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함께 한 매장 2,3년 차
자유롭되, 안전하게
끊임없이 울리는 벨소리. 분명 또 같은 내용의 전화겠지?
아무개 씨 : "혹시 자리에 앉을 수 있나요?"
나 : "식사를 하시는 경우 가능합니다."
2020년 12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일일 1000명을 돌파하면서 정부는 강화된 거리두기 방침을 내렸다. 식당 이용은 1시간으로 제한되고 9시 이후로는 포장 및 배달만 허용되었다. 카페는 영업시간에 관계없이 포장과 배달만 가능하지만 식사를 하는 경우 1시간 착석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카페와 식당의 중간 형태인 브런치 카페나 우리 매장(디저트, 식사, 와인과 맥주를 모두 판매)은 손님들과 매장 모두 자리에 앉아도 괜찮은지 헷갈리는 상황이었다. 식사의 개념은 손님마다 달랐다.
5인 이상의 사적 모임도 금지되어 연말연시 특수를 기대하며 버틴 요식업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일 년 내내 엉망이었지만 연말에는 나아지겠거니 했는데. 한낮부터 밤 11시까지 샴페인 터뜨리는 소리가 나던 2018, 2019년과 달리 짧아진 영업시간 이내에 4인 이하로 맥주나 와인을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내체육시설은 당분간 운영이 중지됐다. 다니던 요가원도, 같은 건물의 필라테스도 장기 휴업을 했다. 50인 이상 모임 금지에 따라 결혼식을 미루는 커플이 속출했다. 바이러스는 운동이나 커피 한 잔과 같은 일상은 물론 축복하고 기념할 날들까지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2020년은 없었던 해로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일반적인 농담에도 어김없이 새해는 왔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답답함이 공기처럼 익숙해진 지금 매장 2,3년 차의 고통을 제대로 다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업을 제한받아도 정해진 임대료와 공과금(전화, 인터넷, 전기, 수도, 가스, 등록세, 면허세, 부가세, 종합소득세 등), 관리비용(정화조, 포스기, 세스코, 세무사, 시설 및 집기의 노후화에 따른 수리와 구매비용 등)은 고스란히 나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우리 매장은 재료 구입비까지 매월 600~900만 원이 필요하다. 거기에 기존 대출금 상환과 양가 부모님 용돈을 포함한 생활비가 최소 400만 원, 총 1000만 원이 기본값으로 빠져나간다. 하지만 거리두기와 함께 뚝뚝 떨어진 총매출이 400만 원도 되지 않는 달이 있었고 비싼 수제 맥주와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들은 뜯지도 못한 채 버려야 했다.
운영 자금을 대출받아야겠다고 생각한 2020년 3월. 책 한 권 분량의 복잡한 서류를 준비하고 매일 아침 초시계를 꺼낸 채 소상공인진흥공단 홈페이지를 열었다. 몇 분 전부터 숨죽여 시계를 보다 오전 9시에 맞춰 광클릭을 해도 접속자 폭주로 몇 주가 지나도록 신청조차 할 수 없었다. 예산이 소진될까 봐 매장 영업시간에 센터까지 여러 번 갔고 그 사이 은행에서 대출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자금을 받아도 결국 '빚'이 늘어난 것이다.
보기에 딱했던지 매장 건물 주인도 아닌, 전대인(임차한 매장을 임대인 동의하에 우리에게 다시 세 놓으신 분)께서 자신이 받아야 할 금액을 상당 부분 포기하면서 반년도 넘게 응원해주셨다. 참고로 전대인과 우리는 특별한 연고 없이 매장에서 처음 만난 사이다. 어려운 상황의 세입자라지만 나라면 선뜻 손을 내밀 수 있었을까?
월말이면 휴대전화를 붙잡고 이번엔 또 어떻게 송금이 늦는다고 말하나 한참을 고민할 때, "보내지 마세요."라는 따뜻한 문자가 오면 눈물이 뚝,뚝. 조용한 선행의 아름다움을 알려주신 당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편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은 그리 와 닿지 않았다. 처음 겪는 재난이니 대응하기 어려웠겠지만, 매출이 곤두박질쳐 매월 최저 기록을 경신하는 때에 1차 지원금 100만 원은 우는 아이에게 준 사탕 한 알처럼 단작스러웠다. 본래 영업제한업종에는 150만 원이 입금되어야 했지만, 우선 지급이라는 100만 원 이후의 차액을 끝내 받을 수 없었다. 여러 번 전화하고 메일을 보냈지만 답해주지 않아 결국 포기. 그 후로 지원금이 한 번 더 나왔고, 시행착오를 거쳐 나온 최근의 지원은 조금 더 실효성 있게 이루어지고 있어 그래도 다행이다.
매장 운영 2,3년 차와 코로나19를 함께 겪으며 알게 된 사실들이 있다.
먼저 베이커리 카페나 브런치 카페, 비스트로를 포함해서 카페라고 불릴 수 있는 곳은 먹고 마시는 것보다 대화하거나 쉴 수 있는 '공간'으로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점. 정신적으로 항상 바쁜 현대인은 일터나 상주하는 공간을 벗어나 편하게 쉴 곳을 갈망한다.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않는 낯선 여행지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처럼.
"자리에 앉을 수 있냐/예약해야 앉을 수 있냐/몇 시까지 하느냐"의 압도적인 질문량에 비하면 음식의 원료나 맛에 대해 묻는 사람은 소수다. 오직 앉기 위해 취향에 맞지 않거나 드시지 않을 음식을 주문하는 분들도 있다. 시국이 그렇다고는 하지만 공들여 만든 음식들이, 평소와 달리 접시에 그대로 남아 버려지는 것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것 때문에 일부러 찾아오는 비건 손님도 있어요. 그게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인데... '
라고 속으로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는 일.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손님들을 위해 평소 생각지 않았던 메뉴를 만들기도 했다. 가령 베이글이나 샐러드 같은.
바이러스는 사람들을 쉼 없는 공간 속에 가두었고, 주중에서 주말까지 의료나 돌봄 노동으로 잠시도 쉬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신음했다. 강제로 휴업하는 업종과 그와 관련해 일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쉬지 못하는 사람들과 억지로 쉬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탄생하는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교회의 집합 금지로 인해 우리 매장도 본래 영업을 하던 일요일에 한동안 문을 닫았다. 출근했지만 매출 '0원'이라는 사상 초유의 숫자에 경악했던 것이다.
쉬는 날이 하루 늘자 통장은 더욱 쪼그라들었지만 원하는 삶에 대한 고민에는 시나브로 살이 붙었다. 일주일에 가능한 한 많이, 6~7일씩 근무할 것이 아니라 진작 이렇게 쉬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주 5일 근무는 인간다웠다. 새롭게 생긴 휴일 덕분에 꿈꿔왔던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밀쳐놓았던 책들도 읽을 수 있었다. 밸런스 보드나 탁구, 요가 등의 홈트레이닝을 하면서 가족과 돈독해지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다 같이 마트에 다녀와도 전처럼 피곤하지 않았고, 주말 출근에 대한 걱정 없이 늦게까지 영화도 볼 수 있었다. 남해로 떠난 짧은 여행에서는 오랜만에 '지금'을 산다는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예상보다 이른 COVID-19 백신의 개발은 놀라운 사건이었다. 예전처럼 손이 모자라게 바쁜 시간대도 있고, 점심과 저녁 먹을 짬을 내기가 제법 어려워졌다.
고통은 바이러스처럼 전염성이 강하지만 빨리 잊히곤 한다. 망각이라는 방어기제가 있어야 사람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니까. 아직은 불안정하지만 집단 면역을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가는 지금, 모든 것이 잊히기 전에 무엇이 팬데믹을 불러왔고 우리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은 무엇인지 현명하게 새겨야 할 것 같다. 저마다 겪은 아픔을 보듬고 격려할 시간 또한 충분히 가지고.
영영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았던 어둡고 긴 터널 끝에서 일상의 행복이 조그만 빛처럼 조금씩 다가온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할 계획과 다짐을 하나씩 준비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자유로우면서도 모두의 건강과 환경을 지킬 방법을. 나부터도 헐떡이며 달리기를 멈출 줄, 만족할 줄을 몰랐던 이기적인 인류가 아픈 만큼 성숙해졌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