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컬쳐커넥터 김도희 Nov 10. 2017

평범한 한국 대학생 스웨덴으로 이주한 이유

[작가인터뷰]꿈꾸던 유토피아를 찾아서 떠난 도희이야기

    2016년 가을, 도희는 스웨덴 북부 우메오 대학에서 관광학 석사를 진행 중이다. 2017년 달력이 단 한 장 남은 것을 보니 벌써 그녀의 스웨덴에서의 석사 2년 간의 긴 여정도 끝이 보인다. 나와 도희는 도희가 스웨덴으로 오기 전, 2016년 그 해 한국에서 처음 그리고 단 한 번 만났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함께 글을 쓰고 있는 걸까? 그 날의 우리는 이 넓은 스웨덴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는데. 더군다나 대부분 스웨덴으로 유학을 가면 스톡홀름이나 웁살라로 가지 북부 우메오로 오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의 만남은 더욱 특별하다. 우리의 운명 같은 만남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사실, 우리의 연결고리는 다름 아닌 나의 프랑스 친구 루도였다. '루도, 나 올 8월 스웨덴으로 석사 하러 갈 거야! 네가 프랑스에 돌아오면 우리 유럽에서 다시 만나자!' 도희는 루도에게 스웨덴 친구가 있다는 것은 알지도 못한 채 신이 나서 스웨덴에 간다고 말했다. 그러자 루도는 '오, 도희야. 우리 반에 스웨덴에서 온 친구가 있어! 한 번 만나볼래?'라고 제안했다. 사실 서울의 많고 많은 외국인들 중 사실 스웨덴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많지 않기 때문에 도희는 흔쾌히 루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당연하지!'라고 외치며. 한국인도, 스웨덴인도 아닌 프랑스 친구 루도 덕분에 우리의 우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1년 반 정도가 지난 10월의 어느 멋진 오후, 붉은빛의 석양이 보랏빛 하늘을 수놓은 것을 보며 나와 도희는 우메오 캠퍼스 내에 위치한 카페테리아 린델에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은 도희가 어떻게 또는 왜 하필 스웨덴으로 오게 되었는지 인터뷰를 하기로 한 날이다. 책상에는 달콤한 초콜릿 칩과 모락모락 김을 내는 따뜻한 차가 준비되어 있다. 스웨덴식 커피 한 잔의 여유인 피카를 하며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고 있었다. 도희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인종, 성별, 국적, 종교 등에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문화, 삶의 방식 그리고 가치관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바로 그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그녀는 물질이나 돈을 좇기보다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 일을 찾아내고 그것을 행해나가는 것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서로 도와가면서.




1.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다.

     도희는 한국의 대표적인 산업수도인 울산에서 태어났다. 2011년 아버지를 갑작스레 여읜 그녀는 아버지가 살아오신 날들을 생각하면 가슴부터 먹먹해진다고 말한다. 대부분 한국의 아버지들처럼, 그녀의 아버지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잦은 늦은 퇴근 시간과 근무교대 때문에 도희는 아버지가 가족들과 보낸 시간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일을 가고,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서 일을 가셨던 아버지의 반복적인 생활을 생각해보면서 아버지가 존경스럽고, 아버지께 너무나도 감사했지만 그녀는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자각했다. 더욱이 이런 생활이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당연시 여기는 것을 보고는 그 깨달음은 더욱 굳혀졌다. "치열한 경쟁사회인 한국을 탈출하고 싶었어" 입술을 꼭 다물며 도희가 말했다. 남들이 사는 대로 사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그렇게 홀로 첫 해외여행을 시작했다. 가까운 문화권 국가인 베트남, 타이완 그리고 홍콩에서의 한 달이 지나고 혼자 여행하는 것에 대해 용기를 얻은 그녀는 다음 해 여름 생활양식과 문화가 너무나도 다른 유럽으로 떠났다.

Dohee, the first time in Europe, 2012.

"나는 유럽여행을 준비하면서 '카우치서핑'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됐어. 여행자들이 그 지역 사람들의 집에서 머무르면서 서로 문화 교류를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이야. 나는 유럽 여행 내내 카우치서핑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잠자리를 공짜로 제공해주는 건데 여행경비도 절약할 수 있지만 여행객으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을 경험할 수 있어서 굉장히 뜻깊었어. 내가 카우치서핑을 통해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삶의 방식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나간다는 점이었어"

도희는 씁쓸하게 웃으며 다음 문장을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사실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라는 게 있지만 암묵적으로 우리에게는 단 한 가지 길이 존재한다 생각해. 개개인이 사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삶의 모습이 있지만 그 길을 좇기에는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불안감 때문에 어려운 게 사실이야. 때문에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가지고, 돈을 많이 모아 집을 사고 어느 정도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이 원하는 삶이지. 개인적으로 암묵적으로 강요된 선택이라 생각해, 살아남기 위해서. 아버지의 인생을 생각하고, 내가 스스로 독립할 때가 되니 삶에 대해 고민이 되더라고. 엄마와 주변의 친척들은 사실 걱정도 많이 하시고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한심해하기도 했지만 나에겐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정말 필요했어. 그래서 무작정 떠났지".  그렇게 그녀는 유럽 대륙으로 떠났고 한 달간 프랑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를 여행했다. 새로운 것으로 가득했던 여행 자체가 재미도 있었지만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여행을 통해 단순히 그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것이 아닌 짧게라도 살아봐야겠다는 마음의 울림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계획에도 없었던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그녀의 강력한 마음의 울림을 듣고서.




2. 강요된 선택이 아닌 자발적 선택을 위한 여정의 시작


2013, 리투아니아

2013년 1월, 그녀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유럽 발틱해에 위치한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 서, 남, 북, 동유럽의 중간 지점에 있어 유럽 전역을 여행하기도 좋을뿐더러 물가도 싸고,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라 리투아니아를  선택했다. 첫 해외 생활인 리투아니아에서의 삶은 도희가 처음으로 다문화(Multiculturalism)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였다. 개개인의 출신 배경에 상관없이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친구가 되고 문화를 교류하며 서로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들을 회상하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분명 동시대에 살고 있는데, 모든 사람이 각자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향유하고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신선한 충격이었지. 한국에서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왜' 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꾸려나가는지 궁금해졌지"

    리투아니아에서 돌아온 직후 도희는 한국 유네스코 협회 연맹에서 운영하던 다문화 이해 증진 프로그램(CCAP)에 자원활동가로 활동을 시작하며 다양한 외국 친구들을 만나며 자신이 속한 지구촌을 조금씩 이해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의 열정에 불을 지피던 '다문화'라는 키워드를 통해 무언가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꿈은 있었지만, 이 꿈으로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마지막 학기를 끝내고, 방황을 거듭하다 조그마한 소셜벤처에서 인턴을 하기에 이르렀다. 여전히 답은 찾지 못했지만 뭔가 '선한 일'을 하고 싶었기에. 그런데 원하던 인턴십을 얻었지만 아쉽게도 도희는 행복하지 않았고 그녀는 마음이 또 다른 모험을 갈망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도희가 만난 주변의 많은 친구들, 선배, 선생님들이 그녀에게 해 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라는 조언은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 칭하며 아주 미워했던 건 아니지만, 사실 나는 우리나라에 만연한 자본주의에 지쳐있었어. 재화의 소비를 부추길 뿐만 아니라 인간 또한 하나의 재원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한국 사회에 짙었기에 이런 곳에서 일을 하기 겁나기도 했고, 사실 내 미래를 그리고 싶지는 않았지. 하지만 잠시나마 외국에 살면서 그리고 다른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경험하고, 그렇게 살아도 잘 못되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라는 걸 몸소 체험해보니 다른 방식의 삶을 찾아야겠다는 용기가 생겼어. 대다수 우리에게 자유로 포장된 강요된 선택을 택할 필요가 없었던 거지" 그녀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녀의 웃음 뒤에는 고국의 상황에 대한 씁쓸함과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투철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에게 소중한 생명을 준 지구라는 별을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한국을 위해 조금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또 다른 항해를 시작했다.




3. 스웨덴은 내 운명

"스웨덴은 한국에서 꽤나 선망받는 국가야. 좋은 복지, 투명한 정치, 평등, 지속가능성, 다문화 등 다양한 진보적인 생각들을 잘 실천해나가고 있는 나라라고 들었어. 다른 노르딕 국가들과 달리 스웨덴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아. 특히 대기업 중심인 경제구조가 비슷하고, 다른 노르딕 국가들보다 영토나 인구를 따졌을 때 규모가 있어서 어떻게 사회 시스템이 작동되는지 궁금했어". 도희는 스칸디나비아의 복지모델과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에 녹아져 있는지 배우기 위해 스웨덴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우메오 대학의 석사 프로그램에 진학하게 되면서 찾아왔다. 사실, 그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11월 중순 인턴쉽을 중도에 끝내자마자 석사 진학에 필요한 영어 시험, 에세이, 지원서 등을 준비해야 했다.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두 달. 그녀가 준비했던 장학금 프로그램 및 석사 지원 마감이 1월 중순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한 줄기 빛만 무작정 바라보며 홀로 시험을 준비하던 그때를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Dohee got scholarship, in the end!

 "지원을 끝내고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당시 나는 매일매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어. 정말 간신히 데드라인에 맞춰서 필요한 서류들은 보냈고 결과를 기다렸지. 하지만 결국 나는 내가 준비했던 장학금 프로그램에서는 떨어졌어. 우메오 대학이 다른 우수한 한국 학생을 뽑게 되었거든.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지.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졌었으니까. 아직도 그때가 기억이 나. 혼자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결과를 전달받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3주 뒤 우메오 대학 자체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는 결과를 전달받았어. 생각도 못했던 일이야. 한국 학생들만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도 아쉽게 떨어졌는데, 전 세계 학생들이 지원하는 학교 장학금을 받을 수 있기나 힐까 싶었거든". 2016년 4월은 그녀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어김없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잠시 한 숨을 돌리던 그때 그녀는 스웨덴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중한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아마 스웨덴은 내 운명이었나 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기나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어느새 시계는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해는 저물어있었다.  가을의 끝자락인 10월 오후 5시가 되면 온 세상이 어둠과, 별빛 달빛으로 물드는 것은 북부 스웨덴에서는 흔한 일이다. 도희와 나는 기나긴 겨울과 이른 어둠이 곧 시작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4. 스웨덴은 그녀의 유토피아였을까.

Trust / rabbisacks.org

"사실 스웨덴에 오기 전까지는 이 곳의 사람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그저 행복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미디어를 통해 봐왔던 것들이 그런 모습이었고, 스웨덴을 나만의 유토피아로 그리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스웨덴에 와서 내가 너무 순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이 곳에 살면서 만난 스웨덴 사람들 그리고 북유럽을 여행하면서 만난 다른 노르딕 국가 사람들 역시 우리아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의 고민을 지고 살아간다는 걸 깨달았지. 돈, 직업, 집, 노후 등에 관한 고민은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모두가 인간으로서 짊어지고 사는 고민들이라 생각해. 우리의 인생에 다 필요한 것들이잖아? 다만, 이 곳 사람들의 걱정의 정도는 우리와 다르더라구. 이 곳도 사실 돈이 많으면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해. 하지만 돈이 없다해서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지는 않는 것 같아. 잘 짜인 사회안전망 덕분에 실직을 해서 돈이 없어도 지금 당장 생계가 위협받지는 않으니까. 은퇴 후에도 자신이 낸 세금으로 연금을 받으며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고". 스웨덴과 덴마크를 비롯한 노르딕 국가들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고, 그들이 낸 고세금이 국민을 위해 잘 쓰일 거라는 믿음이 있다. 도희는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세금으로 혜택을 받는 특권층이 너무 많고, 국민들이 낸 세금이 사실 투명하게 쓰이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나는 졸업 후에도 스웨덴에 살면서 이 사회에 대해 좀 더 많이 배우고,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가치들을 한국 사회에 나누고 싶어. 평등, 지속가능성, 투명한 정치, 소수에 대한 배려 등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들이거든. 스웨덴도 사실 완벽한 국가는 아니지만 여전히 이 곳에서 배울 점이 많은 건 사실이야.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도 많이 벤치마킹을 하러 오는 거겠지? 나는 그 정신이 바로 국가가 개인의 삶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이라 생각해. 개인적으로 오늘날의 한국도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나라에서도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 또한 스웨덴이 한국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이를 위해 나는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지!".


도희와의 대화는 굉장히 인상 깊었다. 사회가 강요하는 길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온 그녀. 전 세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면 좋겠다는 그녀의 꿈이 터무니없이 들릴지 몰라도, 도희와 대화하면서 나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당장 우리할 수 있는 것이 정성을 들여 준비한 저녁을 누군가와 나눠먹음으로써 삶과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사회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뿐일지라도 언제가 이 작은 나비의 날개 짓이 좀 더 공평하고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나비효과를 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스웨덴과 한국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어요'

                                            -도희와 티니카

작가의 이전글 한국 음식이 알려준 스웨덴 여자의 첫 경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