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되어야 파리 아닌 벌이 날아오는 법이다.

by 은은한 온도

저는 어릴 적부터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행복의 여러 조건들 중 자아실현도 절대 놓칠 수 없는 포인트이지만 저는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최고의 과업으로 삼았었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 돈으로 함께 누릴 사람이 없다면, 행복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 저의 지론이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가정폭력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어요. 난폭한 아버지를 보며 '나는 절대 결혼을 하지 않을 거야' 생각할 법 한데 저는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나는 절대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아! 이혼하지 않을 단란한 가정을 꾸릴 거야!'라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질풍노도의 시기부터 지금의 신랑을 만나 결혼하기까지 다양한 연애와 썸 등을 오가며 시행착오들을 겪었고 저에 대한 탈피도 감행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아버지와 정반대인 남자와 결혼해 제가 원했던 과업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 및 저희 가족은 주변으로 하여금 "좋아 보인다" "행복해 보인다" "보기 좋다" "예쁘다"라는 이야기를 왕왕 듣습니다. 임신을 한 뒤로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가족사진을 찍어 남기는데요. 올해도 SNS에 가족사진을 올리자 이런 댓글들이 올라왔습니다.




이런 재미난 가족의 모습이 가능한 것도 저는 신랑의 역할이 크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신랑은 결혼 7년 차인 지금까지도 제게 꽃 선물하는 것을 잊지 않는 남자이니까요.


제가 "이제 꽃은 돈 아까우니까 그만 사"라고 했더니,
"쓸데없고 돈 아까울 수 있지만 여보가 좋아하니까 계속 살 거야"라고 그러더군요.


그렇습니다. 신랑은 제가 종종 여자이길 포기하는 순간에도 제가 한 아이의 엄마나 한 사람의 부인이 아니라 고귀하고 아름다운 여자다라는 점을 늘 상기시켜주는 남자입니다.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남자 하나 잘 골랐다. 이 남자 좋은 남자다.




이런 신랑을 운이 좋아서 단번에 만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나쁜 남자들을 많이 만났었습니다. 치욕스러운 행동을 하며 나를 갉아먹기도 했었습니다. 그전부터 저의 이상함을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그중 무려 4년 동안이나 오랜 연애를 했던 그분과의 이별이 바로 제 인생의 변곡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분을 생각하면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평소에는 로맨티시스트였지만 화가 나면 감정이 요동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물건을 던지거나, 사람과 시비가 붙거나, 저를 밀친 적도 있었고, 창문을 주먹으로 내리쳐 창문이 깨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욱'하는 성미를 스스로 좋아하지 않고 꽤나 조절을 하는 것으로 정상참작을 해보았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저는 아찔했습니다.



저는 그분과 연애를 하며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이분과 헤어지지 못할까? 그렇게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영락없는 아버지의 모습인데, 왜 벗어나지 못할까?' 극도로 경계했던 가족 불행의 대물림은 이렇게 계속될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분이 먼저 저에게 이별을 고하며 저희는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꽤 긴 시간 이별의 허무 속에서 갇혀 지냈습니다. 이별의 허무 속에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는 정말로 더 나은 연애를 하리라. 이번에는 제대로 좋은 사람을 만나리라.



그러려면 원인 파악을 해야 했습니다. 과거를 돌이키니 4년 연애한 이 분 이외에도 폭력적인 남자, 중독에 빠져드는 남자들과 연애했음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와 비슷한 성향의 남자를 원치 않았음에도 그런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 아이러니한 마음의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나쁜 남자, 나쁜 여자.


4년 연애했던 그분을 단편적으로 좋은 남자, 나쁜 남자 두 가지 중 하나로만 분류한다면 저는 나쁜 남자로 분류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과연 좋은 여자, 나쁜 여자 중에 어떤 여자일까요?


내가 어떤 여자였는지는 "유유상종"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빗대어 보면 답이 나옵니다. 사람은 시대와 나이 인종과 성별 할 것 없이 늘 끼리끼리 어울립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 나쁜 남자와 연애를 했다면 저 또한 나쁜 여자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민했어요. 그래, 나쁜 여자라면 무엇이 나쁜 여자일까? 나는 꽃뱀이 아닌데.


강신주 저자의 <다 상담 1>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집안이 불행한 사람은 빨리 사랑에 빠져요. 우리는 상대적인 동물이고 차이의 존재라서 조금만 나으면 그쪽으로 가거든요.

집이 행복한 사람은, 그 이상으로 해주는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안 움직이요...

(중략)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메릴린 먼로같이 결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너무 힘들게 지내서 결혼을 많이 한 거예요.

A를 만났더니 너무 좋은 거예요. 사랑에 이르죠. 그런데 만나다 보니가 B가 등장하는 거예요. B가 더 잘해주면 B로 갈아타요. 그럼 C가 등장해요...

아직 연애 못하고 결혼 못하고 마흔이 넘으신 분들 있으시죠? 이 분들은 부모님을 원망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자존감과 행복의 기준을 너무 많이 높여 놓은 거예요. "




이 말에 대해 깊이 생각했어요.

아... 나는 최초의 이성인 아버지로부터 온전하게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구나.
->
사랑을 온전하게 받아본 경험이 없다는 것은 내 자존감에도 영향을 미치겠구나.
->
연약한 자존감 때문에 애인이 나를 무례하게 대하거나 존중하지 않아도 그저 참고 견뎌왔구나.
->
어릴 적부터 참고 견디는 것이 익숙했는데 최초의 이성이었던 난폭한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였구나.
->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었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계속 아버지와 닮은 남자를 찾았구나.
->
그래서 아버지와 닮은 남자를 찾아 사랑받기를 갈구했구나. ->
다른 이로 하여금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은 내가 결핍이 있다는 의미구나.
->
내 결핍을 타인에게서 채우려 했기 때문에 계속 어긋난 선택을 했구나.


바로 이 점이 내가 나쁜 여자인 이유였습니다. 내 문제를 내가 해결하지 않고 타인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니 그것이야 말로 나쁜 심보였습니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였습니다. 제가 제 스스로 저의 결핍을 채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토록 원하는 사랑. 내가 나에게 주자. 나라는 존재는 도망가지도 않고 헤어지지도 않고 언제나 함께하니까. 먼저 나를 사랑해주자.

그래서 저는 그 누구보다도 저를 사랑해주기로 했습니다.



나를 사랑하자.


좋은 남자를 원한다면 좋은 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간과하고 나를 변화시키지 않은 채 좋은 남자만을 원했습니다.


내가 꽃이어야 파리 아닌 벌이 오는 법입니다.


하지만 의문이었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먼저 변하지 않는 사랑을 생각하니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그러하지 못했지만, 저희 어머니는 분명 그런 사랑을 저에게 전하셨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태어난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해주셨다는 것을요. 폭력의 그늘 속에서도 아버지가 없었다면 제가 태어나지 못했을 거라며 저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그 어떤 행동을 해도 조건 없이 저를 사랑한다는 것을 저는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정의라는 것을요.


이러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제 스스로에게 적용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부정하고 싶은 나의 못난 부분, 결단코 나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 감추고 싶은 나의 치부까지도 나라고 받아들이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 시점과 연극치료 대학 원원을 다녔던 시점이 맞닿아 저는 저를 위한 성장과 치료의 첫 번째 스텝을 배워 실천했습니다.


바로 [직면 - 인정 - 애도]의 과정이 그 첫 단추였습니다.


몸속의 혹이라면 그 혹을 떼어내면 그만이겠지만 마음은 쉽사리 떼어내 지지 않기 때문에 잘 달래고 어루만져주어야 합니다.


['직면'의 시간. ]
저는 기억 속의 깊이 묻어두었던 가장 싫어하는 제 모습을 일부러 수면 위로 올렸습니다. 치부로 느껴던 과거의 일화, 부정하고 싶은 제 모습들을 모두 소환했습니다. 정말 괴로웠습니다. 기억을 소환한다는 것은 마치 불끈거리는 상처에 소금을 뿌린 뒤 땅에 패대기치고 불을 지펴 활활 타오르게 하는 일 같았습니다. 숨이 끊어질 것처럼 옥죄는 고통이 저를 덜덜 떨게 했습니다. 그날 저는 하루 종일 울면서 강남 한 폭 판을 미친 여자처럼 걸어 다녔습니다.


[그리고 '인정'의 시간. ]
집으로 돌아와 저는 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 속에는 직면의 시간에 수면 위로 떠올라 나를 괴롭히던 내 모습을 모조리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나라고 인정하고 그 모습도 깊이 사랑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네가 무슨 모습이든 네가 어떤 일을 해도 나는 나를 사랑하고 아낀다고도 썼습니다. 또 아버지에게도 편지를 썼습니다. 절대 전해지지 않을 그 편지에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적었습니다. 원망의 말과 아쉬움의 호소와 그동안 어려서 하지 못했던 여러 말들을 남겼습니다. 이제는 마음속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려 애쓰지 않겠다는 다짐도 적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애도'의 시간.]
저는 그 편지들을 읽어 내려가며 속절없이 울었습니다. 저에 대한 편지는 마음속으로, 아버지에 대한 편지는 입 밖으로 꺼내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제 안에 자리하고 있던 모든 상처와 아픔들이 씻겨 내려가길 바라는 것처럼 눈물이 쉼 없이 제 앞으로 쏟아졌습니다. 몸에 남아있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밖으로 꺼내져서 마치 눈물샘이 텅 비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마쳤을 때 하도 울어서 에너지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유체이탈이라도 한 것처럼 쑤욱하고
가벼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묵혀두었던 프로젝트를 완수한 것 같은 후련함도 찾아왔습니다.


물론 이 작업을 했다고 하루아침에 번쩍하고 나를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다른 종류의 나쁜 남자를 만나 뼛속까지 박혀있던 평강공주 콤플렉스, 착한 아이 콤플렉스, 하녀근성 등을 마주해야 했죠. 하지만 예전처럼 통제가 불가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 연애를 돌아보며 나에게 맞는 남자를 찾기 위해 검열을 했고 저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행동지침들을 세워 실천했습니다. 글이 한없이 길어질 수도 있기에 굵직한 행동지침을 이 글에서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언젠가 이 내용도 정리해 보겠습니다.



나를 위하여.

저를 위해 했던 가벼운 행동을 열거하자면 먼저 기회가 될 때마다 저에게 줄 선물들을 샀습니다. 솔직히 이전에는 제 옷도 제가 사본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감각이 좋았던 엄마 옷을 입거나, 동생이 사다 놓은 옷을 입는 식이었죠. 하지만 처음으로 오로지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돈을 썼습니다.


또한 스스로에게 예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전에는 외모 콤플렉스가 있던 터라 늘 제가 못생겼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제가 다르게 보이더군요. 이 얼굴이 어때서? 예쁜데? 하며 지금 이미 훌륭하고 충분히 아름답다라며 스스로에게 말해주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위한 시간을 일부러 만들어서 내 생각과 느낌 등을 글로 정리하며 사색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한 것은 불편하다 의견도 냈으며 욕망이 끓어오를 땐 그 욕망을 피력해 당당한 여자로 거듭났습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사랑하려 노력하다 보니 정말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저를 존중했더니, 상대도 저를 존중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궁지에 몰릴 때면 이따금 제 안의 평강공주나, 하녀가 얼굴을 빼곰 들이밀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통제가 되는 수준을 넘어서 미소 지으며 그녀들은 돌려보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아픈 시간들을 견디었습니다. 비로소 편안함에 이른 제 자신을 보며 저의 은은함을 넘어 다른 이들에게도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여러분들도 꽃이 되어 사랑하는 이와 사랑을 주고받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길 바라봅니다.




어릴 적에 저는 제 자신을 장미꽃이라 비유하곤 했었습니다. 과거에는 장미의 모습 중에서도 뾰족한 가시가 부각된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시간이 흘러 지금은 진하고 매혹적인 향기를 지닌 장미의 꽃 부분이 연상됩니다. 더불어 제 곁에 이렇게 좋은 사람이 실재하는 것을 보니 이제는 제가 꽃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진정 꽃으로 거듭났구나 하는 흐뭇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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