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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크라테스 Nov 01. 2020

떳떳한 인생의 첫 F학점

'국영수사 내신 1등급, 올 A+'

내가 인생에서 가장 명확했던 목표를 가졌을 때는 학생 때였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내신 및 수능 성적을 잘 받아야 했고, 대학교에서는 장학금을 받고 취업을 잘하기 위해 A+를 목표로 했다. 학교 책상 한 모퉁이에, 책상 앞에, 지갑 곳곳에 부적처럼 1등급이 적힌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다. 인생에서 1등급이 아닌 2등은 목표로 해서는 안되었다. 한 번 미끄러지는 순간 내가 목표로 했던 것들을 놓칠 테니까. 성적표에 F가 새겨지는 순간, 지울 수 없는 낙인이 될 것 같았다. 머리가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악착같이 노력해, 우수한 내신과 학점으로 학부를 졸업했다. 내신 1.2등급, 학점은 4.3 만점에 4.01. 그때는 숫자가 높으면 우수한 줄 알았고, 내 인생에서 성적표에 F학점을 받는 순간 인생은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성적표에 B자만 떠도 재수강을 결심하던 내가, 인생의 첫 F학점을 자랑스레 또는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받은 건 스웨덴에서였다. 내가 간절히 원해서 택한 스웨덴행이었지만, 스웨덴 생활이 쉽고 모든 게 좋지만은 않았다. 친구를 사귀는 것, 영어로 공부를 하는 것, 여러 가지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것, 필요한 것을 사는 것 등 스웨덴 생활에 적응하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국에서는 충분히 혼자 할 수 있는 사소한 일도 타인의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하지만 가장 나를 괴롭힌 것은 너무나도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었다. 어렵게 따낸 소중한 장학금과 여러분의 도움을 받아 이 곳에 온 만큼 2년 동안 남들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싶었다. 새로운 환경에서도 내가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나의 너무나도 큰 욕심이었던 걸까? 아니면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스웨덴 유학 초반 A+은커녕, 수업을 따라가기도 벅찬 나날들 앞에 나는 좌절하고 말았다.


석사 수업은 수업보다 혼자 또는 그룹으로 공부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교수의 강의는 1주일에 두세 번 하루 3시간 정도, 나머지 시간은 관련 연구 논문을 읽고, 함께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토론하거나 혼자 글을 쓰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1주일에 한 편은 논문을 읽고 내 의견을 정리해 글을 제출해야 했는데, 교수님이 늘 가르쳐 주는 것을 받아 적거나 암기하는 것에 익숙했던 나는 혼자 학습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수많은 연구 논문 중 무엇을 읽어야 되냐고 하니, 교수님은 내가 관심 가는 것부터 찾아 읽는 게 좋다고 했다.

"특정 주제에 국한되지 말고, 큰 범위 안에서 네가 가장 관심 있는 걸 찾아 읽어봐. 그게 가장 나에게 맞는 거야. 여러 가지를 읽다 보면 구체적인 주제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졌지만, 막상 선택을 하려 하니 읽을거리를 선택하는데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가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는 지를 고민해보지 않아서일까. 읽는 게 벅찬데 글을 쓰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공모전 수상 경력으로 논문을 면제받았는데, 논문도 작성해보지 않은 부끄러운 학부 졸업생으로서 나는 연구계획을 세우는 법도 몰랐다.

"학부에서 어떤 연구를 해 봤니? 너의 논문 주제는 뭐였어?" 교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연구를 해봤는지 물어봤는데, 친구들이 신이 나서 학부 시절 자기 연구 결과를 공유하는 동안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자괴감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너무나도 압박했다. 그 학기, 나는 이 수업을 끝내 이 수업을 이수하는 것을 포기했다. 내 생애 첫 Fail. 친구들이 한 학기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날, 나는 끝내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못했다.


-

교수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관광학개론을 듣고 있는 한국 학생 도희에요. 교수님께 상의드리고 싶은 게 있어 이메일을 드려요. 내일은 수업을 마무리짓는 연구 결과 발표 날인데, 저는 제 연구를 마무리짓지 못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우 내일 수업 끝나고 상담을 요청드리고 싶어요.

-


나는 마지막 발표를 앞두고 교수님께 이메일을 썼다. 기한 내에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지 답답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런데 교수님은 답장은 예상 밖이었다. 연구를 마무리 짓지 못한 건 괜찮다며, 우선은 내일 친구들 앞에서 내가 마무리한 데까지는 정리해 발표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미완성된 과제를 발표하는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친구들과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할까 온갖 고민으로 머리를 싸매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마지막 수업에서 나는 마지막 타자로 미완성된 과제를 쭈뼛쭈뼛 발표했다. 

'내가 정한 주제는 한국의 출산율에 대한 관한 건데, 사실 아직 과제를 마무리 짓지 못했어..'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준비한 데까지만 발표를 했다. 어색한 발표를 마치고 교수님과 면담을 했다. 아빠 같은 푸근한 인상의 스웨덴 교수님은 수고했다는 인사를 시작으로, 과제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더니 대뜸 스웨덴에서의 생활이 어떤지, 학교 수업은 어떤지, 영어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는 건 어떤지 내 기분에 대해 상세히 묻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외국에서 사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 혹시 전에 외국에서 살아봤니?" 장기간 해외에서 사는 건 처음이라고 하니 나의 마음 상태부터 걱정해 준다.

"가족이랑 친구들과 떨어져 살면서 고향이 그립진 않니? 음식은 잘 맞고?"

마무리하지 못한 과제 때문에 조마조마하던 나에게 교수님은 과제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내가 힘든 점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자, 그동안 묵혀두었던 힘든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30분 내내 내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낯선 외국인 교수님 앞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속에 담은 이야기를 다 토해내자, 비로소 교수님은 마무리하지 못한 수업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제시해주었다.


"과제는 당장 마무리하지 않아도 돼. 우선 너의 마음을 돌보고 준비가 되었을 때 마무리해서 내렴. 이제 여름 방학도 시작됐으니 좀 쉬면서 머리도 식히고, 천천히 해나 가봐. 학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가 과제를 마무리하면 그때 내가 평가해서 성적을 매길 거야. 스웨덴에서는 한 수업을 이수하지 못해도 재시험 또는 재 이수의 기회가 있어. 재시험을 본다고 해서 어떤 불이익도 없으니 걱정 말고 여름 방학을 즐겨!" 


교수님의 위로에 나는 생애 처음으로 스스로 F학점을 부끄럽지 않게 받았다. 끝내지도, 우수한 성적을 받지도 못했다는 자괴감에서 해방된 기분. 게다가 여름 방학을 먼저 즐기라니! 모두의 속도가 다르고,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는 걸 포용해주는 환경 덕분에 나는 재정비 후, 재도전할 수 있었다. 교육의 목적이 타인과의 무한 경쟁이 아니라, 나 자신의 지적 성장에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처음으로 맛보는 해방감에 그동안 나를 점수로만 평가해온 모든 것에 소리를 질렀다. 성적이 대순가!


상담 후 함께 수업을 듣는 스웨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있단다. 

"다른 수업에서 내 준 과제가 있는데, 혼자 해내가야 하니까 어려워.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통과 못하면 다시 해야지". 나만 힘든 줄 알았고, 나만 모르는 줄 알았는데 친구도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는 성적보다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더 걱정했다. 통과 못하면 다시 하면 되니까. 친구는 실패가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완성하지 못한 한 과목. 자진해서 받은 인생의 첫 F는 나를 낙오시키지도 부끄럽게 만들지도 않았다. 처음으로 어렵거나 힘들 때는 쉬어가도 된다는 걸 깨닫게 해 준 실패. 나는 더 이상 버팔로처럼 앞만 보고 달리지 않기로 , 힘들면 내 속도에 맞게 쉬어가기로 했다.


학생 생활을 접고 사회로 나온 지금도 그때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스웨덴에서 돌아와 어렵사리 들어간 첫 회사에서 나는 4개월 만에 퇴사를 했다. 일도 재미없었고, 조직 문화도 맞지 않아 매일 회사를 가는 게 힘들었다. 취업도 어려운데 퇴사를 하는 게 맞을지 수 백 번 더 고민했지만 나는 회사 생활의 첫 F를 받기로 했다. 다시 도전하면 되니까. 맞지 않는 데 그만두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니까. 내 속도에 맞게 움직이고, 방향은 다시 잡으면 되니까.


배움을 배움에서 끝내지 않고 실천해 보는 것이야 말로 삶을 변화시키는 핵심 키다. 첫 직장을 퇴사하고 8개월이 지난 후, 올해 5월 남들보다는 한참 느리지만 31살에 나는 신입사원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주 6개월 간의 수습을 마치고 정직원이 되었다. 조직 생활을 하며 내 속도와 방향을 조직에 맞춰 가는 과정을 배우는 지금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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