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하지 말아요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이 없는 그곳

by Yujin

쉬는 날에는 스터디 카페에서 글을 쓴다. '스터디 카페'란 기존의 독서실과 카페의 중간 형태쯤 되는 공간이다. 조용하지만 답답한 독서실과, 자유롭지만 몰입하기 어려운 카페의 장점을 합친 곳이랄까?공부라는 주목적을 내세워서인지 코로나 시기의 다른 상업 공간들에 비해 이용 제한이 적어 다수가 는 장소가 됐다. 커피와 차를 제공하고 간식이 놓인 곳도 있지만 출출할 땐 머리도 식힐 겸 나가서 음식을 사 먹고 돌아온다.


오늘 간 곳은 전에도 몇 번 들른 무포장 가게. 테이크아웃 컵이나 빨대는 물론 비닐 포장도 사용하지 않는 매장이다. 준비해온 텀블러나 용기 없이는 무엇을 사 가기 어렵고, 미리 포장해둔 것이 없어 일일이 달라고 말해야 그때그때 담아주는 기다림과 불편함이 이 가게 특유의 매력이다. 당일 로스팅한 바삭한 견과와 바나나스무디를 먹으니 헛헛했던 속이 기분 좋게 차오른다. 나오면서 앙증맞은 쿠키도 샀다. 비 오는 날씨인 데다 유리병에서 나와 조금 눅눅했지만, 나무 집게로 쿠키를 천천히 꺼내시던 사장님을 떠올리자 마음은 뽀송해졌다.


바나나 스무디와 당일 구운 견과, 동네 무포장 가게에서.


동네 주변을 산책하는 20,30대가 주요 손님층인 이곳과 달리 우리 매장 주변에는 직장인이 많다. 종로 지역의 특성상 장년층과 어르신의 방문도 잦다. SNS를 통해 찾아오는 젊고 자유분방한 손님들과 연령대 다양한 주민들은 그다음이다.

직장인 대부분에게 점심시간은 식사 후 디저트까지 충분히 즐기기에 짧다. 불필요한 포장과 일회용을 없애려면 손님들에게 설명하고 서비스할 충분한 여유가 필요한데 엄두가 나지 않는 이유다. 비건 메뉴를 늘릴 때마다 일회용품에 대한 고민은 점점 커졌다. 건강과 환경, 인권과 동물권은 연결된 문제니까.


작년부터 테이크아웃 컵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우선 PET 소재였던 아이스 음료컵을 PLA(Poly Lactic Acid, 폴리 유산)로 바꿨다. PLA는 옥수수를 주성분으로 한 친환경 수지로 무려 500년 동안 썩지 않는 일반 플라스틱과 달리 퇴비화 조건에서 미생물에 의해 180일 이내 생분해된다. 매립이나 소각 시에도 유해 물질을 배출하지 않지만, PET 컵에 비해 가격은 두 배 이상 비싼 것이 단점이다.


바뀐 아이스컵(PLA)과 핫컵(사탕수수펄프+내부 PLA코팅), 핫컵 뚜껑(PLA).

뜨거운 음료컵은 내부까지 PLA로 코팅되어 환경과 인체에 무해한 사탕수수 펄프 소재로 교체했다. 일반 테이크아웃 종이컵은 내부 코팅(PE)에서 환경호르몬이 녹아 나올 수 있다. 사탕수수 펄프는 20~30년 자란 나무를 베어 동식물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종이 펄프와는 달리, 6개월마다 수확하는 사탕수수의 과당을 추출하고 남은 섬유질로 만든다. 이 섬유질은 원래 소각되지만 재활용되면 소각 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까지 줄이는 효과도 있다.

비건 디저트는 부드러운 빵 등을 충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밀짚 펄프 용기와 생분해 비닐로 포장한다. 밀짚 펄프는 나무를 베는 대신 추수 후 버려지는 밀짚으로 만들어 산림을 훼손하지 않고, 소각 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아 사탕수수 펄프와 성격이 유사하다. 여기에 각종 택배에서 나온 에어캡과 박스를 재사용해 택배를 보낸다.



사용중인 밀짚 펄프 용기와 생분해 비닐들.

영국식 스콘 같은 클래식 디저트는 칼로 썰기보다는 손에 들고(기호에 따라 버터나 잼 등을 발라서) 먹는 것이 제맛이다. 그런 스콘을 조각조각 미리 썰어놓고, 말려서 포크로 드시는 손님들이 안타까워 일회용 물티슈를 드리곤 했는데 몇 달 전부터 그만두었다. 물티슈도 결국 플라스틱이고 미세 플라스틱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단골손님에게 물티슈 대신 소독제와 손을 씻을 화장실을 안내해드리니 손님은 "돈 아끼려고 그러네!" 하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고 다음에 또 물티슈를 요구하셨다. 이렇게 작은 일회용품 하나를 없애는 데도 양해를 구할 시간과 인내심, 미소 지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빨대는 스테인리스 및 PLA 소재로 비치하고 있지만,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영유아, 치과 치료 등) 일회용 빨대를 쓰지 않는 편이 환경에 이롭기에 빨대 옆에 이런 문구를 써붙였다.



빨대 없이 드시면, 환경도 살리고
입가 주름을 예방할 수 있어요.


읽고 웃어주시는 손님들이 있어 빨대 사용이 조금씩 줄고 있다. 빨대 괜찮아요,라고 말씀해주실 때마다 얼마나 뿌듯한지!


유럽연합은 2022년부터 일회용 식기, 면봉, 풍선 스틱 등 10개 품목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환경부도 2022년부터 매장 내 플라스틱 빨대와 커피 젓는 막대 사용을 금지한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다. 빨대 없이 마시면 입가의 주름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음료의 맛도 달라지니 연습하는 셈 치고 마셔보시기를.


매일 점심 시간대마다 '잠깐 앉았다 갈 건데 일회용 컵에 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일회용 컵을 쓰고 버리는지를 보면, 생분해 컵이 일반 플라스틱보다는 친환경적이지만 맘편히 일회용품을 쓰는 면죄부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한 모금 남은 음료를 요청에 의해 일회용 컵으로 옮길 땐 서글픈 죄책감이 든다.

전염병 시국이라며 위생을 주장하지만 식당에서는 일반 식기를 잘 사용하는 분들도 음료는 일회용 컵에 마실까? 머그컵이 찜찜하다면 직접 관리하며 세척 가능한 텀블러를 휴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깨끗한 습관일 수 있다.


사회적(물리적) 거리두기로 인해 배달이 급부상하자 사람들은 왜 배달을 하지 않냐고 묻는다. 배달은 그 편리함만큼이나 무서운 속도로 환경을 파괴한다. 내달리는 오토바이들이 뿜는 매연, 쏟아지는 플라스틱 포장 용기, 버려지는 소스와 냅킨, 코팅된 전단지까지 음식 외의 숱한 자원이 빠르게 버려진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탄소 발자국을 늘리는데 손을 보태고 싶지 않다. 생태계가 파괴되면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인간건강 또한 당연히 나빠진다.

묶여온 배달 봉투 속 조그만 소스 컵과 일회용 식기는 분리 배출해도 재활용품 선별장에서 골라내기 어려워 다시 쓰레기가 된다. 유엔 환경계획(UNEP)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까지 약 100년 동안 사용된 90억 톤의 플라스틱 중 단 9%만이 재활용되었다. 땅과 바다, 공기 속에 버려진 수많은 플라스틱을 우리는 일주일에 신용카드 한 장(5g) 분량씩 미세 플라스틱의 형태로 먹는다. 인간도 일종의 플라스틱이 되어가는 것이다.


쉴 새 없는 생산과 소비,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의 사용을 멈추지 않는다면 비정상적으로 긴 더위나 폭설 같은 이상 기후와 동식물의 서식지 변화는 가속화될 것이다. 이대로는 또 다른 팬데믹이 닥칠 날이 그리 멀지 않다.


안팎으로 스테인리스, 아래쪽은 떨어뜨렸을 때 찍힘과 찌그러짐을 방지하는 실리콘 홀더가 씌워진 텀블러를 최근에 구매했다.


일상 속 불편을 감수하며 텀블러와 용기를 챙겨 다니는 분들을 존경한다. 한데 이 아름다운 소수의 노력만으로 매분 매초 버려지는 일회용품이 쌓이는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까?

개인 용기와 텀블러를 챙겨 다니는 소비자, 불필요한 포장과 일회용품을 거부하는 소비자가 무시할 수 없는 숫자로 지속되고 늘어나야 기업도 노력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리고 대기업이 움직여야 재활용되지 않는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을 생산 단계부터 대폭 줄일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개인 용기와 채식을 자랑하는 피드가 더 자주 올라오길 바란다. 개성 있고 기능적인 친환경 상품과 용기도 지속적으로 개발되어 무얼 고를지, 소소하고 행복한 고민에 자주 빠지면 좋겠다. 지난주에는 아크릴 수세미와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대신할 천연 수세미와 브리타 정수기를 샀다. 빈티지한 색감이 편안한 사탕수수 펄프 소재의 A4용지도. 돈을 쓰고 그렇게 후련하기는 오랜만이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현재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바뀐다. 지금의 생각 하나하나는, 생각보다 매우 중요하다.

애써 꾸미고 갖춰 입지 않아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친구처럼 껍데기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천천히 관계 맺는 곳. 작지만 확실한 기쁨을 주는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하는 곳. 쓰레기가 될 운명을 타고난 슬픈 포장들이 사라진 가게를 오늘도 나는 꿈꾼다.



※ 글을 쓸 때 참고했으며 권하는 책

-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홍수열 / 슬로비
-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고금숙 / 슬로비
- <잘 버리면 살아나요>, 손영혜 / 목수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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