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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예기치 않게 시작된 인생 챕터

이주, 임신, 그리고 나다움을 지키려는 다정한 고백

by 국경 없는 펜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정말... 꽤나 오래 멈춰 있었던 글쓰기의 이유는, 바로 제 삶에 찾아온 여러 변화들 때문이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시작된 새 역할 속에서 저는 다시 나를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오랜만에 드리는 인사와 고백, 따뜻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호주에 온 지 5개월, 바라고 바라던 이주였지만 이유 없이 마음이 무거운 날들이 이어졌다. 올 3월, 호주에 오자마자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임신이라니...! 물론 남편과 상의해 준비했던 일이지만 사실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요즘 임신도 어렵다는데, 시도하자마자 찾아온 소중한 아가에게 고마운 마음보다는 내 삶에 들이닥칠 변화가 그려지지 않아 두려웠다. 집도 없고, 주변에 도움 줄 친구나 가족도 없고, 이곳 의료 시스템도 모르고.. 해외 취업이라는 도전도 멋지게 해보고 싶었는데 모든 게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찾아온 아가 소식은 사실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지난 5개월 임신이라는 큰 변화를 받아들인 줄 알았는데, 문득문득 감정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누구보다 축복받아야 할 시간인데도, 나는 자꾸만 예전의 나를 떠올렸고, 지금의 나는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게만 느껴지기도 했다. 안정을 취해야 한다 해서 취하다 보니 어느새 3개월이 지났고,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현실적으로 출산과 육아를 병행하며 할 수 있는 것을 조금 더 선명하게 그리기까지 2개월이 더 걸렸다. 어쩌면 ‘머리로는 받아들였지만, 마음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던 걸지도 모른다.


너무 성급하게 계획한 건 아니었을까, 잠깐의 후회도 있었고, 남편과 함께 목표를 세우고 준비한 일이었지만 ‘이주, 임신, 취업, 정체성’ 한꺼번에 찾아온 변화들을 받아들이기까지 무려 5개월이 걸린 셈이다.


그리고 지난주, 임신 후 처음으로 엉엉 눈물이 터졌다. 임신 전의 나, 지금의 나, 미래의 나. 예전엔 내 삶의 중심만 잘 잡으면 됐는데, 이젠 한 생명을 책임지고 양육해야 하는 ‘부모’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더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온전히 살아내고 싶은 ‘개인’으로서의 자유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답이 보이지 않았고, 욕심은 많고 시간과 에너지는 부족하고. 이 혼란 속에서 뱃속 아가에게도 신경을 잘 못 써주는 것 같아 죄책감마저 들었다. 아마도, 엄마이자 한 개인으로서 현명하게 살아낼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짓눌렀던 것 같다. 억눌러왔던 감정 덩어리를 결국 터뜨리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아니면, 호르몬의 작용일 수도.

선샤인 코스트


그리고 다음 날, 남편과 나는 햇살 가득한 퀸즐랜드의 선샤인 코스트로 향했다. 햇살을 종일 받았던 그 여행 덕분일까, 마음을 덮고 있던 불안과 혼란의 먹구름이 걷혔다. 이제 나는, 그저 ‘상황이 바뀌었으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수동적인 수용이 아니라, 매일 달라지는 몸의 변화에 귀 기울이고, 매일 커지는 아가의 움직임을 느끼고, 남편과 함께 우리의 미래를 그리며 생경하지만 경이로운 이 변화를 향해 조심스럽지만 거침없는 한 걸음을 내딛으려 한다.


사실 아직도 매일이 낯설고, 여전히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확실함과 두려움에 잠식되는 대신, 나에게 주어진 이 변화를 새로운 인생을 만드는 시간으로 채워보려 한다. 변화는 과거와 현재의 나를 지우는 게 아니라, 내가 몰랐던 나를 만나게 해주는 여정 위에 있는 마법의 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내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이렇게 써내려 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 믿는다.



유튜브에 호주에서의 소소한 일상과 깨달음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위로와 공감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더할 나위없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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