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의 세상에서 출산을 외치다.

by 은은한 온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면 사실 다음 생애 태어나면 딩크로 살고 싶다거나 '비혼이다. 다음 생은 무조건 비혼이다' 싶은 순간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만큼 결혼의 이면도 녹록지 않고 육아라는 거대한 산맥은 저라는 사람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며 시험에 들게 하는 괴로운 레이스 같습니다.


사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여자에게 있어 굉장히 많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아이가 엄마에게서 나오는 순간 분명 서로를 연결하던 탯줄이 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모든 삶 속에 아이가 속해있게 됩니다. 물론, 아빠의 삶도 같이 변하지만 엄마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제 인생을 딱 두쪽으로만 나눈다면, 저는 엄마가 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출산은 엄청난 경험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태어났다면,


부모가 되는 경험은 꼭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매우 사랑스러우니까요? 그것도 정말 맞습니다. 내 아이는 정말 정말 정말 예쁩니다. 아이를 낳으면 알게 됩니다.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구나..






한 때 가슴 아픈 사랑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너무 아파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닐까?'라는 물음으로 사랑을 탐구했었어요. 인문학, 소설, 시, 심리학, 영상, 영화, 문구들, 에세이 등을 찾아 읽고 과거의 제 사랑들을 탐구해가며 제 나름대로 사랑의 정의를 내렸었죠.



제가 생각한 사랑은

'내가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주고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의 출처는 모성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정의를 내리고 나서도 사실 그때는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사랑한 만큼 그 사람이 저를 사랑해주길 원했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 제가 내린 사랑의 정의가 정말로 실현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아이한테 맞춰진 뒤틀린 자세로 수유를 하니 허리와 목, 어깨가 엄청 아픈데도 내 새끼가 잘 먹으면 그걸로 끝이었어요. 잠귀가 어둡고 수면욕이 제일 강한 제가 '엥!' 소리 한 번에 자다 일어나서 새끼 밥 먹이려 앞섬을 푸르고 돌진했습니다. 그게 힘들긴 했지만 이상하게 뻤어요. 왜 이리 나를 힘들게 하냐며 자식한테 원망이 들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만 해 주어도 감사했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동생, 남편을 위해 죽을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망설여지고 쉽사리 답을 할 수가 없는데 내 목숨으로 자식이 살 수 있다. 고 생각한다면 기꺼이 내놓을 수 있습니다. 주저 없이 죽을 수 있어요. 아마 모든 부모님들이 다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리고 아이 또한 엄마 아빠에게 사랑을 베풉니다. 매일 유치원에서 저를 위한 그림을 그리고 저를 생각하며 물건을 만들어요. 늘 저에게 무언가를 주고 무언가를 전합니다. 때로는 그렇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아이가 나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



아이와의 사랑을 주고받으며 마침내 알았습니다.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한다는 것이 이렇게 기쁘고 행복한 일이구나. 받는 일보다 주는 일이 얼마나 행복하고 보람된 일인지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진정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 이런 대사가 있다고 합니다.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유명한 저 대사는 알고 있어요.


"당신은 날 더 좋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




제가 저의 신랑과 결혼을 결심한 것도 저 이유였어요. 저희 신랑은 제 가장 수치스러운 면도 저라고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해 준 사람이며, 신랑의 예쁜 말 습관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예쁘게 말하는 사람이 돼야지 하며 노력했습니다. 이성에게 내가 가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었으며 나 또한 그런 사랑을 주어야겠다 다짐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과 저는 결혼을 했죠.



하지만 그보다 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이였습니다. 아이는 신랑보다도 10배 아니 100배는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마음을 먹게 하는 그런 존재입니다.


아이는 저를 120% 수용해서 사랑합니다. 학벌? 외모? 재산? 이런 거 따위 아이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기 엄마니까 저를 사랑합니다. 정말 저를 향한 사랑이 눈에서 몸에서 흘러넘칩니다. 그래서 힘들 때도 있어요. 스토커처럼 저만 쫓아다니니까요.



요새 잠도 자꾸 제 품에서 잡니다.



저를 그렇게 쫓아다니기 때문에 아이는 엄마라는 저라는 사람 안에서 자라납니다. 그리고 아이가 커갈수록 마주치게 됩니다. 신기하게도 이것만은 안 닮았으면... 하는 제 모습을 꼭 닮아요. 무시무시한 유전자의 영향도 있겠지만 대부분 저의 무의식적인 모습들을 아이가 학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문제 상황이 있을 때 주로 회피라는 방법을 씁니다. 그냥 제가 피하고 정리하고 이해해버리는 점이 편했어요. 굳이 말하지 않았어요. 괜히 얘기했다가 싸움이 되는 것도 원치 않았고요. 말을 꺼내 변하지 않는 상대방을 보면서 낙담하는 것도 저는 마음이 아팠어요. 상대방이 그러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면 좋을 텐데 저는 그런 쿨한 성격은 아니었죠.



새치기를 하는 친구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속앓이를 하는 아이를 보며 마치 저를 보는 것 같았어요. 경비아저씨가 딸이 이쁘다며 딸의 엉덩이를 토닥거릴 때도 제가 명확하고 공손하게 거절했다면 아이가 그렇게 낯선 이를 조르르 따라가진 않았을 텐데 하는 자책이 들었답니다. 어릴 적 착한 아이콤플렉스가 있던 저로서는 딸의 그런 모습에 민감해졌어요.


확실히 아이들은 부모의 말보다 부모의 행동을 더 닮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를 보면서 다짐합니다. 물이 늘 아래로 흐르듯 내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요.


말을 예쁘게 하자.
아닌 건 아니라고 소리 내어 말하자.
불편한 건 불편하다고 말하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자.
먼저 인사하자.
함부로 비판하지 말자.
실수가 있더라도 인정하고 사과하자.
나 자신을 사랑하자.
나를 좋은 사람이라 여기자.
나 자신에게 당당해지자.


아이에게 원하는 모습이 있다면 내가 먼저 선보이자.






딩크, 진심으로 이해합니다. 딩크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삶이 팍팍하기 때문도 있지만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일을 함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도 생각합니다. 오은영 박사님의 말씀이 육아는 끊임없이 자신을 내주어야 하는 일이라고 하시더군요. 맞습니다. 그만큼 쉽지 않아요.



하지만 절대적으로 힘든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 묻지 않은 아이와의 사랑을 경험하며 차원이 다른 인생의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부모와 형제, 주변 사람들, 더 나아가 사회를 향한 나의 시선도 달라지며 내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계속 좋은 사람이 되려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이를 낳지 않고도 이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와 직접적으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느끼는 하루하루들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행복이 따라옵니다.



신중해야 함은 분명하지만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제대로 된 사랑'을 주고받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람으로 태어나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행복해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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