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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Nov 09. 2017

한국 음식이 알려준 스웨덴 여자의 첫 경험

티니카가 전하는 스웨덴과 다른 한국 음식 문화

1년 반 정도 한국에서 사는 동안 나는 한국음식에 푹 빠졌다. 스웨덴에 돌아온 후로도 한식이 아주 많이 그립다. 매운 찌개를 나눠 먹으면서 친구들과 친해진 것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스웨덴에서 많은 음식은 담백한 데다가, 나눠 먹는 음식은... 타코 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이 글로 한식의 첫인상과 특징에 대해  개인적으로 간단하게 써보았다! - 티니카



매운 음식이 뭐예요?

    대부분 스웨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 인생에 매운 음식이라곤 없었다. 대부분의 스웨덴 음식은 좋게 말하면 담백(또는 밍밍)해서 나의 혀는 후추를 백종원 아저씨처럼 세 번 '톡톡톡'만 뿌려도 불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스웨덴 음식은 대부분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그런데 교환학생으로 처음으로 한국에 갔던 2013년, 생애 최초로 매운 음식이라는 것을 먹어보았다. 바로, 그 메뉴는 비빔밥. 풉 하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비빔밥은 내게 매운 음식이었다. 왜일까? 그 비밀은 바로 빠알간 고추장에 숨어있다. '오늘은 한국 전통 음식인 비빔밥을 먹을 거예요. 고추장은 조금 매울 수도 있으니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넣으세요'. 교환학생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비빔밥을 처음 영접하고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학교 관계자 분들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고추장을 넣으라고 했다. '조금은' 매울 수도 있다는 경고를 날리고서... '얼마나 넣어야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나는 스스로 내 혀가 매운맛을 느끼는 역치가 굉장히 낮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숟가락으로 떴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고추장이 숟가락을 잠시 거쳐갈 정도로 적은 양의 고추장을 비빔밥에 묻혔다. 정말 말 그대로 묻혔다. 그 바람에 나의 비빔밥은 고추장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붉은 기를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대로 고추장 맛은 전~혀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나는 처음 접한 그 붉은 소스 때문에 내 눈앞의 맛있는 비빔밥을 아예 먹지도 못할까봐 겁에 질렸었다. 항상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마다 매운맛 때문에 내 눈 앞에 있는 음식에 작별을 고해야 했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매운맛에 익숙지 않았던 나는 맛있는 한국의 매콤한 음식에 익숙해지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새로운 티니카로 태어나다

    하지만 교환학생 시절이 끝나고 다시 한국에 돌아간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나는 새로운 티니카로 태어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 중 하나는 몽글몽글 매운 순두부찌개야!' 비빔밥에 고추장 한 방울 떨어뜨렸던 나는 어느새 얼큰한 순두부찌개를 즐기고 있었다. 계란도 하나 톡 터뜨리며! 나는 한국에 사는 동안 인생에 중요한 교훈 두 가지를 얻었다. 첫째, '신신익선(辛辛翊善); 매운 음식을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도움이 된다'.  한국 사자성어 중 다다익선이 있다면, 나는 한국의 매운 음식을 통해 '신신익선(辛辛翊善)'을 배웠다. 인생에서 절대 늦은 때는 없다는데, 역시 매운 음식을 배우는 데에도 늦은 때는 없었다! 둘째, 나는 매운맛이 음식에 감칠맛을 더한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매운 그 맛 자체가 혀를 불태울 거라 생각했지만 불태우기는커녕 그 감칠맛이 오히려 나의 식성을 오히려 불태웠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눈 앞에 한국의 뜨겁고 얼큰한 찌개가 아른거린다(아, 먹고 싶다!). 매일 매운 음식을 먹으며 강한 스웨덴 여자로 거듭났던 나날들 또한! 안타깝게도 스웨덴에 돌아온 이후 내 식단에서 빨간색은 빠진 지 오랜 이후 나는 또 다른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 한국에서 인생에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다고 배웠는데, 나의 미각을 위해 어렵게 끌어올린 매운맛 역치는 어느새 슬금슬금 바닥을 향해 내려가고 있다.. 내일 당장 한국행 티켓을 사야 할까?



내 안에 한국의 정(情) 있다

친구들과 닭갈비를 함께 나눠먹은 후

   '나 한 입만 먹어봐도 돼?' 스웨덴에서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갔을 때 흔히 들을 수 있는 공손한 질문이다. 각자가 먹고 싶은 메뉴를 시켜 '자기 음식'을 먹기 때문에 남의 떡이 커 보일 때에는 친구에게 공손히 '나 한 입만 먹어봐도 돼?'라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외식을 할 때 친구에게 이런 양해를 구하는 것은 꽤나 드문 일임을 깨달았다. 제육볶음, 된장찌개, 불고기 등 각자 다른 메뉴를 시켜도 나눠먹거나 치킨이나 닭갈비처럼 같은 메뉴를 시켜도 나눠먹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첫날, 나는 처음 만난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우리 그룹에서 한국 음식을 먹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 삼겹살 집으로 우리의 발길이 향했는지는 아직도 기억나지 않지만, 이미 우리의 영혼은 삼겹살에 이끌리듯 어느새 작은 삼겹살 집에 도착해있었다.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난관에 봉착했다. 바로, 마룻바닥에 앉기. 의자는 온데간데없고 마룻바닥에 놓인 작은 테이블은 우리에게 어서 신발을 벗고 올라오라고 신호를 주었다. '인생에서 내가 유연했던 적이 있었던가? '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그냥 앉는 건데, 이쯤이야.'라고 생각하며 작은 두려움을 달랬다. 그런데, 마룻바닥에 앉기의 난이도는 상상(上上) 그 이상이었다! 어느 정도 다리의 유연함과, 갈비뼈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코어에 적당한 힘이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허리는 구부정하게, 다리는 제대로 굽히지도 못한 채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큭큭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균형을 잡고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한 절박한 상황이었다. '휴, 무사히 한 고비를 넘겼다!'. 이렇게 첫 번째 도전과제였던 마룻바닥에 앉기를 반 정도 완수하고 한숨을 돌리자마자 우리는 두 번째 난관에 봉착했다. 한글을 하나도 몰랐던 우리들 앞에 놓인 것은 한국어로만 적힌 메뉴판이었다. 한글 앞에 문맹이 되어버린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이것저것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주문을 했다. 그저 맛있기를 바라며...

 

한국의 삼겹살과 사랑에 빠지다

    고기가 드디어 도착했을 때, 사실 우리는 어떻게 먹는지 몰랐다. 그리하여 작전명 '삼겹살 눈치작전'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모두에게 처음은 어렵지 않은가...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삼겹살을 구워 먹는지 힐끔힐끔 쳐다보며 당황하지 않은 척 우리도 지글지글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굽는 것은 사실 크게 문제 되지 않았지만 구운 후 '어떻게 먹을 것인가'가 중대한 문제였다.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분명 '고기'만을 주문했는데, 작은 접시에 열 가지나 되는 음식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 이 작은 접시에 담긴 모든 것들을 불판에서 구워야 하는 건가? 애피타이저처럼 먹는 건가, 아니면 고기를 먹고 나서 디저트처럼?'. 나중에서야 그것들이 한국의 고유한 문화인 반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 우리는 작은 접시에 담긴 음식들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다.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으나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하고 있는 그때  정말 친절한 식당 아주머니가 고기를 어떤 소스에 찍어먹고, 어떻게 쌈을 싸 먹는지 친절하게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이렇게 나는 내 생에 첫 쌈을 배웠다. 야채 한 장에 고기, 밥, 다양한 반찬이 들어가 입안에서 어우러진 맛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렇게 비로소 우리는 마음 편히 한국에서의 첫 바비큐를 즐길 수 있었다. 서로 도와가며 고기를 굽고 쌈을 만들어 주면서 우리 앞에 놓인 다양한 음식들처럼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양한 배경을 지닌 우리들은 서로에 대해 배워갔다. 특히 음식을 나눠먹어 본 적이 없는 우리들이었지만 음식을 나눠먹는 문화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우리의 마음 유전자에 이미 한국의 ''이 생겨져 있었나 보다. 그래서 모두가 한국에 다다랐는지도. 나는 한국에서의 첫날 낯설었지만 낯설지 않았던 친구들과 생애 처음으로 음식을 나눠먹으며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졌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나눠먹다 보면 내가 내 몫을 다 먹기 전에 누군가의 뱃속으로 내 몫이 이미 사라져 없어지는 건 아닌지 하고 걱정을 하기도 한다. '배고픈 것도 똑같고, 돈도 똑같이 내는데 말이죠!' 하지만 나는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다.'그냥 한 번 시도해보세요!' 개인적으로 나는 친구들과 항상 음식을 나눠먹을 때마다 내가 1인분을 시켰으면 먹었을 양보다 더 많이 먹었던 것 같다(앗, 친구들이 나와 같은 걱정을 했던 건 아닐지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하지만 우리 모두 정말 배불리 즐겁게 먹었다. 이 외에도 어떤 사람들은 나눠먹는 문화가 비위생적이라고도 생각하기도 하는데, 음식을 나눠먹을 때에도 개개인의 앞접시를 사용하고, 국, 찜, 밥 등 메인 음식을 서빙할 때는 국자나 집게를 사용했기 때문에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의 몸으로 들어가는 음식의 위생은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상식적으로 한국에서도 음식을 나눠먹을 때 서로의 위생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



배달의 민족, 한국
배달 음식 덕분에 더욱 돈독해진 우정

    첫사랑의 기억이 아련하리만치 가슴에 남는 것처럼, 내가 한국에서 경험한 첫사랑은 바로 식당이다. 언제 어디서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거리마다 즐비한 식당들 덕분에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는 순간 '요리를 해야 하나, 뭘 먹지?' 등의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집 앞만 나서면 골목마다 편의점이나 24시간 운영하는 김밥집이 있는 데다 집도 나가기 싫다면 배달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자고 나라 난 스웨덴에도 물론 식당과 패스트푸드점이 있지만 식당과 패스트푸드점이 거리마다 즐비한 것도 아닌 것은 물론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항상 영업시간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대부분 식당은 이르면 평일에는 8시~ 11시(Bar를 겸하는 경우), 금요일과 주말에는 늦어도 2시에는 문을 닫기 때문이고, 당연히 스웨덴에는 음식 배달 서비스가 없다(최근 스톡홀름을 중심으로 자전거 음식 배달을 하는 서비스 Foodora가 생겼긴 하지만). 이유는 단순한데, 음식을 배달하기에는 집이 너무 멀고, 배달을 시키는 사람도 많이 없으며, 인건비도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야기가 너무 달랐다. 나의 고향에 3~4개의 레스토랑이 있는 것과 달리, 서울에는 레스토랑이 한 가게 건너 한 가게일 정도로 즐비했으며, 그 많은 레스토랑을 꽉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사람들이 거리에 바글바글했다(스웨덴의 전체 인구가 얼마 전 1천만을 넘겼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떤 의미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느 식당에서든지 음식을 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으며, 더 감명을 받았던 것은 한강 공원이나 학교 등 공공시설에서조차도 음식을 배달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배달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나를 찾는지 정말 놀라웠다. 이러한 감동을 나만 느끼기 아까워, 내 스웨덴 친구들이 한국에 여행을 왔을 때 친구들에게 한국의 배달 문화를 소개해주었는데, 역시나 친구들은 배달음식이 주문하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하자마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는 간신히 입을 다물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한국의 서비스는 전 세계를 감동시킬 수 있다며 고개를 함께 끄덕였다.



    언제 어디서든 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덕분에 나는 정말 거짓말 하나도 보태지 않고 1년 반 한국에서 사는 동안 단 '한 번', 단 '한 번' 요리를 했다. 요리를 못 하거나 싫어한다기보다 어쩌면 요리를 하지 않는 게 내게 더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고요? 사실 한국 슈퍼마켓의 식료품이 생각보다 비싸기도 했고(물가가 비싼 스웨덴과 비교해도 식료품 가는 비슷하거나 비싸기도 하다), 요리와 설거지에 드는 시간과,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아 결국 낭비되는 재료들을 생각하면 식당에서 사 먹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더군다나 비싼 돈을 지불하고도 친구들 없이 혼자 집에서 쓸쓸히 밥을 먹는 것만큼 외로운 식사는 정말이지 원치 않았다. 가끔 집에서 나가기 싫을 때나 몸이 아플 때는 나가서 무언가를 사 오기가 귀찮고 불편하기도 했고, 함께 밥을 먹을 친구가 없을 때나 집밥이 그리울 때는 요리를 매일 하던 스웨덴 생활이 그립기도 했지만 이런 그리움과 불편함은 배달음식이 해결해주었다. 정말 편리한 한국의 외식 문화 덕분에 나는 스웨덴으로 돌아오기 직전까지도 친한 친구들과 매일 다양한 식당에서 맛있는 한국음식을 먹으며 한국을 내 입안에 담을 수 있었다. 나의 건강과 맛있는 경험을 선물해 준 여러분들께 감사하다. 스웨덴에 돌아온 이후로는 사실 비싼 외식비 때문에 나는 거의 외식을 하지 않는다. 따뜻한 집밥이 몸에 좋고 더 맛있다고도 하지만 꽤나 자주 한국의 편리하고 맛있는 외식문화가 그립다.

 

*티니카가 알려주는 스웨덴 음식이야기: https://brunch.co.kr/@enerdoheezer/98




'한국과 스웨덴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어요'

                                         -도희와 티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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