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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Jul 26. 2022

80점이면 충분해

20점을 내어주고 얻을 수 있는 것들


  인생이 호락하지 않다는 걸 알게 해 준  실패의 기억 대학 수학능력시험이다.

 수능을 몇 달 앞두고 성적은 상승곡선을 그렸고, 시험 당일 문제들이 헷갈렸지만 그만하면 괜찮은  알았다. 빠와 저녁을 먹고 집에 가는 길, 라디오에서 영역별 답안을 불러줄 때까지는. 정확한  아닐 거라며 도리질 쳤지만 헷갈린 문제를 거의 다 틀린 그 해 수능은 만점자가 66명씩이나 나온 역대급 '물수능'이었다.


 성인이 되어 홀로 집을 떠나자 수많은 실패들이 나를 반겼다. 대학생이 되어 방황한 결과 부모님께 날아간 학사경고, 기계로 몇 번 연습하면 합격할 거라 믿은 운전면허 실기 불합격, 프리랜서로 활동할 수 있게 해 준다던 스타일리스트 팀의 노동 착취와 좌절, 기도하면 나을 줄 알았던 아빠와의 이별. 시험에 대한 미련이 남아 30세에 다시 수능을 보기도 했는데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얼마나 울었던지...!






 바라는 일이 모두 이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돌이켜보면 인생의 크고 좋은 일들은 예상치 못한  자연스럽게 일어나 것 같다. 지레 김칫국을 마시거나 지나치게 애쓸 때는 좀처럼 일이 풀리지 않는다. 크고 작은 실패를 겪으면서 언젠가부터 100점이 아닌 80점 이상이면 족한 '여백 있는' 삶을 추구하게 됐다.


 세상에 오는 순간부터 우리는 스스로의 운명을 완벽히 통제하지 못하니까. 태아는 자신이 언제 어떤 사람들에 의해 태어날지, 어떤 모습과 재능으로 어떻게 성장할지를 모른다. 자라면서 할 줄 아는 것이 하나 둘 늘면서 어떤 일이나 환경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지지만 그럴수록 불필요한 긴장이 생겨 실수가 많아진다. 과도한 긴장은 건강을 해치고, 새롭게 맞이할 오늘과 지금에 감사하는 마음도 사그라뜨린다.


 주어진  문제를 전부 맞히기보다 두 문제쯤 틀려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니 삶의 만족도와 성취감이 높아졌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고 인정하니 사소한 계획변동이나 실패에 충격받는 일이 줄고 오히려 자신감이 생겼다. 한 자리밖에 없는 1등뿐만 아니라 마라톤을 완주한 모든 사람이 박수를 받는 게 마땅한 것처럼, 다양한 에너지가 공존하는 세상에서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이 생기는  당연한데 힘들어도 한 발짝 더 내디뎠다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인생이니까.


  런던에서 비건을 생생히 접했을 때 강렬한 끌림을 느꼈지만 '이제부터 비건을  실천하겠어!'라고 결심하지는 않았다. 그냥, 매일 조금씩 더 비건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하루 중 대부분 실천하지 못했다 해도 어떤 식으로든 비건을 이해하고 적용하려 노력했다면 스스로를 칭찬했다. 기본적으로 비건은 식생활에 관한 것이기에 일종의 다이어트(식이요법이라는 본질적 의미에서)라고 생각하 단기에 성공할 확률은 낮을 수밖에 없다.


 갑자기 체중을 10kg쯤 빼겠다무리한 운동과 과한 식이요법을 병행하면 탈이 날 수밖에 없듯이 비건자신에게 맞게 천천히 수준을 높여다. 쌓이는 욕구를 무시하고 억압하기보다는 가끔씩 31가지 맛 아이스크림이나 피자, 배달식도 먹으며 몸과 마음이 비건에 적응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일반 다이어트에 비해 좋은 점은, 비건으로의 식사 비중을 0.1%씩이라도 옮겨가면 애쓰지 않아도 자연히 그만큼 비건이 아닌 음식을 멀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통곡물과 콩류, 채소, 견과류, 버섯, 과일 등 채식이 제공하는 자연 그대로의 맛과 편안한 몸을 경험할수록 동물성 원료와 첨가물이 주는 강한 맛과 무거운 입자의 느낌이 점점 더 부담스러워지니까.


 혼자 비건을 지향하는 것은 그래도 쉽다. 사람들과 식사하는 일이 생기면 불편한 상황을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대부분의 식당비건을 위한 메뉴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한 가지라도 있는 곳에서 먹자고 매번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은 아직 소수이며 이들을 위한 선택권은 한정되어 있다. 서울이 아니라면 더더욱. 게다가 남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다수에게 취향을 존중해달라고 하면 튀어나온 못이나 민폐처럼 여기는 분위기 있다.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이런 점 때문에 일찌감치 비건을 포기하는 사람도 많고. 매일같이 고기를 굽는 먹방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고, 음식에서 얻는 쾌감을 찬양하는 사회에서 절제를 강조하는 비건이 낯설고 불편한 것도 이해는 간다.


 운이 좋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집에서도 비건이 온전한 공감을 받기란 쉽지 않다. 채식보다 육식을 선호하는 시댁 식구들과 살면서 마트에 갈 때면, 정육 코너에 한참 머무르는 카트를 떠나 다른 코너를 몇 바퀴씩 돌고는 한. 하얀 일회용 접시에 반짝이는 랩으로 포장된 고기들은 해당 동물이 그곳에 진열되기까지 겪었을 고통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귀한 한 생명이 사육되고 살육당하는 과정을 알고 싶어 하고,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눈에만 끔찍이도 잘 보일 뿐.


 마트에서 사 온 고기다 함께 저녁을 먹는. 여럿이 하는 식사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행위이기에, 누군가 준비한 음식 예의를 갖추는 일은 내가 비건을 지향한다는 사실보다 중요할 수 있다. 경계심을 내려놓고 화합과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에서 나 홀로 비건을 장기적으로 고수하기란 쉽지 않다. 밥에 쌈채소만 싸 먹는다든지, 김만 얹어 먹는 식으로 외롭게 저항하다 보면 식사를 하기 싫을 때도 있다. 소외되거나 차별받기 쉬운 소수를 위한 배려는 다양성을 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사회에 기대할 수 있는데, 이런 사정은 집집마다 다르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고기 섭취를 줄여나갔다. 그다음엔 비건이라는 개념에 대해 설명드렸다. 비건을 하면 몸이 가볍고 건강해질 뿐만 아니라 고통받는 동물이 지금보다 줄고, 기후위기에도 엄청나게 도움이 됩니다!라고 길게 말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비건하면 건강해져요'정도로만.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 것을 설명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일도 없으니까.

 지금은 식탁에 불고기가 오르건, 닭볶음탕이 오르건 고기를 거의 먹지 않아도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차리신 데 대한 예의로 작은 조각 점만 맛보거나 곁들여진 양파나 당근, 감자(고깃국물에 재워졌으니 사실상 비건은 아닌)를 먹는 식이다. 거기에 나물이나 채소 등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한두 가지 미리 준비하거나 찾아서 식탁에  올려놓고, 비건 와인을 곁들이기도 한다. 일주일 중 하루~이틀은 가족이 좋아하는 메뉴로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남편과 함께 하는 나머지 대엿새의 식사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비건을 지향한다.


 음식을 먹을 때는 오감을 통해 느끼며 즐겁게 먹고 싶다. 혼자만의 식사가 아니라면, 한두 걸음 양보하고 화목한 시간을 보내는 데 집중해도 나쁘지 않은 이유다. 비건 또는 비거니즘은 누군가에게는 종교처럼 예민한 문제일 수도 있고, 일종의 정치나 유행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만약 지속하기 힘들고 회의가 든다면 비건을 지향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떠올려보자.


 비건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지구를 포함해서)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것이다. 이솝 우화 <해님과 바람>에서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고 애쓴 바람처럼 공격적이고 직접적인 방법보다는, 나그네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든 해님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어필할 수도 있지 않을? 근거 없는 비난에는 단호해지더라도. 스스로와 타인을 계속 단절시키고 끊임없이 불화를 만드비건은 하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낫다.


 평화로운 사람만이 평화를 전할 수 있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사람이 자신의 취향도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오늘 조금 덜 비건했어도 괜찮다. 비건이라는 가치만큼 소중한 다른 가치를 내가 먼저 존중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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