결핍은 슬프게도 내 딸에게까지 이어졌다. 나는 돌이 갓 지난 딸이 무언가 속상해서 바닥에 드러누웠을 때 떼 부림을 잡겠다며 엄하게 훈육했던 엄마였다. 세상에.. 돌쟁이의 징징거림도 받아주지 못했던 엄마라니... 우리 딸은 내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하지만 이제는 다행이다. 원인을 알았으니까. 약을 먹어 해결할 수 있다면 참으로 손쉬울 텐데 마음은 그렇지 않아 야속한 면이 있다. 그래도 이렇게 원인을 알고 나면 한결 수월하다. 이렇게 글까지 쓰고 나면 이젠 어느 정도 내 마음을 어르고 달랜 뒤 보낼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나의 결핍을 깨닫고 나서는 신랑의 등 긁어달라는 말을 들을 때 이렇게 생각한다.
'이건 이 사람의 문제가 아니야. 이건 내 안의 갇혀있는 의존의 욕구가 건드려지는 거야. '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어리광을 받아줄 수 있어. 나도 언젠가 이 사람에게 어리광을 부릴 거야.'
'이건 나를 힘들게 하는 행위가 아니야. 사랑의 소통이야.'
딸에 억지를 보면서도 생각해본다. 뭔가가 안돼서 마음이 속상하겠지? 속상했을 그 마음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딸을 달래어 본다.
하루아침에 좋아지진 않겠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마음먹는 하루하루가 지나가다 보면 분명 단단했던 결핍도 옅어지는 시점이 오더라. 몇 년 뒤에는 신랑의 등 긁어달라는 말에 화가 아닌 미소로 답하며 긁어줄 날이 오겠지. 오늘도 나는 나의 억울함이 옅어져 사라질 수 있도록 글로서 내 맘을 토닥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