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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Nov 11. 2017

스웨덴 북부의 특별한 고기, 무스 고기

 닭, 돼지, 소고기만 있는 줄 알았죠?

어머니는 말하셨지 ‘니는 어딜 가든 잘먹고 잘 살겠다!’. 여행을 갈 때마다 부산 출신의 어머니는 강력한 사투리 억양을 섞어가며 내게 말씀하곤 하신다. 다양한 국가로 여행을 다니면서 한 번도 아프지 않고, 음식 불평을 하지 않으며 잘 먹고 잘 여행하고 돌아오는 딸에게 우리 엄마는 내가 지구 상 어느 나라를 가든 먹고 사는 데는 걱정이 없겠다고 말씀하곤 하신다. 그러면 나의 먹성이 민망해 배시시 웃으며 나도 못 먹는 게 있을 수도 있다며(아직 경험은 못해봤지만…) 엄마의 칭찬 아닌 것 같은 칭찬에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곤 한다.  ‘먹고사는 문제’ 라... 우리가 흔히 먹고사는 문제를 언급할 때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돈을 모으고 어떻게 미래를 준비할 것인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실 먹고사는 게 별게 있을까. 나의 이 한 몸 건강히 잘 건사하고, 좋은 음식을 통해 나의 몸과 정신에 이로운 에너지를 얻는 것만으로도 사실 나는 말 그대로 먹고살 수 있다. 오히려 이 먹고사는 문제가 나의 일, 사랑, 꿈에 다가가는 것보다 우선시된다고 매슬로우도 말하지 않나. 에너지가 없어 무기력하거나 아프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서 우리가 무얼 먹고 사는지는 정말 중대한 문제다.


스웨덴 사람들은 무얼 먹고살까? 나는 스웨덴에 오기 전까지 그들이 먹고사는 세상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눈만 꿈뻑꿈뻑거릴 뿐이었다. 북유럽 여행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거니와 한국에서 스웨덴 음식을 맛 볼 기회도, 맛 볼 생각도 잘 들지 않았기에 스웨덴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에 대해서는 백지상태였다. 한국의 거리마다 즐비한 이탈리아, 아메리칸, 멕시칸 등 다양한 서구 음식점들 속에서 스웨덴 식당을 찾기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과 같지 않은가. 그래서 스웨덴 음식을 시도해볼 생각조차 못해봤었다. 전 세계에 사는 스웨덴 사람들이 고향이 그릴 울 때마다 찾는다는 이케아가 한국에 들어온 것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내 머릿속에는 지우개로 지울 것도 없는 백지로 가득 찼다. 어느새 스웨덴에 온 지 1년, 개인적으로 지난 1년 동안 먹고사는 문제를 평가해보면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이 세상, 나름 잘 먹고 잘 산 것 같다! 너무나도 다른 식문화를 경험하며 흥미로운 점 그리고 시도해볼 만한 가치와 용기를 지닐 만한 음식들을 하나하나 소개해보고자 한다! 오늘은 스웨덴 북부의 특별한 고기, 엘크/무스 고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 엘크, 베일을 벗다.

엘크가 뭐예요?

<스웨덴 엘크(좌), 북미 엘크(우)>   

 우리나라에서 Elk(엘크) 또는 무스(Moose)라는 동물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관찰할 수 없는 동물이라 생소한 분들이 대부분일 거라 생각한다. Elk(엘크)(feat. 무스(Moose))는 러시아, 스웨덴 북부 및 북미지역에 살고 있는 동물이다. 덩치는 새끼 코끼리만큼 엄청 크지만 굉장히 부끄러움이 많고 순한 동물이다. 흥미롭게도 동물계에서 흔히 엘크와 무스를 두고 같은 동물인지 다른 동물인지를 두고 논쟁 아닌 논쟁이 생기기도 하는데 엘크 농장에서 만난 전문가는 어디에서 엘크 또는 무스를 말하느냐에 따라 지칭하는 동물이 달라진다고 했다. 이는 또 무슨 말인고? 스웨덴에서는 엘크와 무스가 같은 동물이지만, 북미에서는 엘크와 무스는 엄연히 다른 동물이라는 것이다.  북미에서 의미하는 엘크는 우리가 흔히 보는 사슴을 의미한다고 배웠다. 즉, 엘크=무스(스웨덴), 엘크=/=무스(북미)라는 공식이 성립하므로 북미에서 스웨덴에서 먹는 엘크 고기를 사러 갔을 때는 반드시 무스라고 해야 한다!


엘크는 어디에 주로 사나요?

    스웨덴의 영토는 남북으로 쭉 뻗어있는데, 엘크는 날씨가 춥고 자연이 광활한 스웨덴 북부 쪽에 많이 분포되어있다. 엘크 농장에서 보호를 받는 소수의 엘크를 빼고는 대부분 스웨덴에서 서식하는 엘크는 모두 야생동물이다. 우리나라의 시골 산간 지역에 출몰하는 야생 멧돼지처럼 (요즘은 간혹 도심에도 출몰하지만) 엘크도 스웨덴 북부의 숲 속에 서식한다. 기후 때문에 스웨덴 인구의 80~90%가 남쪽에 모여 사는 남부나 큰 도시인 스톡홀름에서 엘크를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치더라도, 북부에서도 숲에서나 엘크를 볼 수 있다. 간혹 겨울에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무스를 도로에서 마주치는 때를 빼고는. 스웨덴에 사는 엘크의 수는 전 세계 개체 수의 10%로도 안되는데, 그 외의 90%는 핀란드 러시아 북미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 엘크 자체가 굉장히 부끄러움이 많은 동물이라 야생에서는 사냥꾼들도 며칠간 잠복을 해야만 어렵게 볼 수 있다. 숲 속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지난겨울 엘크를 봤다며 신나서 사진을 공유한 기억이 난다. 심지어 올 가을 우리 과의 노 여교수조차도 우리에게 엘크 사냥을 하러 간다며 작년 자신이 사냥했던 엘크 사진을 자랑스레 보여주었다.


엘크 사냥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엘크 농장에서 엘크 사냥에 대해 배웠다.

스웨덴에서는 엘크 사냥이 합법적이다. 다만, 사냥을 할 수 있는 면허를 획득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운전면허처럼 속성으로 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금물. 이론을 공부하고 총을 쏘는 실기시험도 쳐야 하는데 짧은 기간 내에 속성으로 딸 수 있는 게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공부를 해야 한다.  9월 말 10월 초쯤 공식적으로 엘크 사냥이 가능한 날이 시작되는데, 이때부터 숲 속 곳곳에서 숨죽이고 엘크를 기다리는 사냥꾼들을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동물을 죽이는 것에 대해 논란이 많고, 스웨덴에는 채식주의자가 많기 때문에 엘크 사냥은 항상 뜨거운 감자다. 하지만 사냥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엘크 사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매년 스웨덴에서만 100,000 마리의 엘크가 새로 태어나는데, 개체수를 조절하지 않는  경우 스웨덴의 중요한 자원인 산림이 그들에 의해 파괴되기도 하며, 더 중요한 것은 매년 엘크와 길에서 충돌해서 사고를 당하는 인명 피해가 늘어나기 때문에 사냥의 타당성을 주장한다. 사냥꾼들도 동물의 숭고한 죽음을 위해 최대한 엘크가 고통스럽지 않은 방향으로 사냥한다고 하는데 그중에는, 숲 속에 구멍을 파놓고 기다리는 방법도 있다. 어찌 됐든 동물도 죽을 때 아픔을 느끼기 때문에 그 방법 역시 잔인할지도 모르지만 사람과 자연 그리고 동물의 공생 관계에 대해 이 곳 스웨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하고 있다.



 

2. 엘크, 요리가 되다

엘크 고기는 어떻게 먹을까?
엘크 농장 투어에서 먹었던 엘크스튜/ 헤이스웨덴

    아무리 스웨덴이라도 엘크 고기는 흔하지 않은 고기다. 스웨덴 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를 즐겨먹는다. 고단백 저지방의 영양학적으로도 더 건강한 육류를 섭취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고기다. 하지만 엘크 고기는 사냥꾼이 아니고서는 굉장히 비싸기 때문에 평소에는 섭취하기가 어려워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별한 명절날 요리한다.  엘크 고기를 먹는 법은 다양하다. 엘크 고기를 갈아(한국식으로 말하면 다진 소고기) 미트볼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타코를 먹을 때 돼지고기나 소고기 대신/또는 함께 타코 믹스에 볶아 타코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또한 엘크 고기를 작은 크기로 썰어 당근, 버섯, 양파, 감자 등을 넣고 스튜로 푹 끓여 먹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가장 특별했던 엘크 고기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 먹은 차가운 엘크 고기 요리다.

    스웨덴 친구 안나가 준비한 엘크 요리는 스웨덴 북부 원주민인 사미(Sami)족이 전통적으로 고기를 요리하는 방식이었다. 뼈가 없는 냉동 또는 얼지 않은 순록이나 엘크 고기를 65~75도의 오븐에서 8시간 구운 다음, 그 고기를 물, 소금, 후추 그리고 다양한 잎과 열매를 넣고 끓인 물에 4 ~ 5시간 재워두고 차갑게 식힌다. 이후 고기를 건져낸 후 물기가 빠지면 칼로 얇게 썰어 먹는 것이다. 안나는 냉장고에서 큰 냄비를 꺼내 우리이게 안나가 만든 엘크 고깃덩어리를 보여주었고, 안나의 남편 크리스가 고기를 건져내여 얇게 썰었다. 도마 위에 오른 와인 빛의 홍조를 띤 신선한 엘크 고기는 한눈에 봐도 입안에 넣자마자 녹아버릴 정도로 부드러워 보였다. 준비하는데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안나는 하루 전 엘크 고기를 숙성시켜 놓았다. "고기를 먹기 전, 먼저 감자 요리를 준비할 거야"라고 안나는 말했다. "엘크 고기와 곁들여 먹을 감자요리는 얇게 썰어 크림, 치즈, 소금으로 간을 하고 오븐에 구워야 해" 우리들이 손질한 감자를  크리스가 감자 써는 기계에 넣고 슬라이스 했다. 순식간에 손질된 감자를 안나가 스웨덴 그리고 이탈리아산 치즈, 크림, 소금 그리고 후추를 가지고 맛있게 간을 했다. "감자가 익을 때까지 45분 정도 기다리면 돼"라고 말한 후 안나는 고기에 곁들일 브라운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친구가 숲에서 캔 버섯으로 따뜻한 브라운소스를 만들어 고기와 감자에 곁들여 먹을 거야. 물론 잼도 같이! 미트볼을 링곤베리 잼과 같이 먹는 것처럼 스웨덴에서는 고기와 잼의 조합이 굉장히 클래식하지".

잼, 감자, 브라운소스 그리고 엘크 / 헤이스웨덴

 그렇게 45분이 지나고 식탁에는 감자, 엘크 고기, 브라운소스가 놓였다. 주황빛 조명 아래 은은한 와인 빛으로 빛나는 엘크 고기를 접시에 옮겨 담은 후 곁에 치즈에 퐁당 빠진 오븐구이 감자와 브라운소스를 곁들였다. 스웨덴 사람처럼 과일잼도 함께!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차가운 엘크 고기. 더군다나 스테이크처럼 구워 먹는 것도 아니고, 치킨처럼 튀겨먹거나 미트볼처럼 구워 먹는 것도 아닌 숙성시킨 고기의 맛은 먹기 전까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차가운 고기와 따뜻한 감자와 부드러운 소스의 입 속에 들어가자마자 나의 미각을 일깨워주었다. '유레카!'



'한국과 스웨덴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어요'

                                                        - 도희와 티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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