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컬쳐커넥터 김도희 May 18. 2024

호주보다 더 멋진 곳은 정말 없을까?

우리 가족과 한국의 희망을 찾아서

호주만큼 멋진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호주에 관심을 가지면서 처음 접한 이 강렬한 카피는 호주관광청의 캐치프레이즈다. '자기 나라에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자신만만하기에 이런 카피를 생각했을까?'. 그들의 콧대 높음을 잠시 코웃음 치다가도 내 나라를 향한 자부심에 호주 사람들이 이내 부러워졌다. 단순히 정부 기관이 만들어낸 마케팅 문구라고만 생각하기엔 주변의 수많은 호주인들은 자기 나라를 정말 자랑스러워했다. "호주는 정말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해!".

관광으로도 멋지지만, 살기에도 멋지다는 곳.

다양한 글로벌 미디어와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호주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족친화적인 국가로 손꼽힌다.  과연 우리나라를 살기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실 국위 선양하는 연예인이나 과학자들을 보면 나 역시 국뽕이 차오를 때도 있긴 하지만 그 국뽕도 잠시일 뿐이다.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아무리 강해진다 한들 내 삶의 웰빙 지수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으니까. 저출산, 인구 절벽, 치열한 입시 교육 등 구조적인 문제 앞에서 나는 한없이 무력해지고 만다. 바꿀 것인가? 떠날 것인가? 10년 전에 했던 고민은 다시 되돌이표처럼 30대 중반 내 삶에 나타났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둔 4학년이었다. 친구들은 이미 다 취업해 일하고 있던 반면, 나는 헬조선 탈출(당시에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했다)을 목표로, 인턴십과 카페 알바를 전전하며 해외로 나갈 기회만 절치부심하며 알아보던 중이었다. 당시에는 빨리 취업해서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목표보다, 하루빨리 남들보다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절실했으니까. 그 절실함엔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에서의 삶에 대한 불안과, 다른 나라에 살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과 판타지가 내 마음 기저에 깔려 있었다. 결국 2016년 스웨덴 정착을 목표로 북유럽 스웨덴으로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떠났지만 나는 졸업 후 주어지는 구직 비자도 마다하고 한국으로 자진해 돌아왔다. 그 이유는 바로 가족이었다.


사실 유학을 떠날 땐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하지만 스웨덴에서의 시간은 인생에서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었다. 개인주의가 만연할 것 같았던 서구 사회가 오히려 가족주의적인 것을 보며, 내가 가족과 맺고 있는 관계가 얼마나 건강한지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 스웨덴에서 배운 건강한 가족 관계란 별거 없었다. 가족들과 얼굴 마주하고 한 끼라도 식사를 더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고, 사소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나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10여 년을 혼자서 자식 둘을 뒷바라지 한 엄마를 보며, 한 살 한 살 나이가 드는 엄마와의 시간을 붙잡고 싶었다. 엄마는 언젠가 내 곁을 떠날 테고 결혼하면 나는 내 가족이 생길 텐데, 엄마와 함께 살 수 있는 시간이 3~4년 정도로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만으로 귀국 동기는 충분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또다시 다른 나라를 탐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불안에 휩쓸려 한국을 떠나려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는 해외에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은 희망에 현실 도피성 마음이 더 컸다. 반면에, 지금의 탐색 과정은 나 자신과 결혼 후 꾸린 우리 가족의 주체적인 삶을 위한 선택이자 생존을 위한 투쟁에 더 가깝다. 주체적인 선택이라는 의미는 이 세상에 완벽한 나라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여러 나라의 장단점을 살피며 내가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잘 실현되는 나라를 찾는다는 의미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의미는 한국에서의 삶에서 장기적인 희망을 발견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다. 프게도.




한국이, 한국에서 슬퍼서..

지난 5년 간 한국에서의 삶은 엄마와 같이 살기도 했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 결혼도 하고, 첫 회사 생활도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재밌는 나라인 한국에서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자 계획하는 지금 슬프게도 내 가족들과 함께하는 삶이 한국에선 잘 그려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생김새가 좀 다르다고 눈에 띄거나, 차별받으면 어떡하지?'

'이제 출산을 계획하고는 싶은데, 임신을 앞두고 재취업할 수 있을까?'

'혹시 취업 직후 임신하게 되면 회사에 솔직히 말해야 하나... 축하는 받을 수 있을까?'

'아이를 낳고, 아이와 회사 중 꼭 양자택일을 해야 할 때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 학원은 안 보내고 싶은데, 학원을 가지 않고 친구를 사귀거나 입시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거의 모든 사람이 돈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대, 올바른 삶의 가치란 무엇일까?'


인생의 전환점, 결혼

육아 휴직, 저출산, 입시 지옥, 지나친 물질주의 등 한국 사회가 당면한 과제 앞에서 나는 사실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다. 한국에서 사는 게 싫지 않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다른 나라로의 이주를 고민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해답을 영영 찾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너무 슬프게도 우리 사회, 아니 우리 마음 곳곳에 이기주의나 물질 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이상 시간이 너무나도 오래 걸릴 것 같다. 하지만 해답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으려 한다. 와 우리 가족의 안녕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내가 배우고 느낀 것을 나누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변화의 초석은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내 삶에 적용하는 데서 시작되니까.


결혼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나를 넘어 가족, 그리고 사회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 가족은 사회를 이루는 가장 작은 공동체이니까. 나와 남편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에 대한 탐색은 이제 시작됐다.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살고 싶은 나라에 대한 바람은 소박하다. 가족이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고, 다양한 생김새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며, 아이들이 타인을 짓밟기보다 존중하는 법을 먼저 배우고,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무자비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생존 방법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살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간으로 클 수 있는 곳.


호주 역시 완벽한 나라는 아니겠지만, 우리 가족의 희망의 씨앗을 심을 수 있는 곳이지 않을까? 다양한 이민자가 모여 호주인으로 살아가는 곳에서, 한국이 마주한 여러 사회 문제에 힌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가족의 미래와, 사랑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있는 한국의 미래를 찾기 위해 나는 호주로 떠나기로 했다.


호주에서 실낱 같은 희망을 엿볼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