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00을 넘어서기
남편의 생일을 맞아, (내가) 벼르던 영화 <듄: 파트2>를 봤다.
황제와 하코넨 가문의 연합에 멸문당하고
프레멘(아라키스의 토착민족)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 폴.
어머니에 의해 '생명의 물'을 마신 그는 과거와 미래를 모두 볼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어머니가 사실은 원수 하코넨 남작의 딸임을 알게 되고
미래에 자신의 성전聖戰을 통해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죽게 될 수 있지만
꼭 그렇지 않은 길도 있다는 것도 깨닫는 주인공.
그 길로 사람들을 이끌고자, 원치 않았던 '리산 알 가입(메시아를 뜻함)'으로써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낯설 정도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변해가는 그의 모습!
리산 알 가입은 애초에 베네 게세리트(여성 초능력 집단)가 만들어낸 예언이었지만
폴의 각성된 힘, 의지와 더불어 점점 현실화되는 힘을 갖게 된다.
한 사람이 스스로에 대한 인식에 따라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면, 듄: 파트2를 보시길.
그런데 이 예언은 왜 만들어졌을까?
모든 정치적 배후에서 비밀스레 움직이는 베네 게세리트의 모습을 통해 추측하면
다수를 뜻대로 통제함으로써 자신들의 목표(무엇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를 달성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이면서도 모호한 예언을 믿거나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은
작은 증거들이 하나씩 추가될수록 열광하며 믿음의 실현을 갈구한다.
이런 메시아가 위험한 까닭은 자기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구원을 찾는 태도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운명을 다른 위대한 자가 바꾸어줄 거라는 생각은 매우 수동적이며 자기체념적이기까지 하다.
운명에 대한 책임을 저버린다면 종국에는 가장 소중한 자유의지를 뺏기고 말 것이다. 착취하기 딱 좋은 정신적 노예들에게 굳이 진실을 알려줄 사람이 있을까.
언젠가부터 세상에서 쓰이는 '영향력'이라는 말이 거북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영향'은 자연스럽게 미치고 미쳐지는 것이지만 '영향력'은 의도를 가지고 행사하는 인상을 준다.
특정 인플루언서뿐만 아니라 누구나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 줄 구원자도,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가 될 능력도 있다.
적어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라면.
언제 도래할지 모르는 메시아를 목빼고 기다리느니자신에 대한 예언을 직접 만들면 어떨까?
구체적이고도 모호하게.
그 예언을 믿고 따르는 스스로를 통제함으로써 궁극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테니까.
자신에 대한 확언과 의지로 미래를 선택한다면
믿음의 힘은 나를 폭풍처럼 앞으로 떠밀 것이다.
그 길이 우주의 뜻에 부합한다면 우주 또한 같은 방향으로 부는 바람이 되어준다.
원하는 바 세세하게 그리고 눈으로도 볼 수 있다면
다가오는 매순간 어떤 길을 따라야 할지 확신을 갖고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몇 년 후 제작될 영화 <듄: 파트3>에서는 주인공 폴이 만들어진 예언을 넘어 자신의 사랑과 인생을 쟁취하기를,
만들어진 소설 원작의 서사를 능가하는 아찔한 작품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