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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Sep 06. 2022

유기농 인간이 되고 싶어

feat. 물티슈 사용을 줄이는 귤팁


 무인도에 간다면 꼭 가져가고 싶은 물건은?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대답은 한결같았다.

"물티슈."

나는 물티슈 광이었다. 가볍게 물건이나 방을 닦고 베이킹을 하고 묻거나 흘린 것을 치울 때도 물티슈는 빠르게 처리를 도와준다. 100매짜리 물티슈 1통을 하루에 다 쓰곤 했기 때문에 보통 박스째 물티슈를 샀다.

 비건을 지향하며 환경과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던 어느 날 의문이 들었다. '어라, 물티슈도 일회용인데 왜 줄이거나 끊지 않지?' 


 혼자 살 때부터 즐겨 사용한 물티슈는 다른 플라스틱들이 그렇듯 싸고 편리했다. 건강에는 괜찮은 건지 소재와 원료가 궁금했지만 확인하지 않았는데, 우려대로 물티슈는 폴리에스테르와 레이온으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이었다. 매립으로 분해되기까지 수백 년이 걸리고 소각시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물이 들어가니 방부제도 당연 첨가돼 몸에 좋을 리 없었다. 수건이나 행주는 한두 번만 써도 빨아야 하니 베이킹에 훨씬 더 시간이 걸릴 거라는 우려가 물티슈를 끊지 못하는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말은 언제나 핑계일 뿐.


 물티슈를 대신할 무언가를 찾으러 휴일에 제로웨이스트 가게에 놀러 갔다. 볼거리가 넘치는 연남동 골목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발견한 작은 공간이었다. 코바늘로 뜬 나뭇잎 모양의 삼베실 수세미와 남는 자투리 원단으로 만든 손수건, 면사로 짠 비누망 등 따스한 느낌을 주는 물건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말랑말랑. 바구니에 몇 개 담고 삼베실 수세미를 직접 짜셨냐고 사장님께 여쭤보니 근처에 있는 뜨개 공방에 부탁하신다.


 "물티슈를 엄청 좋아하는데 어떻게 하면 덜 쓸 수 있을까요?"라고 여쭤보니 그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저도 예전엔 많이 썼는데 지금은 소창을 쓰고 있어요. 어떤 물건을 안 쓰려고 할 때 저는 그냥 그 물건을 눈앞에서 치우거든요. 그럼 안 쓰게 되더라고요."


 눈앞에서 치우는 것만으로 된다? 의구심이 들었지만 답변에 감사드리고 가게를 나섰다.


 얼마 후 사용하던 물티슈가 마지막 숨을 펄럭이던 날, 또다시 마트에서 물티슈를 사야 하나 고민하다 세 개만 장바구니에 담았다. 평소보다 적게 사니 금방 떨어질까 불안해서 아껴 쓰게 되기는 했다. 하지만 자주 물티슈를 사러 가면 운행하는 차, 신발, 노동력, 시간 등을 고려해볼 때 탄소배출량은 오히려 늘어날 것 같았다. 조언받은 대로 물티슈를 눈앞에서 치워보기로 했다. 가방에 손수건을 가지고 다닌다거나 행주를 빨아 사용하는 번거로움을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한동안은 습관처럼 물티슈를 찾아 두리번거렸는데, 당장 닦을 것이 필요하니 행주를 어쩔 수 없이 꺼내 쓰게 되었다. 그런데 행주는 생각보다 유용했다. 얇은 물티슈 1장으로는 닦이지 않아 여러 장을 쓰던 더러움도 행주로 한두 번 닦으면 깨끗해지고, 쓰고 난 후에 쓰레기도 나오지 않았다. 버릴 것이 나오지 않는다는 포인트가 새삼 놀랍고 '아름다웠다'.


 행주를 빨기 위해 짬짬이 개수대를 오가면서 흐르는 물살도 느끼고, 잠시 창밖을 보며 숨 돌리는 여유도 생겼다. 가장 좋은 건 물티슈에 첨가된 각종 화학세제와 미세 플라스틱을 더는 먹지 않아도 되는 것. 소창과 광목에도 차츰 관심이 생겨서 얼굴과 몸을 닦는 수건, 담요, 이불 등 사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눈앞에서 치워버리니 정말 물티슈를 쓰지 않고 살 수 있다. 버려지는 자원 없이 더 건강하게. 나면서부터 일회용이고 싶은 물건이 있을까? 무인도에 간다면 이제는 행주를 가져가야겠다.


 일상 속에서도 플라스틱을 조금씩 치우는 대신 환경을 살릴 수 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채워나갔다.



1. 액상형 주방세제 대신 설거지 바 :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액상형 주방세제는 물 1L에 세제 2g을 희석해서 사용해야 하지만 대부분 수세미에 바로 펌핑해서 쓴다.  씻겨나가지 못해 먹게 되는 주방세제는 1년에 1인당 평균 소주잔 2잔 분량에 달한다고. 비누 형태의 세제, 즉 설거지 바는 희석할 필요 없이 바로 수세미에 문질러서 쓰면 잔여 세제가 거의 남지 않고 먹어도 생분해된다.  합성세제와 달리 100% 천연성분 즉 오일로만 만든 것도 많다.

 

2. 플라스틱 대신 천연수세미 : 천연수세미는 3M 같은 회사에서 만든 수세미나 아크릴사로 짠 수세미보다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뛰어나다. 남편은 천연 수세미를 접하고 난 뒤부터 다른 수세미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천연 수세미(가공하지 않은 통수세미)는 유분을 흡수하지 않고 밀어내는 성질이 있어서 기름기 많은 설거지를 하면 무겁고 끈적거리는 다른 수세미들과 달리 한 번에 뽀득뽀득 산뜻하게 잘 닦인다. 삶아쓸 수도 있고, 플라스틱 수세미에서 나오는 수많은 미세 플라스틱을 먹지 않아도 되고. 자연 그 자체인데 이렇게 좋다니?


3. 페트병 생수 대신 브리타 정수기 : 정수기를 사용하면 '살아있는 물'을 먹는 것이 아닌 것 같아 한동안 생수를 사서 먹었다. 수돗물은 식수로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해외여행을 갔다가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수돗물을 걸러 먹는 간편한 정수기를 접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수돗물에도 미네랄이 있고 물속 미네랄은 끓여도 남아있다고 한다. 브리타 정수기는 수돗물을 받아 필터만 갈아주면 수돗물 냄새와 염소가 제거되어 편리하고 경제적인 데다 물맛이 좋다. 생수병처럼 버려지는 플라스틱 용기들이 필요하지  필터도 무료로 회수해서 재활용한다.


4.  액상 바디워시와 샴푸, 린스 대신 고체비누 : 액체 형태로 플라스틱 통에 담긴 씻을 거리 대신 자리도 덜 차지하고 순한 성분의 샴푸바, 린스바, 온몸 비누를 쓰고 있다. 액체 비누에 필수인 방부제를 몸에 바를 필요가 없고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도 줄일 수 있어  일석이조. 얼마 전부터 거품 없이 물로만 샤워하는 것이 피부의 방어력을 유지하는 데 좋다는 걸 알게 되어서 물로만 샤워하는 날을 늘리고 있는데 충분히 개운하다. 세제 없이 물로만 머리를 감는 '노푸'에도 도전하려고 어제 큰 맘먹고 투블럭 커트를 했다. 아, 벌써 시원해...!


5. 플라스틱 대신 대나무 칫솔 : 하룻밤 사이 1m가 자라기도 한다는 대나무로 만든 칫솔의 매력에서 헤어날 수 있을까? 지속 가능한 대나무 칫솔을 사용하기 시작하고부터 매달 버려지는 칫솔대의 플라스틱과는 안녕이다.


6. 세탁과 물 절약 : 합성 섬유도 플라스틱이며 빨 때마다 미세 플라스틱이 떨어져 나온다. 옷은 가급적 천연 소재로 사고 빨래는 일주일에 2번 모아서 하는 편. 거품이 나는 신기한 열매인 소프넛(무환자나무 열매)을 사용해보았지만 세정력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천연성분 다섯 가지로 만든 세제를 쓴다. 강한 인공향과 미세 플라스틱이 함유된 섬유 유연제는 구연산수(구연산+물)로 대체한다. 구연산수를 희석하면 천연 린스로도 쓸 수 있다. 세수나 샤워를 할 때 처음 나오는 찬물은 물조리개에 받아두었다가 다음날 아침 화분에 준다.


 7. 가지고 있는 플라스틱 활용 : 버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건 새 물건을 충동적으로 사지 않는 것, 가지고 있는 자원을 한 번이라도 더 사용하고 버리는 것은 아닐까?예전에 매장에서 빵을 포장할 때 썼던 비닐 중 남은 것들이 아까워서 자투리 빵이나 쿠키, 자잘한 액세서리나 물건을 담고 있다. 깨끗한 택배박스는 다른 곳에 택배를 보낼 때 완충재와 함께 재활용하고, 쉬는 날에는 집 근처 반품 마켓을 자주 들러 보물찾기를 한다.

 집에서 쓰지 않거나 기증받은 텀블러 중에는 더러 손님께 대여해드리기 곤란한 것도 있다. 이런 경우 조리도구 꽂이로 활용하거나 식재료를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면 정리에 큰 도움이 된다. 오트밀, 견과류, 시리얼, 건과일, 씨앗류 등을 주로 넣는데 대부분 좁고 긴 형태여서 허리보다 낮은 위치의 칸에 넣으면 위에서 꺼내기에도 편하다. 차에 한두 개 가지고 다녀도 쓸 일이 많다.


  

 용기내 챌린지(음식이나 물건을 플라스틱 포장 대신 개인용기에 담아오는 것), 책이나 물건은 한 번에 모아서 주문하기 등 환경을 지키고 탄소 중립을 실천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중에 기후 위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하나만 꼽으라면 비건일지도 모른다.

 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와 가축으로 파괴된 삼림이 흡수할 수 없게 된 탄소량까지 고려한다면, 전체 온실가스의 51%를 축산업이 배출하고 있다(월드워치 연구소, 2009). 이산화탄소보다 21배가량 강력한 가스인 메탄 또한 총발생량의 40%가 축산업에서 나온다. 2018년 옥스퍼드 대학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육류 및 유제품 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60%를 차지하며 개인이 식단에서 동물성 제품을 제거한다면 탄소발자국 73%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맑은 공기와 햇빛, 깨끗한 물과 사랑으로 자라는 유기농 상추나 깻잎처럼 나도 청정한 환경에서 자라는 유기농 인간이고 싶다. 우리는 우리 몸의 관리자다. 몸을 지켜보는 의식인 '나'는 스스로의 몸을 정성껏 돌보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설마 하며 방치하기도 한다. 그런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지구의 생명들이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도 있고,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심각한 재앙이 만연한 미래를 부를 수도 있다.


 비건을 시작하고 싶지만 어렵다면 그저 눈앞에서 고기와 우유를 치워보자. 모르니까, 물티슈처럼 쉽게 끊을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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