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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Aug 26. 2022

무포장 가게에 포장 대신 있는 것은

비건으로 스며드는, 비며드는 삶(2)



 집 근처에 새로운 매장이 생기면 눈여겨보다 한 번은 가는 편이다. 유리문에 <용기 내요, 무포장 가게>라는 귀여운 스티커가 붙은 가게에 발을 들인 계기도 그랬다. 조금씩 다르게 생긴 견과류를 오븐에 굽거나 시즈닝해서 정해진 무게 단위로 판매하는 수제 견과 전문점. 플라스틱 대신 무코팅 종이 포장만  가능하고, 개인 용기를 환영한다는 문구와 함께 계산대 근처에 둔 대여 용기도 보였다.


 로스팅 견과를 종류별로 맛보니 바삭하고 고소해 부담 없는 간식으로 손색이 없었다. 가족들 몫까지 몇 번 담아 오다가 나중에는 가게에서 음료와 견과를 즐겼다. 텀블러를 가져가지 않으면 음료 테이크아웃이 불가능했는데, 그 때문인지 덕분인지 느긋이 앉아서 먹게 된 것이다. 남다른 '불편함'이 그곳의 매력이었다. 마치 비건처럼. 아! 텀블러 가져올 걸~하고 갈 때마다 애석해할 수 있는 점도.


 입구 쪽 진갈색 나무 테이블 앞에 앉으면 대여 용기의 보증금에 대해 손님들과 실랑이하는 사장님의 조곤조곤한 말소리가 들리곤 했다. 보증금이 얼마이고 왜 현금으로만 계산이 가능한지, 나중에 어떻게 해야 환불을 받을 수 있는지 등 몇 번씩 보증금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좌이체 등 복잡한 계산을 하는 그가 괜찮은지 가끔 걱정스러웠다. 견과류는 미리 포장되어 있지 않아 모든 주문이 사장님 손을 거쳐야 했는데, 보증금 설명과 결제로 인해 다른 손님들의 주문을 받기가 힘들어 보일 때도 있었다. 


"매번 설명하기 힘드실 텐데 그냥 용기를 판매하시는 게 낫지 않나요?"


 다른 손님들이 모두 자리를 떴을 때 사장님께 물으니, 그는 "순환의 의미가 있어서요."라고 답하며 웃어보였다.


 글을 쓰러 집에서 탈출하는(?) 휴일이면 으레 그곳에 들렀다. 비닐 포장과 플라스틱 일회용 컵을 없애고 싶지만 그러기 어려운, 직장인 위주의 매장을 운영하며 답답해진 가슴을 내려놓으러. 가게 앞으로는 하천이 흐르고 산책로가 조성된 여유로운 분위기여서인지 추리닝, 슬리퍼 등 편한 차림으로 쉬러 오는 20-30대가 주요 손님층. 유리 빨대로 무설탕 스무디를 홀짝이며 신선한 견과를 씹는 재미라니. 실내에 놓인 '무포장 가게' 안내 책자와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환경을 위해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이는 행동)에 대한 책들도 어느새 다 읽고 말았다. 물건의 가치를 포장으로만 파악할 수 없듯이 사람도 겉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는 법, 그래서인지 안내책자에 소개된 무포장 가게들은 '차별 없는 가게' 또한 지향하고 있었다.

 알면 알수록, 포장 없이 알맹이만 혹은 최소 포장만 제공하는 행위는 미덥고 합리적이었다. 대학교에서 4년간 의류학을 전공하며 배운 내용 또한 가장 빛나는 옷(포장)은 '자신감'이라는 단순한 진실이었기에. 언젠가 또 다른 가게를 열무포장을 지향하고 싶어서 유사한 가게들을 검색해 찾아다녔다. 그때는 몰랐다. 1년 후 평택으로 이사하면서 새 가게를 열게 될 줄은.


 서울과 달리 평택에 차릴 매장은 현재의 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에 있길 바랐다. 오래된 아파트와 조용한 학원가 사이의 작은 공원 앞을 고른 이유다. 인테리어에도 최소한의 자원을 사용해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이고 싶었다. 건물의 날것 같은 바탕과 과거의 흔적을 살려 빈티지와 인더스트리얼 감성을 함께 표현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드리기 전, 제로웨이스트 컨셉을 세 군데 인테리어 업체에 설명하니 모두 포기하거나 난색을 표했다. "돈이 안된다"고. 결국, 전체적인 도면을 설계하고 분야별 업체들을 소개해줄 테니 나머지는 셀프로 진행하는 방법을 제안한 건설회사와 계약을 맺었는데 소위 '반셀프 인테리어' 라고 부르는 방식이았다.


 에어컨도 없는 공간에서 폭포처럼 흐르는 땀에 머리는 핑핑 돌고, 페인트와 스테인 등이 묻은 옷도 여러 벌 버렸다. 막무가내인 A 사장님, 계약과 다르게 시공하는 B 사장님과 소통하느라 속이 탈 때도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한 달 반 만에 인테리어를 끝냈다. 가구들은 온라인 중고마켓에서 구했고, 학원이었던 공간 구석에 치워져 있던 교단과 보면대, 어린이 자동차 등도 몽땅 인테리어 요소로 활용했다. 턴키(Turn Key: 인테리어의 처음부터 끝까지 업체에 모두 맡기는 방식)에 비하면 1/2~1/3 수준의 비용이었기에 아낀 예산은 좋은 집기에 투자할 수 있었다.


  두 달여의 베이킹 공백을 깨고 '감'을 되찾는데 2주가 더 걸렸고, 포장을 결정할 때가 되자 서울의 무포장 가게에서 누린 휴식같은 즐거움이 떠올랐다. 베이커리류는 플라스틱 코팅이 되지 않은 식품지와 크래프트 봉투를 쓰고, 음료는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대여하기로 마음먹었다. 잔여 세제가 체내에 남지 않는 설거지바로 텀블러를 척해 소독기에 채워 넣고, 사용하지 않는 텀블러들을 기증받았다. 매장에 개인용기나 텀블러를 가져오면 그곳에 담은 음식 가격의 10%를 할인한다는 공지도 가게 안팎의 여러 곳에 붙였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텀블러 대여를 낯설어하는 손님이 많았다. 하루는 어떤 아주머니께서 보증금 3500원을 내고 대여용 텀블러에 라테를 담아가셨는데, 잠시 후 남편으로 추정되는 아저씨가 그 텀블러를 가지고 들어오셨다. 다짜고짜 화를 내며 큰 소리로 "이게 지금 뭐예요 이게! 이런 식으로 장사하지 마세요." 하시는데 놀랍기도 하고 무얼 잘못한 거지 싶어 침울해졌다. 다른 손님 한 분은 카드사로 전화해 텀블러 보증금 결제 취소를 요청했다. 분명히 사전 설명을 드리고 동의하에 결제한 보증금인데, 텀블러 반납도 없이 일방적으로 취소라니...


 무포장 가게가 활성화된 서울에 비해 평택은 이른 걸까, 하는 고민이 나날이 더해갔다. '마시던 음료가 남아 포장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일회용 컵을 안 쓰더라, 음료가 아까웠다'는 리뷰, 포장 관련 안내문을 읽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 안에 들어와서도 "포장이 안돼요?"라고 걱정스레 묻는 사람들을 보면 볼수록. 대여한 텀블러를 반납하기 번거롭다는 의견, 코로나 바이러스로 포장을 원하는 사람이 많은텀블러 대여 때문에 음료 주문 자체가 너무 없다는 남편의 근심스런 조언이 더해질 때도. 한 발짝 양보하지 않는다면 가게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고민과 낙심 사이를 오가다가 요청하는 분들께는 일회용 컵을 제공하기로 했다. 나무를 벌목하는 종이펄프가 아닌, 버려지는 사탕수수로 만드는 사탕수수 펄프컵 한 종류로.


 다행히 지금은 매장에 텀블러를 보관한 채 오는 손님도 있는가 하면 개인용기를 챙겨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개인용기의 종류는 다양한데 가끔 일회용 플라스틱이나 비닐봉지를 내미는 분도 있다. 거기에 빵을 담아드릴 수는 있지만 밀폐용기나 직물(광목, 삼베 등)처럼 반영구적인 형태에만 할인을 적용한. 간혹 일회용 플라스틱 접시나 용기를 다량 구매해서 새것으로 하나씩 가져오는 손님들이 있어서인데, 개인용기 지참을 독려함으로써 일회용기 사용을 줄이려는 본래의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텀블러만 있어도 빵 한두 개는 담을 수 있으니 하나쯤 가지고 다녀보면 어떨까?


 무포장 가게에 대한 책자 등의 자료를 비치하려고 해당 네트워크에 가입하려 하니 모집이 끝나 신청을 받지 않는 상태라고 했다. 여러 번 보낸 메일에도 묵묵부답. 불필요한 포장을 줄이고 없애는 일이 예상보다 훨씬 힘든 싸움임을 알게 되니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는 연대가 새삼 부럽게 느껴졌다. 기후 위기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알아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손님들이 용기를 가져오면 할인이나 덤을 제공하는 가게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전혀 없는 것도 아쉽다.





 비건과 무포장을 지향하는 우리 가게에는, 플라스틱 포장 대신 다른 들이 있다.


1. 손님과의 대화 그리고 눈 맞춤

: 빵을 미리 포장해두지 않으면 주문을 받은 다음 포장하는 시간이 생긴다. 기다리는 손님과 자연히 한두 마디의 대화와 눈 맞춤이 늘어난다. 바쁜 현대인들언제부턴가 눈앞의 타인과 소통하고 인사하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언어와 눈빛의 교환이 상품을 주고받는 일보다 과연 덜 중요할까?


2. 가치소비의 뿌듯함

: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 10명 중 7명 이상은 지구와 환경을 살피는 가치 소비를 추구한다고 한다. 비건과 제로웨이스트는 경제적 효율이나 편리함보다는 윤리와 지속가능성을 지향한다. 처음에는 불편해도 텀블러와 개인용기를 가져와서 음식을 담아본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는 '미닝 아웃(meaning+coming out)'의 기분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다.


3. 경사로 및 휠체어/유모차 전용 출입구

: 일반인들에게는 별것 아닌 1층 가게의 문턱과 계단들은 휠체어를 타거나 유모차를 동반한 사람을 차별하는 요소다. 설계 도면을 그릴 때부터 경사로를 강조했지만 건축사님은 어렵다고 하셨는데 매장 밖을 여러 바퀴 돌며 고민한 결과 가능한 위치를 찾아 경사로를 만들 수 있었다. 다른 쪽 출입구의 계단 또한 높은 편이어서 어린이와 반려동물을 위한 낮은 계단을 추가로 만들었다. 무심한 차량들에게 계속 밟히던 나무 경사로는 얼마 가지 못해 부서졌지만, 이후 차에 밟혀도 끄떡없는 튼튼한 고무 재질의 경사로로 대체했다.


4. 어린이와 반려동물 출입 환영

: 어린이와 반려동물의 출입을 환영하고 아기 의자와 스텝 스툴을 놓아두고 있다. 영유아 간식과 반려동물 간식(비건)도 조금씩 개발해서 판매한다.


5. 성중립 화장실

: 남성과 여성이라는 고전적인 방식의 성 구분에서 벗어난 사람, 자신만의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화장실 입구에 <All Gender Restroom>를 표시했다. 젠더(gender)란 생물학적인 성에 대비되는 사회적인 성을 말한다.


6. 매장 내 미니 개수대

: 감염병 예방과 텀블러 자가 세척을 위해, 매장 안에서 가볍게 손을 씻거나 텀블러를 씻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천연 수세미와 설거지 비누를 비롯해 손을 닦는 수건 몇 장과 비건 핸드크림도 준비되어 있다.


7. 무료 자율포장대

: 재활용 봉투와 각종 지류 및 끈, 가위, 펜 등을 활용해 직접 감각적인 (선물)포장을 할 수 있는 무료 자율포장대를 두고 있다. 세상에 하나뿐인 정성과 센스에 받는 사람도 기뻐하지 않을까?



 P.S. 몇 달 전 매장으로 제로웨이스트 운영에 관한 실태조사 전화를 걸어온 평택시가 최근 <용기내 상점> 모집을 공지했다. 20L 쓰레기 종량제 봉투 20매와 '용기낸 상점'스티커를 지원하고, '용기내 매핑'에도 등록해준다는 내용. 이런 반가운 시도와 용기내 챌린지가 계속해서 이어지길! 환경 보호에 앞장선 가게들이 무례한 손님들 대신 사회의 따듯한 응원과 격려 속에 친환경 거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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