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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Aug 02. 2022

식용 개가 따로 있다고?

모든 동물은 존중받고 평등할 권리가 있다.


잡아먹을 건 원래 이름 지어주지 않아.

                                  -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중에서



 얼마 전, 대통령이 유기견을 키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 뒤늦게 그가 TV 토론회에서 "식용 개라고 하는 것은 따로 키우지 않느냐"는 발언을 했다는 걸 알기까지는. 내 반려동물은 안되고 남의 개는 먹어도 된다는 생각이 비식용 개, 식용 개 구별하는 근거가 된 걸까? 그는 또한 "개식용은 개인의 선택에 맡길 문제이며 국가가 금지할 문제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축산물위생관리법상 개는 '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동물'에 포함되지 않는다. 반려견과 식용견을 구분하는 것은 육견 업계의 주장이다. 현행 법에도 개는 '가축'이지만 '식용'으로 분류되지 않고, 법원은 식용견 도살 행위가 동물 학대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2020년 4월, 대법원은 전기 쇠꼬챙이를 입에 물려 개를 감전시켜 도살한 농장 주인이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등을 금지한 동물보호법 제8조(동물학대 등의 금지)를 위반했다며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동물행동권 카라가 최근 2년간 5개의 도살장을 발각해 구조한 개들의 약 40%는 천연기념물인 진돗개 혹은 진도 믹스라고 한다. 보호받는 다른 나라의 국견들과 달리 지금도 목이 매달리거나, 전기 도살봉에 찔려 살해당하고 있다. 훌륭한 신체적 능력과 생존력을 지닌 우리나라의 국견들은.





  

 며칠 전 엄마에게 '쫑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시골에 사는 활달하고 영리한 보더콜리, 쫑아는 평소처럼 반려인이 외출한 사이 펜스를 뛰어넘으려고 하다가 쇠목줄이 다리에 감기면서 바닥에 떨어져 큰 부상을 입었다. 집에 돌아온 주인은 다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병원에 가는 대신 약만 먹였고, 다친 쫑아의 다리는 결국 괴사되고 말았다. 치료비가 걱정스러워진 주인은 차라리 녀석을 개장수에게 팔아버릴까 생각했고, 그렇게 고민하는 동안 쫑아의 다리는 아예 똑 부러져버렸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은 나는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그 무심한 주인이 사랑하는 나의 친척이었기에 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사람,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키우던 개를 먹잇감으로 넘기겠다는 말에 펄쩍 뛰며 화를 낸 엄마의 만류로, 그러면 안락사를 시키겠다고 주인이 데려간 동물병원에서 다행히 쫑아는 훌륭한 원장님을 만났다. 고민 끝에 아직 어린 개를 죽일 수 없다고 판단한 그의 헌신으로 값비싼 수술을 무료로 받은(이 원장님께 뭐라도 보내드려야 하지 않을까) 쫑아는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 식물과 달리 고통은 동물의 생존에 필수다. 불속에 뛰어들거나 끓는 물에 뛰어들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동물은 자신에게 해로운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어 생명유지가 불가능할 테니까.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1975년 <동물 해방>에서 ‘고통을 느끼는 동물은 모두 평등하다’는 명제를 내놓았다. 고통을 느낀다면 그 존재는 도덕적으로 대우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동물권(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엄한 생명체로서 동물이 가지는 권리)'에 대한 인식은 우리나라에서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이쯤에서 2019년 새끼 진돗개를 6개월간 상습적으로 학대한 동물학대범에게 이례적으로 징역형을(일반적으로는 벌금형이다) 선고한 판사의 판결문을 살펴보자. 양형 이유 중 일부를 추린 것으로 사건번호를 검색하면 판결문 전문을 볼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동물권리선언에서는 모든 동물이 생태계에서 존재할 평등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그 권리의 평등은 개체와 종의 차이를 가리지 않으며, 모든 동물의 삶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고, 동물은 부당하게 취급받거나 잔인하게 학대당하지 않아야 하며, 특히 인간에게 의존하고 있는 동물(반려동물)은 생명을 유지하고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있다...(중략)

동물 역시 생명체로서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중략)학대 행위가 있을 경우 동물 역시 그러한 고통을 느끼면서 소리나 몸짓으로 이를 표현하며 고통을 호소하는데,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하여 학대행위를 한다는 것은 생명체에 대한 존중의식이 미약하거나 결여되어 있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라고 판단된다....(중략)

강호순, 유영철 등 일부 연쇄살인범의 행동은 그들이 자신들의 개를 도살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생명체에 대한 존중의식이 미약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동물을 학대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부지불식간에 그러한 인식을 드러내게 되는데, 이에 대하여 적절한 법적 통제가 가해지지 않는다면 이들의 생명 존중 미약이나 부존재 인식은 언제든 사람에게 향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동물학대행위를 방지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적으로나 생태적으로 가장 미약한 존재에 대한 폭력적이고 잔인한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중략)

동물에 대한 학대를 막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기본적으로는 생명을 가지고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에 대한 존중이라는 관점과 연결되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단순히 동물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존중과 보호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유정우 판사, '동물학대(울산지방법원 2019 고단 3906)'의 판결문 일부


  다른 동물의 생명과 고통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는 사회에서 가장 지위가 낮은 존재에 대한 혐오나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과거 인류는 노예에게 족쇄를 채우고 매질하며 그들을 물건처럼 사고팔았다. 노예가 흘린 피와 고통이 때론 감정적인 불편함을 주었겠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노예제도는 비도덕적이라는 게 명백해졌다. 동물 학대를 막아야 하는 것도 이와 같다. 불법 도살장에서 극심한 공포와 고통 속에 죽음을 맞는 동물들이 더욱 비참한 건, 서로의 비명과 죽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학살당하던 유대인들처럼. 


  날 때부터 '고기'로 태어난 것처럼 고통받는 동물과 그들을 착취한 음식을 먹지 않는 비건은 전 세계적인 비거니즘으로 발전하고 있다. 비거니즘(Veganism)은 종차별주의(speciesism, 어떤 종에 속한 개체가 다른 종에 속한 개체보다 더 우위에 있거나 열등하다고 판단하는 것)를 반대하고 종들 간의 평등을 옹호하며 일상생활에서 동물을 착취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동물을 먹는 것은 물론 의류나 가구 등 각종 생활용품의 재료로, 여가와 스포츠를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것을 반대함으로써 동물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는 노력이다.  


 이런 비거니즘보다 더욱 철저하게 생명을 존중하는 철학도 있다. 불교와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인도의 '자이나교(Jainism)'는 감자나 양파처럼 캐내면서 땅속 미생물을 죽일 수 있는 뿌리채소나 무화과, 토마토처럼 씨가 많은 과일을 먹지 않는다. 불살생(Ahimsa)의 교리를 가장 중요시하기에 농작물을 갉아먹는 해충도 죽이지 않는 것은 물론, 미생물을 죽이지 않도록 물도 걸러서 먹고 벌레를 밟지 않도록 길을 걸을 때도 빗자루로 쓸면서 다닌다. 하지만 올바른 지식을 얻는 길은 무수히 많다고 보고 어느 관점으로도 삶의 진리를 찾아갈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관점이 유일한 옳은 길임을 주장하는 자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타 종교에 대한 포용적인 관점을 드러내는 자이나교에 대한 아래의 유명한 예화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으리라.

 

  옛날 작은 마을에 6명의 현인이 살고 있었다. 이들 여섯은 모두 맹인이었다. 어느 날 누군가가 코끼리를 마을에 데려와 맹인들에게 코끼리를 만지고 코끼리의 특성에 대해 설명하라고 했다. 코끼리의 큰 귀 중 하나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부채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다리를 만지고 코끼리가 나무 같다고 했고, 꼬리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밧줄과 유사하다고 했다. 코끼리의 엄니를 만진 현자는 코끼리가 창과 같다고 외쳤다. 다섯째 현자는 코끼리의 옆구리를 만져보고 코끼리가 높은 담벼락 같다고 했고, 여섯째 현자는 코끼리의 코를 잡으며 코끼리는 뱀과 같다고 말했다.


 코끼리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까닭은 서로 다른 부분을 만져 코끼리의 수많은 속성 중 하나만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의견만 맞다고 주장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인식에 한계를 가진 우리는 누구나 맹인이다. 하나의 입장에서 옳고 그름을 관철하려는 태도를 떠나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이 함께 지구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충분히 강구하고 경청해야 하지 않을까.


   많은 동물이 아직도 현실에서 인간을 위해 사용되는 '물건'처럼 대우받는다. 야생동물이나 농장동물, 실험동물은 내가 키우는 반려동물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텔레그램 등을 통해 고양이, 토끼 등을 학대하는 사진과 학대 방법을 공유하는 동물판 n번방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다행히도 최근 우리나라 법무부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내용의 민법 일부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작년에 국무회의를 통과한 민법 개정안이 제대로 심사도 받지 못한 채 계류되다가 국민동의청원으로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동물이 물건이 아닌 그 자체로서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게 되면 그동안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했던 동물 학대 처벌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다리를 다친 쫑아 이야기가 이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고 국민들의 청원이 모여서 동물의 법적 지위를 향상하듯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에 대해 한 번 더 말하고 공유하것은 중요하다. 그로 인해 어떤 존재는 지금보다 훨씬 고통받거나, 훨씬 행복해질 수 있다. 예측 불가한 삶에서 언제든지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는 우리처럼.


 한 나라의 위대성과 도덕성은 동물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 나는 나약한 동물일수록 인간의 잔인함으로부터 더욱 철저히 보호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 마하트마 간디


사람에게는 동물을 다스릴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지킬 의무'가 있다. - 제인 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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