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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Jul 17. 2024

임신을 앞두고, 호주에서 미리 엄마 공부를 했다

진정한 아이 중심의 양육이란 뭘까

결혼 후 1년이 다 되어간다. 결혼 후 반년은 한국에서, 반년은 대만에서 달콤한 신혼을 즐긴 후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더 차갑다. 다음 달 한국에 돌아가기에 단절된 내 커리어를 살리고 가족을 꾸릴 계획을 하고 있자니 숨이 턱턱 막혀오고 걱정도 많이 된다. 경력 전환, 임신, 출산, 육아까지 병행할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의 문제 앞에서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부족해서인지, 잘 해낼 수 없게 만드는 환경의 문제인지 혼란스럽다. 나약한 내 마음을 탓일까, 여자로서 태어난 운명을 슬퍼해야 하나,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게 만드는 현실을 탓해야 하나? 모든 것은 복합적으로 인생에 영향을 끼치지만, 그래도 나는 환경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개인은 제도와 환경 앞에서 취약하고 마음으로만 해낼 수 없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시사 주간지에서 자녀가 없는 부부에게 1억 원을 주면 출산을 할지 물었더니, 낳지 않는다고 했단다. 그런데 100억 원을 주면 낳겠다는데, 대신 아이와 함께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겠다고 답했다 한다. 승자독식과 획일화된 성공을 위해 끊임없는 경쟁이 펼쳐지는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Pixabay, 저작자; hyeongchae hwang

나는 이에 고개를 끄덕 거리며 깊이 공감했다. 획일화된 입시 교육과 삶, 치열한 경쟁 문화를 내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아이가 자신의 고유한 색을 찾지 못하고 불행에 가까워질까 봐 두렵기도 하다. 아무리 중심을 잡는다 해도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맹자의 어머니도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를 했다. 더 나은 환경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나라를 막론할 것이다. 그럼, 도대체 '더 나은 환경'이란 뭘까?


가족 친화적인 호주의 육아 환경

호주 멜번 근처의 작은 타운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국인 아내, 호주인 남편인 국제 커플을 만났다. 호주는 전 세계에서 가족 친화적인 나라로 손꼽힌다. 때문에 호주에서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환경이나 문화는 어떤지 알아보고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감사히도 친히 집으로 초대해 주셨는데, 한국인 엄마와 호주인 아빠를 반반 닮은 만 세 살의 예쁜 작은 소녀도 만날 수 있었다.

정말 맛있었던 호주 스테이크와 샐러드

낯선 이의 방문에도 어색함 없이 자신의 소중한 장난감을 나눠주던 아이. 한적한 정원에서 남편분이 구워주시는 맛있는 스테이크를 나눠 먹으며, 작고 소중한 생명체를 키우는 위대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호주에서 아이를 키울 때 가장 좋은 점은 아이와 엄마를 위한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점이에요. 아이 교육 관련해서는, 초등학교도 학업에 집중하는 곳이 있는 반면, 예술이나 스포츠에 집중하는 곳도 있어요. 비용은 다르지만, 아이의 재능과 부모의 교육관에 따라 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한편, 한국은 수학, 독해 등 기초 학문에 대해서는 평균적으로 양질의 공교육을 제공한다 생각해요. 하지만 아이 성향이나 재능에 따라 개인화된 선택을 할 수 없는 점은 참 아쉬워요."


이어 아내 분은 덧붙여 말했다.


"더불어, 엄마 입장에서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요. 평일 내내 일하지 않고, 1주일에 세 번 파트타임을 할 수 있는 직업도 많죠. 저는 1주일에 세 번 출근을 하고, 나머지 이틀은 아이 양육을 맡고 있어요. 파트타임이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큰 차별은 없어요."


교육과 일은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인데, 아이와 엄마의 입장에서 모두 선택지가 다양하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제도와 문화가 개개인의 성향과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인지하고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느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열심히 삶을 일궈나가고 싶은데, 임신 준비를 하며 유연하지 못한 근무 환경이나 고용 형태에 다시 좌절한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엔 유연함이 너무 부족하다. 모 아니면 도. 인서울 VS 지방대, 정규직 VS 비정규직, 대기업 VS 중소기업, 결혼 VS 비혼, 많은 것이 극과 극이다. 태어나는 환경도 타고난 기질도 다른 인간이 양 극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각자의 상황에 맞게 존재할 수 있는 넓게 펼쳐진 삶의 스펙트럼이 있다면 저출산이 이렇게나 심할까?


제도와 문화가 먼저인지, 철학이 저인지는 사실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나부터 모두가 고유한 존재임을 깨닫고 자율적인 삶을 위해 맞서 싸우는 것이다. 개인주의가 꽃피우기 어려운 한국에선 힘든 싸움이지만 주도적인 길을 만들어가며 자기 효능감도 기를 수 있고, 한 인간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다시 느다. 렇다면 자율성이란 무엇인일까?



진정한 '아이 중심'의 육이란

2시간 동안 우리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부부는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며 아이를 독립적인 개체로 키우고 있었다. 스스로 식사하도록 도와주고, 식사 후에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정원에서 맨발로 뛰어놀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저희는 매주 아이와 함께 캠핑을 가요. 처음엔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긴 여행인 데다 제대로 된 잠자리도 없고 씻을 곳도 없어서 아이가 힘들어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자연을 가까이서 느끼고 탐험하고, 텐트를 함께 짓는 과정에서 독립심도 기르고요."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아이가 돌로 지은 현관 앞에서 쾅 넘어졌다. 나는 깜짝 놀라 호들갑을 떨뻔했는데, 부부는 너무나 평온하게 " OO야, 괜찮아, 괜찮아. 훌훌 털고 일어나"라 대처했다. 아이는 훌훌 털고 일어나더니, 놀란만큼 울먹 거리는 표정을 짓다 엄마 품에 쏙 안겼다. 아내분은 아이를 꼭 안고 아이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네가 놀란 것을 이해해, 하지만 의젓하게 잘 대처했다고 안심의 신호를 보내주는 것 같았다. 엄마 품에서 잠시 진정한 아이는 다시 신나게 탱탱볼을 튕기러 정원으로 뛰어갔다.


부모는 아이를 지켜주는 사람이지만, 진정으로 지켜준다는 건 아이가 어떤 것이든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아닐까. 멜번에서 출산한 한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한국에서는 출산 후 많은 것이 산모 중심으로 돌아가잖아요, 산후조리만 봐도 아이는 조리원 간호사님들이 돌봐주시고, 산모는 특식, 마시지 등을 통해 회복에 집중하고요. 그런데 호주는 모든 것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요. 산후조리원이라는 개념도 없지만, 출산을 준비하며 부부가 가장 중요하게 배우는 것이 아기가 보내는 작고 미묘한 반응을 보고 해석하는 법이에요."


진정한 사랑은 과잉보호나 아이를 위해 대신 무언 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을 알아차리고 그에 반응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부모이자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깨달았다.



양육의 목적은 자녀의 독립이

이 만남 후 자녀 계획을 앞두고 경력 단절이나 육아에 대한 걱정보다 나는 부모가 될 준비가 됐는지, 사회에 휩쓸리지 않고 올바른 방식으로 사랑을 주고 행복한 아이로 키울 수 있을지 더 걱정이 된다. 문득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아이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아이가 하나의 인격체로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자 다짐한다.

자유롭게 뛰놀던 시드니 아이들

전 국민의 육아 멘토 정신의학박사인 오은영 박사는 양육의 목적은 자녀의 독립이라고 말이다. 오 박사는 한 프로그램에서 탯줄이 끊어지는 순간부터 자녀는 부모로부터 독립적인 존재가 된다고 했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 역시 오래된 고전이자 대표적인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부모의 참된 사랑은 자식이 떠날 준비가 됐을 때 떠나보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엄마의 자궁 속에서 열 달, 모유 수유를 하는 동안 부모 자식은 분리되어 있지 않지만 그 후 부모와 자식은 독립적인 관계가 된다. 에리히 프롬은 진정한 실존은 분리 불안을 극복하고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기에, 부모의 진정한 사랑은 자식이 세상을 혼자 힘으로 헤쳐나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는 것이라 강조했다.


낯선 곳에서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 부부의 삶에서 내가 그리는 미래를 엿보았다. 한국에서든 다른 나라에서든 양육의 본질은 같다. 아이가 고유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자랄 수 있는 환경과 정신적인 지지를 해주는 것, 조금은 아주 조금은 훌륭한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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