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의 삼재는 복덩이가 물리쳤다.

by 은은한 온도


2023년은 나에게 삼재의 해였다. 이런 것을 100% 믿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1월 초부터 안 좋은 사건들이 연달아 있고 나니 진짜 삼재라 그런가? 왜 이리 뭐가 안 풀리지? 싶었다.



1월에는 키우던 강아지가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2월에는 엄마가 코인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3월에는 우려했던 우리 집 돈 문제가 터졌었다.



이런 심란한 와중에 예고 없이 둘째가 찾아왔으니 둘째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특히, 우리 집 돈 문제 때문에 기쁨보다는 걱정이 훨씬 앞섰다.



아이 한 명도 겨우 건사하는데, 둘이라니... 애초에 외동으로 결정한 우리였다. 그리고 도무지 왜 아이가 생겼는지 이해도 가지 않았다.



우리가 언제?? 왜??? 어떻게???? 알 수가 없었다.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주변에서 엄청난 축하를 받았다. 결혼해도 딩크 부부가 많고, 자식을 원해도 난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지 사람들이 복이라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첫째를 낳은 뒤 주변에서 둘째를 종용하며 하시던 얘기가 있었다



'자기 먹을 밥그릇은 다 챙겨 나온다' 그러니 걱정 말고 낳아라~!



정말 그 말이 맞는 건지, 둘째는 자기 밥그릇을 챙겨 나온 기분이었다. 더불어 둘째가 생기고부터 그동안 걱정하고 있던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이 되었다.





첫째 초등학교 입학


이건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늘 걱정하던 문제였다. 어린이집, 유치원은 자체적으로 아이를 일찍부터 늦게까지 돌봐준다. 오전 8시부터 늦게는 저녁 6시, 때로는 7시까지도 아이를 돌봐주는데 초등학교는 아니었다. 8시 40 분 즘에 있는 등교 시간에 맞춰 가야 하고 일찍 끝나면 12시 반 아무리 늦게 끝나도 1시 반이었다. 방과 후까지 한다고 해도 3시 이전이면 일정이 끝났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 엄마가 집에 없는 아이는 꼼짝없이 학원행이었다.



일을 그만두어야 하나,

일을 그만두면 돈은 어쩌지.

방과 후 다음에 돌봄을 해야 하나,

돌봄은 추점이라는데 만약 돌봄이 안되면 어쩌지.

학원으로 돌려야 하나,

1학년부터 학원에 보내고 싶진 않은데,

학원을 다니면 어떤 학원을 보내야 하나.

그게 아니면 등 하원 도우미를 고용해야 하나,

등 하원 도우미는 급여가 어느정도 일까?



초등학교를 앞두고 이런저런 걱정과 생각이 늘 있었다.



그런데 둘째를 임신하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알아보던 중 엄청난 발견을 했다. 내가 첫째 때는 백수일 때 출산을 했었다. 4대보험이 되는 지금의 직장에 취직한 건 첫째가 4살때 쯤이었는데 알고보니 첫째 분량의 육아휴직이 버젓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첫째 초등학교 1학년 때 첫째 분량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동안의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아마 둘째 임신이 아니었다면 첫째 육아 휴직이 살아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터였다.




일을 쉬면 내 월급은 어쩌지


내가 워킹맘이라는 것은 나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가족의 선택이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맞벌이를 해야만 우리 집이 굴러갔다.



첫째 때 다행히 아이를 데리고 출근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첫째 6개월 즈음부터 아기 띠를 하고 일을 하러 다녔다.



그 이후 직장이 바뀌었고 다행히 둘째 때는 매월 내던 4대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육아휴직 급여도 내 월급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통상임금의 80%였는데 거기에서 또 보증금 형식의 금액을 20% 더 떼 간다. (보증금 형식의 돈은 복직 후 6개월 뒤에 일시로 지급해 준다)



그렇다 보니 실질적으로 내가 받는 급여는 내 급여의 60% 수준으로 조금 부족했다.



그런데 올해부터 부모 급여라는 새로운 제도가 생겼다. 2023년 출생아는 생후 1년간 매월 70만 원을 현금으로 지급해 준다. (2024년은 100만 원) 이 제도의 신설로 내 급여의 부족분이 보전되었다.




와~ 정말 다행이다. 우리 복덩이가 올해 태어났다니! 참 운이 좋았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대망의 우리 집 돈 문제


우리 집 돈 문제는 목돈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우리는 연고가 없는 지역에 살고 있었는데 둘째를 임신하고 나자 엄마 곁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물론 엄마도 일을 하시니까 전적으로 아이들을 봐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SOS를 치면 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이 아무래도 낫겠다 싶었다.



바로 집을 내놓았고 한 달 반쯤 뒤에 집이 팔렸다. 기적이었다. 집을 팔았다는 자체도 기적이었는데 심지어 소정의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시세차익으로 3월에 터진 돈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아마 둘째를 임신하지 않았으면 굳이 집을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집을 내놓았다고 한들 지금처럼 불경기에 쉬이 팔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복이 기적적으로 일어났다. 임신을 안 시기부터 3개월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친한 언니에게 이 일화를 말하자 언니가 그렇게 말했다.



삼재를 상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결혼을 하거나 임신을 하는 등
집에 새사람이 들어오는 것이라고.

복이 뭐 꼭 재물을 많이 가지고 와야 복이냐고
너를 편안하게 해주면 그게 복 아니겠냐고.



그 말을 듣는데 소름이 돋았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로또를 맞은 것은 아니었지만 위험했던 돈 문제를 해결했고 그동안 걱정하던 여러 고민들이 해소가 되었다. 돈 문제를 해결하고 남은 돈으로는 신혼여행 이후 처음으로 가족해외여행도 다녀올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찍은 풍경.


둘째 복덩이가 정말로 자기 밥그릇을 챙겨 나온 건지 시기가 딱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저출산으로 인한 지자체의 정책들 또한 쏠쏠하게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물론 그것만으로 출산 후 벌어지는 경제적 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는 없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이사를 한 이후부터는 사실 몸이 힘들어서 그렇지 심적으로는 편한 시간들을 보냈다. 출산 한 이후에도 경력자가 된 신랑이 잘 도와줘서 산후 우울증 없는 지금을 보내고 있다.



첫째는 19평짜리 빌라에서 태어났었는데 둘째는 33평짜리 아파트에서 태어났다. 우리 가족의 성장 덕분인지 둘째의 복 덕분인지 결과적으로 우리 둘째는 한결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



걱정 많은 둘째였는데 오히려 복덩이가 되어 우리 집에 굴러들어 왔다. 굴러들어 오며 흉흉했던 삼재도 물리쳤다. 누가 보면 미신을 열렬히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우리 둘째가 복덩이로 태어났다고 믿고 싶을 뿐이다.



복덩이 덕분에 올해 아주 잘 보냈다. 내년 마지막 삼재 또한 우리 복덩이가 잘 물리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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