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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Aug 13. 2022

오만과 편견 그리고 비건

사랑을 방해하는 판단의 벽들

 10파운드 화폐에 그려진 주인공은 누구일까? 정답 : ㅈㅇ ㅇㅅㅌ.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지난 1000년간 최고의 문학가>(영국 BBC 방송) 조사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에 오른 그는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3년간 기숙학교에 다닌 것이 전부였지만 가난한 사제였던 아버지의 서재에 꽂힌 책을 읽으며 글을 썼다고 한다. 대표작인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은 한동안 내게 최고의 소설이었는데, 고루해 보이는 제목과 달리 인물을 둘러싼 사건들이 쌓아 올리는 긴장감과 인간에 대한 위트 있는 통찰이 주는 유쾌함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소설의 절정에서 다아시가 터뜨리듯 마음을 고백할 땐 마치 그 자리에 선 엘리자베스가 된 듯 주체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는 물질 지향적이고 허위적인 세태를 예리하게 풍자한다. 모순에 순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란히 보여주는 방식으로.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이의 순수한 감정을 방해하는 벽은 여전히 많고, 소통이 단절된 시간에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한다. 서로에 대한 오해로 한참을 돌아 재회하는 연인처럼.


 '비건'에도 오만과 편견이 존재한다면? 오해를 넘어 이해로 가기 위해, 비건빵과 요리를 만들며 접한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매장에 들어오며) 여기 '완전' 비건이죠?

: '완전' 비건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곤란한 표정을 감출 수 없는데, 비건(Vegan)이라는 용어가 채식의 가장 완전한 단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달걀이나 유제품, 생선이나 고기 섭취를 허용하는 다른 종류의 채식과 달리 비건은 모든 동물성 음식(고기, 달걀, 우유, 벌꿀 등) 섭취를 배제하는 엄격한 채식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꽤 있는 건 다른 채식과 비건을 혼동하기 때문일까? 가끔은 유제품이나 달걀이 들어간 음식을 비건으로 잘못 사고파는 사례도 본다. 자주 접하지 못한 개념을 받아들이며 일어나는 과도기적 현상일지도. 우리나라에서도 비건이 하나의 트렌드가 아닌, 선택적 삶의 양식으로 깊이 인식되어 이런 표현은 줄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 풀만 먹고 어떻게 살아요?

 비건은 소위 말하는 '풀' 즉 채소만 먹는 것이 아니라 곡식과 과일, 견과류, 콩류, 버섯, 해조류 등의 다양한 먹거리를 함께 섭취할 수 있다. 충분한 영양소를 흡수하면서도 동물성 음식으로 인한 과도한 단백질 섭취, 그로 인한 칼슘 손실과 나쁜 콜레스테롤 증가를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성인병의 예방과 건강의 호전에도 도움이 된다. 물론 화학첨가물을 넣은 가공식품이나 정제된 곡류, 흡연을 피하고 자연의 재료로 건강하게 비건을 실천한다는 전제에서.

 참고로 덩치 코끼리나 소, 말, 양, 기린은 풀만 먹고도 잘 사는데 에도 다량의 단백질이 있기 때문이라고.



3. 비건하면 살 빠져요?

 '아니오'. 비건을 한다고 해서 살이 빠지지는 않는다. 떻게 하면 살이 빠지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운동과 식이요법의 병행! 비건도 마찬가지다. 동물성 음식과 비교해 열량이 낮은 비건 음식이라 해도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 가능하면 편의성과 자극적인 맛을 추구하며 유통되는 상품들 대신, 자연의 재료로 조리한 비건식을 배부르지 않게 소식하고 많이 움직이면 살이 빠질 수 있겠다. 참고로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는 살을 찌게 하는 숨은 원인으로 식이요법과 운동보다 더 중요하니 매일 최소 7시간은 주무시길.


"잠을 충분히 못 자면, 몸은 지방을 내놓기를 몹시 꺼린다. 지방을 간직하고, 근육을 버린다(중략). 수면 부족은 허기와 식욕을 늘리고, 뇌 안의 충동 조절 능력을 떨어뜨리고, 음식 섭취량을 늘리고(특히 고열량 식품), 먹은 뒤의 포만감을 약화시키고, 다이어트를 할 때 체중 감소 효과를 떨어뜨린다. " 

-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매슈 워커(세계적인 신경과학자, 수면전문가) 지음. 중에서



4. 밀가루 안 써야 비건 아니에요?

  비건 베이커리를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 매장에 대한 블로그 리뷰를 올렸는데, 내용이 이상했다. 일부 베이커리가 비건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전품목이 비건이라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는 입장에서 궁금함을 못 이겨 그분께 댓글을 남겼다. '실례지만 어떤 점에서 전부 비건은 아니라고 생각하셨나요?'

그러자 그분이 하시는 말씀,

'밀가루 들어가는 빵도 있더라고요. 밀가루 들어가면 비건 아니지 않나요?'


 최근 다른 손님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또 들었다.

"비건이라 맛이 없을 줄 알았는데, 밀가루 넣은 빵맛하고 똑같더라구요~!"

 블로그 리뷰를 쓴 사람만 '비건=no밀가루'라고 생각한 게 아님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맛있게 드셔서 다행이긴 한데.


 쌀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곡식인 밀은 '식물'이다. 식물이 동물성 재료의 사용을 배제하는 비건이 맞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는 왜 이런 오해가 생겼을까? 언젠가부터 밀가루는 몸에 나쁜 것이라고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한몫을 한 것인지, 밀가루 사용을 하지 않는 비건 베이커리가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밀가루의 종류는 품종이나 재배 국가, 도정하는 방식이나 정도에 따라 다양하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동일하지 않다. 통밀이나 호밀, 스펠트 밀 등 비건이 즐겨 쓰는 재료이다. 이것을 사용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선택이자 취향일 뿐이다.



5. 고기도 좀 먹어야지.

 어떤 어른들은 반복해서 말씀하신다. 그래도 고기를 좀 먹어야지. 지인들 중에서도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있다. 과거 동물성 단백질을 높이 평가했던 잘못된 연구와 책으로 영양을 공부한 사람들은 채식을 하면 단백질 결핍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후 수많은 연구에서 식물성 음식만으로도 충분하고 안전하게, 완벽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1년 미국 심장협회는 이렇게 발표했다.


식사에서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굳이 동물성 식품을 먹을 필요가 없다. 식물성 단백질만으로도 필수 아미노산 및 비필수 아미노산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 통곡물, 콩과 식물, 채소, 씨앗 및 각종 견과류 등은 모두 필수 아미노산 및 비필수 아미노산을 모두 가지고 있다. 또한 식사할 때 이 음식들을(단백질을 상호 보완하기 위하여) 혼합할 필요도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하루 필요 단백질은 생각보다 훨씬 적다. 미국 임상영양학 저널지에서는 하루 섭취 총열량의 2.5%, WHO(세계 보건기구)에서는 4.5%를, 가장 많은 단백질을 권장하는 NRC(미국리서치위원회)는 체중 1kg당 0.5g의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1973년 미국 하버드 대학 연구진은 어떠한 식물로 구성한 채식 식단이라도 단백질 부족 현상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쌀의 경우 전체 칼로리의 7~8%, 밀은 17%, 호박 15%, 양배추 22% 등 모든 식물은 상당한 양의 단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건을 실천하는 운동선수가 늘고 있는 것은 비건이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가 아닐까? 스포츠 선수들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신체 능력을 극대화시켜야 한다. 얼마 전 우리나라 쇼트트랙 국가대표 곽윤기는 경기력 향상을 위해 비건을 결심했다고 밝혔고, 축구 선수인 크리스 스몰링과 사무엘 움티티, 테니스 선수인 노박 조코비치와 비너스 윌리엄스도 채식을 예찬한다. 아, 최고의 카레이서 중 한 명인 루이스 해밀턴도 있다. 육상 금메달리스트인 칼 루이스는 1990년부터 채식을 해왔다. 


 고기 섭취는 더 이상 단백질을 보충하거나 힘을 내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비만, 당뇨, 심장병, 고혈압 등 현대의 주요 사망 원인과 높은 관련이 있다.





 

 음식과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제각각이다. 각자의 신념이나 경험에서 의미를 추출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이의 생각은 새로운 정보와 지혜를 얻으면 업데이트되지만, 그 자리에 멈춰 꿈쩍하지 않는 생각들도 있다. 또한 누구나, 어떤 일은 무심코 받아들인다. 중요시하는 몇몇 주제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탐색하면서도.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비건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것이라는 속단은 오만이다. 반대로, 설명해도 어차피 알지 못할 거라는 생각 또한 편견일 수 있다.


 별처럼 무수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 비건에 전혀 모르는 사람부터 세밀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까지. 비건 식당과 베이커리 등 선택권이 많은 서울과 달리 이사 온 평택은 그런 곳이 거의 없고 아직 비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다수지만, 지난 1년간 비건빵을 굽고 연구하며 묵묵히 씨앗을 뿌렸다. 매일 비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살아있는 눈빛과 말들을 주고받는 요즘서울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때와 다른 희망에 부푼다. 

 지금 하는 일과 만나는 사람들을 매 순간 사랑할 수 있겠다는 희망. 섣부른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다면! 물론 아직은 수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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