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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Jun 29. 2024

소강상태

잠시.


 장마가 시작되는 날. 4시 반쯤 빗방울이 돋는가 싶어 부랴부랴 산책을 다녀왔다. 무지개빛 장우산과 휴대용 선풍기를 들고서.

 남편 간식인 컵라면과 쭈쭈바까지 사서 매장에 돌아오니 애정하는 J 손님이 와 계셨다. 지난번에 이어 오늘은 줌파 라히리의 책 <축복받은 집>을 기부해 주신다. 아이코.


5시께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손님은 개인용기에 오늘의 야심작 '체리&살구 클라푸티'를 포함한 여러 빵을 담아 떠나셨다. 매장도 잠시 소강상태. 가만. 그런데 소강상태라는 말의 '소강'은 무슨 뜻일까? 어학사전을 열어봤다.


소강상태小康狀態  

    명사 소란이나 분란, 혼란 따위가 그치고 조금 잠잠한 상태

소강小康  

1.    명사 병이 조금 나아진 기색이 있음.  

2.    명사 소란이나 분란, 혼란 따위가 그치고 조금 잠잠함.  


 뜻은 알지만 그 뜻을 왜 '소강'이라고 부르는지 몰라 한자사전을 다시 찾아보니 康은 '편안 강'이라는 한자로 '편안하다', '탈이 없다' 등을 뜻한다고.




 올해 6월은 예년보다 이른 무더위가 찾아와서인지 평일에 소강상태가 잦은 날이 많았다. 매출이 평소에 비해 일주일 정도만 떨어져도, 아니 솔직히 말해 3일만 연달아 낮게 나와도, 사장의 마음은 쑥대밭이 되기 십상이다. 더구나 그 한 주의 매출이 이후의 중대한 일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면야.


 계약 3주년을 앞둔 우리 가게의 운명은 요즘 오리무중이다. 5월까지 죽 상승하던 매출이 6월에도 계속 올라가야만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것만이 매장일을 그만두고 안정적인 다른 일을 하겠다는 남편의 의지를 막을 유일한 길이었으므로.


 걱정 많은 부모님을 편안하게 모시고 싶고 사고 싶은 것도 많은 반려인의 마음을 모르지 않지만, 우리는 첫 만남부터 7년이 넘도록 줄곧 함께 일했다. 서로 다른 직장에서 일하면 더 좋지 않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직은 그런 그림이 도무지 그려지지 않는다. 껌딱지 같던 그와 살면서 오히려 내가 더 찐득한 껌딱지가 된 느낌.


수많은 나의 단점(나와 많이 다른 손님에게 때때로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든지 하는)을 보완하며 궂은일들을 해결하고, 바쁠 때 가장 합이 좋은 완벽한 존재가 곁을 떠난다니. 직원을 들일 여유는 아직 없는데 과연 혼자서 40평 매장을 지켜낼 수 있을까.


 7월 중순까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호황(?)이 닥쳐야만 남편을 이곳에 붙잡아둘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계약 3주년이 되는 날은 그가 틈틈이 경고한 마지노선이다. 앞서 5월에 이런 대화를 나누고 한 달간 나는 마음이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그전에도 남편은 가게를 떠나고 싶어 했지만 최소한 3년까지는 버티자는 설득에 견뎠고 더는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가 떨어져 일하는 상상도, 남편이(어떤 사람으로든 대체될 수 있는 종류의 일을 하는) 다른 직장에 다닐 거라고 힘주어 말하는 것도 아직 가슴아프다. 매출이 대체 뭐길래. 돈은 물론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소중'한 건 따로 있는 게 아닌가요.


 도농복합시로 가게를 옮긴 이후 매장 구석구석에 스민 따스하고 평온한 분위기, 손님에 대한 반가움, 사물에 대한 고마움, 일하는 즐거움, 새들의 노랫소리, 퇴근 후 반려묘들의 소리 없는 이야기를 듣는 일의 행복을 알게 되었다. 마치 서울에 살던 때처럼, 혹은 기러기 아빠처럼, 멀리 떨어져서 일하는 대가로 많이 벌고 많이 쓰면서 사느니 부족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며 절제할 줄 아는 삶의 가치를 깨달았다. 하지만 내게 소중한 그 모든 일이, 당신이 우선순위로 두는 일보다 높이 있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는 법 아닌가.


 바이러스의 유행이 극심할 때 일어난 가게 이전. 비건 불모지에서 손님 한 명 한 명의 확보에 힘쓰며 영업 일수를 늘린 이듬해. 대출 갚기에 신음하며 가게 월세를 조정해 달라고도 읍소해 본 동시에, 하반기부터 매출 증대가 일어난 작년. 그리고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은 올해까지.


 6월이 거의 다 지나가려는 주말, 비와 함께 시작된 매장의 소강상태와 더불어 내 마음도 서서히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막을 수 있을 것이려니와, 막을 수 없다면 그러려니 할 줄 알아야지. 남은 기간 동안에도 놀라운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방식으로 더욱 흥미로운 일들이 펼쳐지려는 지도 모른다. 지금은 해볼 수 있는 모든 일을 일단 하기. 나머지는 언제나 나를 지켜보는 그분께 맡기기. 맡겼으면 더는 고민하지 않기.


 가야 할 길로 가고 있다는 걸 알기에 지금 이곳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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