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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Jan 28. 2024

주인공들이 밤새 쿠키를 먹은 까닭은

겉바속촉한 너를 위해 구웠지


 오트라테 주문을 받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네, 비숍입니다~"

"지금 초코칩 쿠키 재고가 있나요?"

"네!"

"방문하겠습니다."


 초코칩 쿠키의 정확한 이름은 비건&슈가프리 통밀두유초코칩쿠키다. 넷플릭스 시리즈 <데드 투 미Dead To Me>를 보다 만들게 된. 각자의 침대에서 같은 초코칩쿠키를 먹으며 밤마다 통화하는 두 주인공(약 40대로 보이는)에게 반해 나도 모르게 초코칩쿠키가 먹고 싶어진 게 발단이었다. 맛은 물론 성분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초코칩 쿠키를 만들어야지. 그리하여 밤에도 부담 없이 집어먹을 수 있는 간식이 탄생했다. 별로 달지 않아 출출할 때 하나 먹으면 기분이 딱 좋아지는!


 살균한 소젖, 즉 우유 대신 국산콩 무첨가두유를 넣고 우리밀 통밀도 듬뿍 넣었다. 설탕이 들어가는 여느 초코칩 대신 무설탕 다크초콜릿칩을 썼다. 동물성버터 대신 코코넛오일 80%와 유기농비건버터 20%를 넣었는데, 비건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 입에도 잘 맞는 모양이다. 앉은자리에서 수십 개도 먹을 수 있다며 시아버님 것도 왕창(?) 만들어달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매장에서도 점점 인기를 끌기 시작해서 한 번에 두 개는 먹어줘야 한다는 손님들의 증언이 들려왔다.


 그래도 전화까지 해서 쿠키 재고를 묻다니, 어떤 손님인지 궁금하다. 매장에 오셨던 분인가? 아니면 배달앱으로 쿠키를 자주 시켜드시는 00님?


 15분쯤 지나 한 가족이 매장 앞에 차를 세웠다. 자녀 한 명과 엄마아빠인 듯했다. 아이가 먹지 못하는 재료가 있는지, 쿠키 앞에 선 엄마는 쿠키에 무엇인가가 들어가지 않았다고 아이에게 설명하며 몇 개를 먹겠냐고 묻는다. 아이가 웃음 띤 얼굴로 3개를 먹겠다고 말하자 엄마는 내게 말했다.


"초코칩 쿠키 3개 주세요."

"네. 포장이세요? 다른 건 필요 없으실까요?"

"네."


 얼굴에서 은은하게 빛이 나는 듯한 사랑받는 아이와 달리 수수한 패딩과 점퍼 차림의 엄마와 아빠는 조금 피곤해 보였고 본인들이 먹을 빵이나 쿠키에는 관심이 없다.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쿠키 3개를 사는 것만이 중요한 문제라는 듯. 어쩌면 많은 이가 그렇듯 아이를 양육하느라 다른 여유가 없어서일지도.


 갑자기 이 초코칩쿠키의 맛을 부모에게도 알리고 싶어졌다. 이 쿠키는 못 먹는 재료 때문에 사는 쿠키일 수도 있지만 맛있어서 사 먹는 쿠키이기도 하며, 아이의 행복 못지않게 엄마와 아빠가 디저트를 먹으며 느끼는 행복도 중요하다는 걸 상기시켜 드리고 싶다. 집에 가서 먹으려고 빼놓은 초코칩쿠키 하나를 집게로 집어 아이 엄마의 손으로 가져갔다. 밤길에 차를 탄 부부가 나눠먹기에도 이 쿠키는 단연 최고니까.


"좀 작게 나온 건데 가시면서 맛보세요~“


그 순간 아이의 얼굴처럼 환하게 밝아지는 엄마의 얼굴. 감사합니다, 하며 웃는 부모를 보니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일에 큰 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심지어 사심 없이 무언가를 주는 일은 언제나 그보다 훨씬 많이 받는 일인 것같다.


 국어사전에서 어른의 뜻을 찾아보니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데, 다 자란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우리는 평생 자라고 자랄수록 아이보다 더 어려진다. 어른들은 생각보다 스스로를 충분히 존중하지 못하고 서로를 잘 챙기지 못하는 미숙한 존재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밤마다 울고 웃으며 이불 위에서 쿠키를 먹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건, 어른아이인 서로를 위해주는 따뜻함 때문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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