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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Oct 30. 2020

나는 의도적인 편식을 한다.

골고르 다 잘 먹지 않는 게

'는 골고루 다 잘 먹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식성이 참 바르고 좋은 아이였다. 편식하는 것 없이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섭취해서 어른들의 예쁨을 받았다. 나는 먹는 게 좋았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을 섭취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단맛, 쓴맛, 신맛 등 다양한 미각을 즐기는 게 좋았다. 초등학교 때 혀의 특정 부위에서 어떤 맛이 느껴지는지 배운 적이 있는데, 그게 너무 신기해서 음식을 혀 위에 두곤 맛을 음미하곤 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시간이 좋았다. 음식을 소비하는 시간은 관계를 쌓는 시간이었다. 그만큼 먹는 것은 내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행위였다. 살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산다고나 할까.


그런데 스웨덴에서 나는 편식하기 시작했다. 특정 식품에 대한 알레르기도 없고, 평생 편식도 하지 않았는데 음식을 가려먹는다니? 나는 스웨덴에서 지내는 한동안 의식적으로 음식을 골라 먹었다. 육류를 먹지 않고 유기농 식재료를 소비하려고 노력했다. 건강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를 대변한다는 것을 깨우친 순간부터.


스웨덴에서는 음식 재료를 하나 살 때부터 많은 것을 꼼꼼히 따지는 친구들이 많았다. 어디서 생산되었는지, 어떤 성분들을 함유하고 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유통되었는지 등 내가 신경조차 쓰지 않던 문제들을 친구들은 습관처럼 따졌다. 어느 날 내가 산 식품 포장지에 발자국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친구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이 발자국은 뭐야?'

'그건 탄소 발자국이야. 이 음식을 만들고 소비하면 줄일 수 있는 탄소 양을 나타내. 사람들이 환경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도록 돕기 위한 거지'


주변에는 건강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소비, 환경 보호, 동물 권리 보호 등 다양한 이유들로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이 많았다. 사실 나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을 골고루 먹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해왔다. 때문에 의식적으로 특정 음식을 배제하거나,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한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인만큼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생산되어 어떤 유통 경로를 거쳐오는지, 유기농인지 등 굳이 생각할 심적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한국에서 유기농 제품은 일반 제품보다 두 배 정도는 비쌌으니까.


스웨덴에 도착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친해진 친구가 있다. 프랑스 친구 Chloe(클로이)인데, 클로이는 채식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장본인이다. 그녀는 동물성 식품뿐만 아니라 동물로부터 나오거나 이를 착취하여 생산된 모든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Vegan(비건)이었다.


'왜  비건이 됐어?'

'나는 어릴 적부터 동물과 함께 자랐어. 특히 말이랑 친한데, 말이랑 교감하면서 동물들도 인간처럼 똑같이 고통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됐어. 대체할 식품이 많은데 굳이 고기를 먹을 필요가 없다 생각했어. 건강과 환경에도 좋고.'

클로이는 동물 보호뿐만 아니라 환경 보호와 건강을 위해 비건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비건에 내가 비건이 뭔지, 왜 스웨덴에 왔는지, 스웨덴에서는 무얼 먹고 사는지 질문 공세를 퍼붓자, 그녀는 프랑스에서도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스웨덴에 채식 주의자가 더 많고, 환경에 대한 의식이 더 커서 배우러 왔다고 했다.


클로이가 만든 채식 피자. 토마토 소스를 바르고 고구마,가지,브로콜리 등을 올렸다.

클로이와 마트에 함께 간 날, 클로이는 스웨덴어 까막눈이던 나를 데리고 커다란 냉동고 앞으로 데려갔다.

'햄버거 패티, 미트볼부터 소시지까지 엄청 많다!'. 다양한 간편 조리식품에 놀라자 클로이는 이 모든 게 채식 식품이라고 했다. 냉동고에는 Vegetariskt(채식의)라고 적혀 있었는데, 채식 제품만을 전용으로 파는 코너였다. 보자마자 햄버거 패티 모양, 소시지, 햄, 미트볼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콩 제품이었다. 오븐에 데우거나 다른 채소와 볶거나 구워 간편하게 요리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제품들. 수 십 가지의 채식 제품은 신세계였다. 클로이는 치즈 없이 채식 피자까지 만들어 줬는데, 우리가 아는 피자는 아니지만 채식주의자들도 나름의 방법대로 다양하게 음식을 소비하는 게 인상 깊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 사소한 모든 것에 나는 나만의 철학이 있던가.


카페에 준비된 여러 종류의 우유와 귀리 음료

스웨덴 사람들의 편식은 식사시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스웨덴 사람들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이 바로 ‘피카’라는 문화다. 피카는 커피와 디저트를 곁들여 먹으며 친구나 직장 동료와 함께 편안하게 대화를 갖는 시간이다. 우리나라에서 아메리카노를 흔히 마시는 것처럼 스웨덴 사람들은 진하게 내린 드립 커피를 마시는데, 커피가 굉장히 진해 대개 우유를 섞어 마신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매번 피카할 때마다 테이블에는 여러 종류의 우유가 준비되어 있었다. 카페에서든, 친구네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말이다. 스웨덴어를 못 읽는 내가 어떤 우유를 넣어야 할지 당황하자 친구가 웃으며 자세히 설명해 준다.

"너 혹시 채식주의자야? 이건 우유에 포함된 락토아제를 분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락토아제 프리 우유, 이건 지방이 적은 저지방 우유. 이건 채식 주의자를 위한 두유와 귀리 음료야"라고 했다. 두유는 한국에서도 흔했지만 귀리 음료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귀리 음료가 뭐야?"

"귀리 음료는 압착된 귀리에 물과, 약간의 소금을 섞여 만든 건데, 스웨덴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우유 대체품이야. 커피에 넣거나 라떼처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시리얼과 함께 먹기도 해"


우유 하나만 준비하면 될 것을 소수를 위해 다양한 음료를 준비하는 것이 어디서든 귀찮거나 손해일 법도 한데,  다양한 식습관을 지닌 사람들을 위한 대체품이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웠다. 귀리 음료를 따뜻한 커피에 섞어 한 잔 들이켰다. 단순한 커피 한 잔에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보호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다른 타인을 배려하는 배려까지 마시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대부분의 스웨덴 레스토랑에서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별도로 있었고, 항상 주문을 받을 때엔 못 먹거나 안 먹는게 없는지 질문했다. 홈파티를 할 때도 음식을 준비하는 호스트는 모두의 식습관에 대해 물어봤다.

'혹시 못 먹는 음식이나 특정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알려줘!'

스웨덴에서는 누구나 타인의 식습관을 배려해 별도의 메뉴를 준비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도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는 채식주의자가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올 경우를 대비해 채식 요리는 꼭 준비하곤 했다. 한국 음식을 만들어 대접할 때에도, 김밥에는 햄 대신 콩고기를 넣어 준비하거나, 카레는 고기 대신 두부를 넣거나, 후라이드 치킨 외에도 후라이드 두부 강정을 만들었다. 손이 더 가고 추가 재료를 구매해야 했지만, 항상 다른 사람도 나의 식습관을 존중해 주는 만큼 귀찮지는 않았다. 타인의 식습관 존중은 단순히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배려이자 가치관을 존중하는 것이었다. 먹는 것을 통해 신념을 표출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이유는 이를 존중해 주는 문화가 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스웨덴에는 채식주의자가 생각보다 더 많은 것 같아!'

'어릴 적부터 숲에서 버섯과 베리를 따고 뛰어놀며 자연과 가까이서 자랐기 때문인 것 같아'.

스웨덴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은 교육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채식주의자인 친구는 지나친 육류 소비가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며 채식도 이를 실천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했다. 내가 아끼는 자연을 아끼는 법. 2016년 이미 스칸디나비아 국가 중 스웨덴과 핀란드의 맥도널드는 McVegan(고기류가 일체 없는 맥도널드 메뉴)를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었으니 일찍부터 스웨덴 사람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사는 곳이 달라지면 생각하는 것도 달라진다고, 스웨덴에 있는 동안 나도 주변의 생각에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채식을 실천하고, 유기농 제품을 구매하는 습관을 길렀다. 유기농 제품이 일반 제품과 가격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점도 경제적 부담을 덜어줬지만, 편식을 시작한 건 내 몸과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그리고 편식을 조중해주는 환경. 채식을 하는 동안 나는 어디에서든 식습관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저는 채식주의자예요'.

편식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오히려 타인과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존중하방법임을 배웠던 시간.


사실 한국에 돌아온 후 내 식습관을 지켜내는 게 스웨덴에서보다는 조금 더 어렵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함께 음식을 나눠먹는 우리나라 문화의 특성상 음식을 골라먹기가 눈치 보이기도 한다. 삼겹살 회식에 남들이 다 Yes라 할 때, 나만 No라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불편한 일이다. 특히 신입사원이라면...


하지만, 나는 편식하는 습관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혼자 있을 때는 고기 대신 두부나 해산물을 먹고, 우유 대신 두유를 선택한다. 모임이 있을 때 피치 못하면 고기를 먹지만, 나눠 먹지 않는 경우에는 고기가 아닌 메뉴를 주문한다. 여전히 나만 다른 메뉴를 시키는 일은 눈치 보이기도 하고, 외식을 할 때 고기가 없는 메뉴를 찾기는 정말 힘들다. 하지만 나는 내 건강과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나만의 방식대로 편식할 계획이다. 그리고 타인의 식습관을 먼저 물어보고 배려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직까지 음식을 나눠 먹고, 함께 식사하는 상대의 식습관을 물어 보는 게 어색하기에  ‘혹시 못 드시거나 안 드시는 음식 있으세요?' 먼저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면 상대도 자연스레 배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스웨덴에서 나는 채식주의자냐 아니냐를 떠나 개개인의 식습관 및 소비 형태를 존중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임을 배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나의 건강과 소비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사회를 나부터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나와 자연을 위하는 길이자 결국 인간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못 드시는 것 있으세요?' 먼저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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