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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Aug 19. 2022

휘황한 침묵의 세계

비건으로 스며드는, 비며드는 생활(1)


 매미들 소리가 와르르- 커졌다 줄어든다. 삣삣삣, 새들이 주고받는 신호도 들린다.

들을 수 없었던 소리가 들리고 볼 수 없었던 풍경이 보이는 이곳은 평택. 1년 전에 이사 온 도농복합시다.


 대도시를 떠나 이곳을 택한 까닭은 많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집이 갑자기 팔린 거였다. 여느 때처럼 광화문의 매장에서 직장인을 상대로 숨 가쁘고 곤두서는 점심시간을 보내고 쉬는데 집이 나갈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매장은 2년 넘게 이어지는 팬데믹에 속절없이 답답한 상황. 여유보다 속도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일회용 컵을 줄기차게 제공하며 죄책감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비건 지향은 모든 생명의 안녕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플라스틱 컵과 코팅된 종이컵은 재활용도 되지 않는 데다가 인체에도 해롭다. 생분해 플라스틱도 말처럼 쉽게 생분해되지 않는다. 경제적 이익과 추구하는 가치를 모두 놓치며 소모하는 삶이라니...!


 함께 사는 시어머님께서도 그 무렵 시골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기들을 입양 갈 때까지 대신 돌보는 활동을 스무 해 넘게 하신 결과, 어머님은 방전 상태였다. 꺼지기 전 화면이 어두워진 휴대폰처럼. 다만 서울과 너무 멀지 않기를 희망하셨기에 경기도 남쪽 끝, 시골 중 덜 시골인 평택이 낙점되었다(참고로 시골이라는 건 그때의 시각일 뿐 평택의 도시화는 무섭도록 빠르다).


 이사한 2층짜리 단독주택이 첫눈에 나는 좋았다. 똑같은 구조로 찍어낸 네모반듯한 아파트에는 관심을 잃은 지 오래였다. 언젠가부터 플라스틱처럼 윤기가 흐르는 예쁘고 완벽한 빵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처럼. 이사 온 1층의 거실 바닥을 밟을 때 안에서 뭔가가 꿀렁거리는 것도, 주방 조명이 약간 비뚤게 달린 것도, 마당에 깔린 데크의 가장자리가 습기에 낡아 삐걱대는 소리도 살아있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2층에 달린 중문(이지만 방문과 똑같은)의 방향이 거꾸로인 것도, 벽지의 까만 손때와 욕실에 붙은 스티커 같은 누군가의 흔적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이야기처럼  따스했다. 층마다 방이 3개씩이어서 글 쓰는 방이 드디어 생긴 건 집이 내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좁은 방 한 칸에서 남편과 함께 지내왔는데 이제는 방을 하나씩 써도 침실이 남다니.


 마을에서 시내로 걸어 나갈 때는 좁다란 논길과 작은 터널 하나를 지난다. 그곳을 지나면 시야 가득 펼쳐지는 짙푸른 논밭과 키 큰 개망초 군락, 탁 트인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알록달록 낮은 지붕을 한 집들 사이로 보이는 교회 첨탑도 레고처럼 귀엽고 그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오팔처럼 다채로운 색을 보여주는 드넓은 하늘이! 경이로워라. 돌아오는 길에 야생화가 예뻐 몇 송이 꺾었더니 곧 죽을 것처럼 축 쳐져서, 물을 담은 항아리에 꽂으니 겨우 살아났다. 미안, 힘들었지?

 집 근처 화원을 구경한 날을 계기로 식구들은 반려식물을 기르기 시작했다. 화분째 입양해온 아이들은 꺾어온 야생화와 달리 금방 죽지 않는다. 대답은 없지만 가끔은 말을 붙여본다. 괜찮니? 화분 조금 돌려줄까? 식물만 기르는 게 야속한지 어디선가 청개구리와 여치도 종종 찾아오고, 이웃집 정문 위에 당당히 둥지를 틀고 지내는 제비와도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홈 요가를 시작한 건 또 다른 변화의 계기였다. 오래된 시골 동네라 요가원이 멀어서 유튜브로 찾아낸, 알기 쉽고 친절한 영상들은 모두 무료였다. 게다가 집에서는 요가할 때 입을 옷을 걱정한다든지, 시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좋아하는 선생님과 그날 하고 싶은 요가를 골라서 하고, 미처 듣지 못한 부분은 뒤로 가서 다시 보면 오케이.

  요가를 하다보니 어떤 물건이 자꾸 아른거렸다. 심신의 이완에 도움을 주는 명상/힐링 도구 싱잉볼(Singing Bowl). TV에서도 정유미, 화사 등의 연예인들이 소개했지만 얼마나 환상적인  휴식을 취할 수 있는지는 싱잉볼 힐링 세션에 직접 참석하고 나서 알게 됐다. 누워서 우주에 다녀오는 기분? 글 쓰는 방에 싱잉볼을 놓아도 어울릴 것 같았다. 누군가 종을 치는 것을 편하게 누워 듣기만 했다면, 이제는 스스로 두드리며 명상하고 싶었다. 글쓰기와 명상은 닮은 데가 많으니까. 원하는 음계의 싱잉볼을 네팔 현지에서 찾아주는 판매자로부터 마음에 드는 싱잉볼을 구할 수 있었다.

 일곱 가지 금속이 녹아들어 고요하면서도 다층적인 소리를 내는 싱잉볼의 진동이 울려 퍼지면 몸과 마음이 차분해진다. 종소리를 초대한 채 눈을 감고 음을 따라가면 어느새 마음은 가벼워지고 머릿속은 샤워한 듯 개운해졌다. 명상을 하면 잡생각이 많이 든다는데 나는 대개 그렇지 않아서, 앉으면 빠르게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요가를 하고 나서 명상하기 때문일지도... 집에서는 언제나 그게 가능하니까.


Yogas citta-vrtti-nirodhah

요가는 마음의 작용을 제어하는 것이다.  

-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제1장 2절


 가만히 침묵을 즐기 동안 시간과 공간은 사라진다. 몸과 마음, 호흡과 무호흡, 안팎의 구별도 희미해진다. 해야만 할 일은 아무것도 없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데서 오는 초조함도 없다. 그래서일까, 자꾸만 슬며시 미소가 떠오르는 건.

 명상을 할수록 닫혀있던 육중한 철문을 열어젖힌  반가운 자유와 문고리를 쥔 안정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감은 눈을 뜨고 현실로 돌아와도 평온한 힘이 활력을 일으켰다. 생각의 잡음을 소거한 단순함은 집중을 불러오고, 분산된 에너지를 모아준다. 요즘은 싱잉볼 뿐만 아니라 다른 명상의 방법들을 탐색하며 내면으로의 여행을 자주 떠나고 있다. 편하게 앉을 수 있는 명상 의자도 준비 완료!  정통 크리야 요가(동작보다 호흡과 명상 위주로 이뤄진) 레슨을 받고 싶어서 며칠 전 미국으로 우편을 보냈다.


 말과 글이 필요 없는 침묵으로 연결된 어떤 세계는,

모든 것이 넘치지만 분리된 세상보다 훨씬 흥미롭고 휘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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