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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Jul 29. 2024

시드니가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인 이유

통계와 호주 여행으로 본 우리 행복의 나침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conomist Intelligence Unit), 브랜드 파이낸스 (Brand Finance) 등 글로벌 평가에 따르면, 호주 도시 시드니는 매년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 지난 5월, 시드니에 도착했을 때의 첫날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당시 나는 장장 20시간의 긴 비행을 마친 참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풍경이 장시간 비행으로 인한 피로도 잊게 만들 만큼 눈물나게 아름답다고 느껴졌다.그렇다고 내가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시드니의 아름다운 항구를 거닐었을 뿐인데도, 가슴이 벅차오르며 '행복하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한국과는 다르게 흐르는 듯한 시드니의 시간

삼삼오오 모여 여유를 즐기는 시드니 사람들

여행자로서 본 시드니는 약간 과장하면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나도 죽기 전에 한 번은 여기서 꼭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라는 시드니 항구를 따라 달리기나 산책을 할 수 있는 보도가 잘 마련되어 있고, 항구 주변 식당들도 즐비했지만 어지럽지는 않았다. 러닝화에 짧은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항구 주변을 뛰는 현지인과 관광객은 한데 섞여, 각자의 목적에 맞게 아름다운 도시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다. 


눈에 띈 것은 그곳에서 일하며 사는 현지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바쁜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여유가 넘쳤고, 친구나 가족과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늘 시간에 쫓기며 피곤에 절어 사는 많은 한국 사람들과 달리, 똑같이 매일 돈 벌고 일하며 살 텐데... 그럼에도 시드니 사람들에게선 다른 에너지가 느껴졌다.


시드니의 시간은, 빠르고 효율적으로만 돌아가는 한국 사회와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시드니에 다녀온 친구들은 시드니가 런던이나 파리처럼 박물관, 갤러리 등 문화적 명소가 많은 곳은 아니라서 새로운 것을 많이 보기는 어렵지만,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여유롭고 행복해져 치유되는 기분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시드니에 도착해 직접 내 눈으로 보니, 여길 먼저 다녀간 친구들 말이 단순한 과장이 아니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2023년 시드니 위원회(The Committee of Sydney) 조사에 따르면, 시드니 거주자 중 81%가 '내 삶에 만족한다'라고 답했다. 이는 다른 글로벌 메가 시티인 런던(76%)과 뉴욕(75%), 토론토(64%)보다 높다. 서두에 언급한 여러 글로벌 평가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시드니가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인 이유로 4계절 내내 온화하거나 따뜻한 날씨, 깨끗한 자연환경, 다문화, 가깝고 아름다운 해변, 뛰어난 공공 의료 시스템과 교육 등을 꼽았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주택 공급 문제로 거주 비용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시드니가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자주 꼽히는 건 왜일까. 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가까이서 누릴 수 있는 깨끗한 자연환경, 좋은 날씨, 뛰어난 교육과 의료 시스템, 그에 더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 때문이 아닐까. 이 모두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가치들이다. 


우리가 사는 한국은?

(영국인) 남편은 내가 한국 친구들을 만나고 오면, 집에서 ‘돈’ 얘기만 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남편의 그 말에 너무 놀라 곰곰이 친구들과의 대화를 곱씹어 보았는데, 최근 몇 년 새 친구들을 만나면 정말 돈 얘기만 한다. 재테크, 부동산, 아이를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 연봉은 얼마나 올랐는지 등 그 영향이 남편과의 대화에까지 미친 것이다.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괜히 경제적으로 뒤처지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하루빨리 재테크를 배워 투자를 해야 한다거나,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해서 빨리 연봉을 올려야 한다는 등의 불안한 잔소리를 하게 된다. 물론, 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알고 금융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는 것은 중요하지만, 우리 삶에는 돈보다(또는 돈만큼)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정신 차리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불안함이 내 마음을 지배한다.


최근 인상 깊게 본 유튜브 영상이 있다. 바로 330만 구독자를 가진 경제 유튜버 슈카의 영상이다. 슈카는 금융 기관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 뉴스, 주식 투자, 부동산, 가상화폐 등 다양한 경제 이슈를 쉽게 풀어 설명해 나도 즐겨 보는 채널이다. 그는 두 번 째 채널에서 최근 국내 한 방송사와 함께 떠난 일본 저출산 관련 다큐멘터리 촬영 중 일본 정부 관료, 청년, 대기업 임원, 한일 부부, 자영업자, 부동산 연구소 소장 등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한 후일담을 나눴다. 슈카는 일본의 오랜 저성장과 저출산 문제로 사람들이 비관적일 거라 생각했으나, 사람들의 심적 여유로움에 놀랐다고 한다. 특히 인터뷰 과정에서 자신의 질문들이 돈에만 집중된 것을 깨닫고 자괴감을 느꼈다고 했다.

경제 유튜버 슈카의 일본 방문기

90년 된 작은 가게를 운영하거나, 이곳에서 평생 일하고 싶다는 청년들에게 “대기업에 들어가면 더 많이 벌 수 있는데 왜 이 일을 계속하냐”라고 묻거나, 맞벌이를 하다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둔 여성에게 “수입이 줄어들거나, 경력이 단절되는데 힘들지 않냐”라고 질문하는 등, 장인 정신, 아이를 키우는 보람 등은 생각지도 않고, 모든 것을 ‘돈’으로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슈카는 특히 통계청의 <우리나라 청소년 직업 선택 요인> 결과를 인용하며, 지난 10년 새에 우리 사회가 물질 중심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통계청 사회 조사에 따르면, 2013년에는 청소년이 직업을 선택할 때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이 적성(38.1%), 수입 (25.5%)였는데, 2023년에는 수입(35.7%)이 최우선, 적성(30.6%)이 그 뒤를 이었다. 직업 선택에 있어 수입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3년과 비교하면 10.2% p 증가한 반면 적성·흥미는 7.5% p 감소한 것이다. 장래희망에 순수하게 내가 되고 싶은 것을 꿈꾸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르며,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절감했다.



행복의 나침반은 어딜 향하고 있나

2021년 미국의 싱크탱크 퓨 리서치센터(Pew Research)‘What Makes Life Meaningful? Views From 17 Advanced Economies(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요소는? 경제 선진국 17개 국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21, Pew Research

이 결과에서 눈에 띄는 것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족’이 자신의 삶을 가장 의미 있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17개국 중 스페인, 한국, 대만을 제외한 호주, 영국, 스웨덴 등 모든 나라가 가족을 1순위로 꼽았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만이 17개국 중 유일하게 '물질적 충족'을 삶을 가장 의미 있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았다는 점이다. 이 물질적인 충족은 기본적이 욕구인 먹을 것과 살 곳(거주지)을 해결하는 것에서부터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충분한 소득', '빚이 없는 상태', 그리고 '오토바이 타기나 여행' 같은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 중 ‘의미 있는 관계’가 우리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는 게 다양한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그 반대로 향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고독사,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청년들, 경제적인 이유로 연애나 친구와 보내는 시간을 포기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점점 더 고독해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 직장 외 부업, 주식 및 코인 투자, 부동산 등 재테크 열풍이 불며 사람들의 물질적인 성공에 대한 욕망은 더 커져간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다만, 물질적인 충족을 위해서만 아직도 우리가 지금 달성할 수 있는 행복을 미루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 매일 우리가 나누는 대화에 돈이나 소비가 아닌,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나눈 대화, 즐거웠던 독서나 여행, 인간다운 삶에 대한 고찰이 담긴 대화들이 조금씩 피어나길 바래본다.


1938년부터 85년 간 진행된 하버드 대학 연구에 따르면, 행복은 ‘부, 명예, 학벌이 아닌 관계’에 있다. 소중한 관계를 지키기 위해 경제적 자유를 외치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지만, 소중한 관계는 경제적 자유가 달성되지 않아도 지금 지켜낼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남들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가치를 내 인생의 우선순위로 삼고 좇아가고 있진 않은지? 본질적인 행복을 나는 온전히 지켜내고자 노력하고 있나? 자문해 본다.


어디에 사는지에 따라 우리 생각은 형성되고 영향을 받는다. 그럴수록 내가 속한 환경으로부터 나를 떨어뜨리고 온전히 내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삶의 모습은 다르지만 인간으로서 우리가 행복은 느끼는 지점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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