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에게 소원을 비는 너를 보며 나도 소원을 빈다.

by 은은한 온도

나의 5살 배기 딸은 산타를 믿는다. 딸은 산타할아버지가 착하고 엄마 말 잘 듣는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다라고 알고 있기에 나는 요즘 그 말을 협박용 멘트로 잘 써먹는다.


"이상하다~ 산타할아버지가 엄마 말 잘 들어야 선물 준다고 했는데~ 이렇게 치카를 안 하면 선물을 주실까~???? 에구, 안 되겠다. 산타할아버지 불러야겠다~~~ 산타할아버지이이 이~~!!!!!!"


이렇게 내가 산타할아버지를 불러대기 시작하면 딸은 딱 붙어있던 엉덩이를 일으켜 양치를 하러 왔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또 나의 부름을 순순히 행하게 하는 수단으로써 지금까지 잘 써왔기에 사실 아쉬운 감도 있다.


오늘은 디어 아이 유치원에서 산타행사를 한다. 아이 입장에선 그토록 기다리던 산타할아버지의 실물을 영접하는 날이기에 기대가 아주 크다. 어제 자기 전 불 꺼진 침대에 누워 아이와 대화를 했다.


"내일은 유치원에 산타할아버지가 놀러 오시는데 받고 싶은 선물 있었지? 그거 소원 빌어봐!"

"나는 플레이도우랑, 지렁이 젤리 받고 싶은데 내가 매일매일 소원을 안 빌어서 산타할아버지가 안 주실 것 같아"

"아~ 소원은 매일 안 빌었지만 매일매일 엄마 말 잘 듣고 스스로 척척 잘했으니까 주실 거야. 산타할아버지는 다 보고 계시거든. 이참에 소원 한 번 빌어봐."


침묵이 있더니 아이는 곧 어둠 속에서 소원을 빌었다.


"산타할아버지.. 저는.. 플레이도우랑 지렁이 젤리를 받고 싶어요."


아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숨소리가 매우 진지했다. 나는 그런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볼에 뽀뽀를 해댔는데 엄마가 방해하면 산타할아버지가 못 듣는다며 나를 밀쳐냈다. 리고 소원을 마무리했다.




이맘때가 되면 온 세상의 아이들과 부모들은 유난히 더 바빠지는 것 같다. 1년을 마무리하는 전 세계적인 이벤트랄까...


문득 언젠가 신랑과 함께 아이를 등원시키고 버스정류장으로 가면서 이런 얘기를 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아이들은 참 순수해. 저렇게 산타가 온다고 믿는 거 보면. 부럽다. 순수하게 믿을 수 있어서. 어릴 적에는 나도 그랬었는데... 나도 무언가를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부러웠다. 그런 깨끗한 순수함..

옛 추억에 잠긴 나는 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음... 어쩌면 아이를 낳는다는 건 그동안 어른들이 잃어버렸던 순수성을 다시 회복하는 일일지도 몰라...'



순수성의 회복이라, 순수성을 어떻게 회복하지? 다른 것이 섞이지 않으면 되는구나.


요즘 나는 제법 나에게 순수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이 나를 순수하게 믿으려 노력 중이다. 그러려면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는 비관적인 생각의 때와 타인을 의식하는 시선의 때를 좀 벗겨내야 하는 것이 같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 같다.


나는 무의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 무의식은 의식보다 더 깊고 넓은 빙산의 밑동이니까.. 사람이 매 순간 의식적으로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무의식 속에 자리 잡혀 굳혀진 나의 감각들로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 이렇게 사는 게 편해' '이건 좋아' 하는 생각과 느낌들도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경험들이 엉겨 붙어 나의 선택들을 결정짓는다.


안경이 갖고 싶으면 그때부터 내 시선에는 안경만 보인다. 그런 것처럼 나는 무의식과 끌어당김의 법칙 또한 연히 존재하는 법칙이라 믿는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도 믿는다.


나의 딸을 예로 들면 딸은 그저 순수하게 믿고 소원을 빈다. 딸아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부모와 유치원선생님들 여타 다른 어른들까지 함께 동조해주고 도와준다.


우주의 입장에서는 나 또한 딸처럼 그런 순수한 마음을 지닌 사람에 불과하지 않을까? 유유상종처럼 사람도 끼리끼리 어울리듯 내가 내 무의식을 건강하고 단단하게 단련하면 그 생각과 견줄만한 사람, 사건, 물건, 상황 등등이 나타나고 일어나 결국 이루어진다는 것. 그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렇게 나는 이 이론들을 얼추 알고 연습을 했지만 이따금 내무의식 속의 순수하지 못한 다른 때들이 섞여 들어가 나를 혼탁하게 했다. 그 결과 가고 싶다고 정해놓은 길 위에서 가다 말다 가다 말다 지속했다. 뱅글뱅글 돌기도 한 것 같다.


특히나 최근 1년간 지속했던 미라클모닝에 브레이크가 걸렸을 때 나의 무의식의 때들은 계속 얘기했다.


'어때? 네가 원래 좋아하는 잠 많이 자니까 좋지?'

'어차피 너의 인생은 네가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고 크게 바뀌지 않아'

'왜 굳이 힘들게 모험을 하려 들어?'

'그냥 취미로 글 써.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게 쉬운 건 줄 알아?'


때들 매우 일리가 있었다. 직장을 포함한 나의 생활은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적당했고, 1년간 새벽에 일어났지만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다. 처음으로 브런치 공모전에 응모를 해봄으로써 남들에게 말할만한 목표에 대한 마무리도 지어놓은 터였다.


하지만,는 어떤 계기가 이루어지길 바랐다.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아주 근거 없이 순수한 마음이 비집고 올라왔다.


그리고 신기하게 나를 북돋을 사람과 책과 영상들이 나를 찾아왔다.


우연히 친구와 이런저런 카톡을 주고받다가 추천받은 도서 고이케 히로시 작 <우주님의 1분 스파르타>가 시작이었다.

유튜버 라퓨힐러님의 영상으로 무의식을 다스리는 자기 정화 이야기,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

다시 읽은 이서윤, 홍주연 작 <더 해빙>.

그리고 희한하게 자꾸만 연결되는 자청 작 <역행자>, 켈리 최 작 <웰씽킹>.


심지어 유튜브 숏츠에서도 이지영 강사님의 나타나 단언했다. 세상을 바꾸는 건 비관적이고 시니컬 한 자가 아니라 때로는 말도 안 되게 낙천적이고 말도 안 되게 근거 없이 희망이 넘치는 사람들이 사회를 바꾸어 나간다.


고이케 히로시 작 <2억 빚을 진 내게 우주님이 가르쳐준 운이 풀리는 말버릇>, 하다못해 김영하 작 <살인자의 기억법> 까지도 나의 목표를 순수한 마음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건 왜냐? 나도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 생각했으므로)


최근 3년 만에 다시 꺼내 든 개리 비숍 작 <시작의 기술>을 보면서도 나는 실감했다.


이 일들은 우연히 아니. 는 변화하고 있다.


나는 최근 이 이론들을 순수하게 믿고 따라서해보자 마음먹어 실천 중이다. 리고 인생의 방향키가 서서히 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 정말 피부로 느껴졌다. 무의식 속에 내가 하는 말 또한 달라지고 있었다.


한파를 뚫고 출근했을 때

'아 진짜 추워. 와 이런 날 출근을 해야 한다니. 진짜 출근하기 싫다.'가 아닌,

'이렇게 추운 날씨에 실내에서 일할 수 있다니 정말 감사하다'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했달까?

나도 이런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연습하면 되는거였다.


정말 신기하게도 갑자기 커피쿠폰이 당첨이 됬다던가, 물론 회사돈이지만 금액이 바뀌어 일정금액 환불이 되었다던가 이런일이 일어났다.


생각했다. 끌어당김의 법칙과 해빙 법칙들을 순수하게 믿고 연습한 결과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잊고 지냈던 내 고3 때 좌우명이 떠올랐다.


하면, 된다


그땐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하면, 앞에 (나를 믿고 올바른 방향으로)가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또 안다. 나는 내 목표를 이루고 성공할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나의 딸이 순수하게 산타를 믿는 것처럼, 딸이 산타를 믿을 수 있게 모두가 발 벗고 나서는 것처럼, 나도 번 나라는 산타를 철석같이 순수하게 믿로 했다. 럼 나도 우주도 도와주겠지.


"은은한 온도 산타님, 제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세요"

"네, 은은한 온도님. 순수하게 당신을 믿은 덕분에 소원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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