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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크라테스 Sep 27. 2019

공개 연애는 실일까 득일까?

부모님께 공개 연애를 선언하는 이유

많은 사람을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늘 이성을 만날 때 나는 굳이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다. 데이트를 할 때는 친구를 만난다고 둘러댈 뿐이었다. 이성을 만난다는 순간 엄마가 걱정할 게 불보듯 뻔했다. '집에는 10시까진 들어가라'는 한 마디에는 피끓는 청춘 둘이 만났을 때 일어나는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일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나는 착한 유교걸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엄마에게 연애사를 감추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떳떳하고 싶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소개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인데 감출 필요가 없었다. 특히 가족 간의 사소한 대화와 심리적인 연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빠가 하늘나라로 가시면서 알려줬기 때문에 나는 내 삶의 중요한 변화를 공유하고 싶었다.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남자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고, 내가 왜 이 사람을 좋아하고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지금 어떤 감정으로 만나고 있는지 소상히 이야기했다.


처음부터 공개 연애가 쉽지만은 않았다. 엄마는 늘 내게 유별나다고 했다. 스웨덴에 가기 전에는 늦은 나이에 취업 준비도 안 하고 남들은 유학지로 고려하지도 않는 북유럽으로 떠난다고 못 미더워했다. 스웨덴에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한국에서 살면서 스웨덴식 삶을 흉내 낸다고 잔소리를 하곤 했다. 그리고 남자 친구가 생겨 엄마에게 소개하면,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섣불리 소개하지도 말고 급하게 마음을 다 주는 게 아니다~' 걱정 어린 핀잔을 주셨다. 게다가, 그 사람이 외국인이면 '너는  왜 떠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마음을 금세 다 줘버리니?'하며 못마땅해했다. 이런 엄마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은 남자 친구를 꿋꿋이 엄마에게 소개했다.


스웨덴에서의 2년은 나의 연애관을 180도 바꿔 놓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일이 떳떳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며, 성인으로서 나는 내가 책임질 행동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 사람이 나와 결혼할 사람인지 아닌지 알고 싶으면 우리 가족과 잘 어울리는지 봐야지. 그래서 사귀는 동안 더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알아 가야지, 결혼할 때 다 돼서 한 두 번 만나서 알 수가 있어?'. 스웨덴에서 만난 스웨덴 친구는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부모님께 결혼할 사람만 소개해준다는 말을 듣고 놀란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스웨덴에서 사는 2년 동안, 많은 외국인(대부분 서양에서 온) 친구들이 자신의 이성 친구를 부모님이나 가족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것을 보았다. 크리스마스와 같은 큰 명절이나 주말에 집으로 초대해 같이 식사를 하거나 여름휴가를 같이 보내곤 했는데, 이 사소한 만남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부럽기도 하고 굉장히 합리적이었다. 인생은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어쩌면 여생을 함께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한 두 번 본다고 어떻게 그 사람이 누군지 다 알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거짓말하고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거나 여행을 가는 대신, 솔직하게 남자 친구를 소개하고 데이트하는 일상을 공유한다. 남자 친구네 집에서 머무르게 되도, 더이상 거짓말하지 않는다. 대신 엄마가 걱정하는 부분을 이해하며,'엄마가 걱정하는 일 일어나지 않게 잘 처신해. 나도 나 스스로 책임질 일만 하니까 믿어줘.' 나는 책임감 있는 사람임을 터놓는다.

'오늘은 J랑 달리기 했어! 엄마한테 인사 전해달래. 오늘은 삼겹살 집에서 같이 구워 먹었어, 엄마가 보내준 김치 잘 먹더라!'  함께 운동하는 모습, 브런치를 먹거나 요리하는 모습, 여행 중인 모습 등 소소한 사진을 타고 우리의 이야기와 서로에 대한 감정이 엄마에게 달된다. 엄마가 마음을 열때까지 조금씩 천천히.


나의 이성 친구를 내 가족에게 소개하는 이 일은 굉장히 낯설고 조심스러운 일이었지만, 관계를 공표하니 나와 그의 연애는 더욱 떳떳하고, 자유롭고, 자연스러워졌다. 엄마도 안심하는 눈치다. 스웨덴에 사는 동안 친구들의 연애를 지켜보면서 이성 친구를 가족에게 소개해주는 일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임을 많이 느꼈다. 스웨덴뿐 아니라 다른 서구권 국가에서 온 많은 친구들이 남자 친구와 함께 사는 경우도 많았다. 결혼도 안 했는데 동거를 하는 셈이었다. 혼전 동거라니 한국에서는 눈총을 받을 일일 수도 있지만 그들에겐 이 일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자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일이었다. 좋은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각자가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한데, 친구들은 함께 살면 파트너가 어떤 사람인지, 어디서 갈등을 빚고 어떻게 해결하는지 등 두 사람이 더욱 가까워진다고 했다.


"스웨덴에서는 18세(우리나라 19세 또는 20세)가 되면 자연스레 대부분의 학생들이 일을 하거나 대학을 가면서 독립을 시작해. 친구와 같이 살거나 많은 학생들이 파트너가 있을 경우 함께 살아. 경제적으로 집 값을 나눠내기 때문에 아낄 수 있기도 하지만, 사실 그 보다도 함께 살면서 서로를 더 알아가고 이해해나가는 형태로 동거를 생각하는 거지. 단순히 데이트하는 거랑 함께 살면서 겪는 문제는 다르잖아."

"스웨덴에서는 결혼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파트너와 나의 가족이 만나는 경우는 흔해. 우리의 명절인 크리스마스나 미드 섬머, 또는 생일과 같이 특별한 날 만나기도 하고, 가족 식사에 초대하는 경우도 흔해. 이런 만남을 통해서 나의 가족과 내 파트너가 잘 어울리는지도 보고, 내 파트너도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오랫동안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가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거지"


보수적인 유교사회에서 자라온 유교걸에게 동거를 하거나 상대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의 연애 형태는 새로움을 넘어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새로움이 낯설거나 거부감이 들기보다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일은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지 않나. 더군다나 수십 년을 남남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 오랜 만남을 지속하기 위해 서로의 가치관부터 사소한 생활 방식까지 궁합을 보는 것은 당연했다. 함께 사는 것은 서로를 가장 가까이서 경험하는 일이었으며 각자의 우주가 아닌 '공동의 우주'를 디자인해나가는 일이었다.


동거를 하지 않더라도, 이성 친구를 가족에게 소개하고 함께할 시간을 만드는 일도 불편하기보다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일이었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하고도 가까운 사람을, 내 평생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에게 소개해주는 일은 서로의 세계를 열고 더 깊이 탐구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두 번의 만남이나 상견례를 통해 어찌 우리가 화목한 가족이 될 수 있을지 알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가족과 나의 파트너가 거의 만나지 않는다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친구들의 표정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도미닉, 너는 과일 알레르기가 있으니까 머핀 구울 때 블루베리를 안 넣었어."

스웨덴에서 만난 독일 친구 커플 아네뜨와 도미닉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도미닉이 집에 도착하자, 블루베리가 들지 않은 머핀을 건네며 아네뜨의 엄마가 말했다. 딸 커플의 집에 놀러 온 아네뜨의 엄마는 딸의 남자 친구의 취향과 식습관에 대해서까지 소상히 알고 있었다. 딸의 남자 친구가 아닌, 아들과 엄마 사이 같았던 그 상황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자 감동이었다. 연애란 나와 상대 단지 두 사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라 생각했던 내게, 스웨덴에서 만난 친구들의 열린 연애는 진정한 연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상대방의 가족을 만나는 일은 사랑하는 사람의 삶의 역사를 여행하며 한층 더 상대를 깊게 이해하는 일이자, 상처를 보듬어 주기도 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이해하기 위한 통로가 되었다.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괜히 부모님한테 소개해드렸다가...', '만나는 사람 없어요~' 연애를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내게 스웨덴에서 경험한 열린 연애는 나만의 연애의 정석을 만들어갈 용기를 주었다. 나는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내 연애를 알리고, 남자 친구를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내 삶의 엑기스를 나눌 것이다.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들에게 나의 가장 가까운 연인을 소개하는 일이 그렇게 두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켜야 하는 사생활을 존중하면서도 사생활을 감추지 않는 개인주의의 서구 사회가 가족 공동체를 중시하는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가족 간의 소통이나 유대관계가 더욱 활발하다고 느낀 지난 2년이었다. 우리는 무엇이 그토록 겁나거나 불편한 걸까?


감추면 감출수록 일과 관계는 복잡해진다. 대신 투명하게 공개하고 내가 떳떳하다면 어떤 일이든 관계든 안정을 찾기 마련이다.

작년 여름, 옷깃만 스치고 지나갈 줄만 알았던 인연이 어느새 연인이 되었다. 어쩌면 지나칠 뻔했던 인연이 서로가 조금씩 손을 내민 덕분에 촘촘히 연결되기 시작했다. 매일 그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여전히 엄마는 딸이 너무 쉽게 마음을 주는 건 아닌지...결혼 전 아이라도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눈치다.

'엄마가 걱정하는 부분이 뭔지 너무 잘 알아. 하지만 나도 남자 친구도 그런 일이 없도록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는 성인이야' 라고 안심 시켰다. 남자 친구도 엄마의 지나친 걱정을 알아채곤, '너네 어머니에게 인사라도 하면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기시지 않을까?' 조심히 묻는다. 사진으로만 만나던 남자 친구를 영상통화로 소개하자, 집에 놀러 오라며 조심히 한술 더 뜬다. 언제나 엄마의 첫 마음을 열기가 어렵지만 남자 친구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길 잘했다 싶다.


엄마는 내게 늘 유별나다 말했는데, 어느새 내 선택을 존중해주고 믿어주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더욱 믿음이 생겼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신뢰와 사랑으로 관계를 쌓기 위해 노력하는 지금 가족들의 지지는 큰 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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