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그게!
첫 매장을 운영한 광화문에서는 주변 직장인들의 템포에 맞춰 일했다. 주문받은 메뉴가 빨리 나가야 하는 점심 무렵에는 시간에 쫓겨 신경이 날카롭고 숨이 가빴다. 짧게는 몇 초 쓰고 버려질 일회용 컵을 끝없이 제공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컸다. 재활용도 되지 않는 플라스틱컵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의 속도만큼 써야하다니.
한 모금씩 남은 음료를 일회용 컵에 다시 포장해달라며 우르르 내미는 머그잔. 머그잔과 일회용 컵을 두 번씩 소비하는 게 심하다 싶어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점심시간의 고 짧은 틈에 골목 안쪽까지 찾아와 주신 손님들에게는 가게에 별점을 부여할 권력이 있었다. 참고로 지금은 N 모 포털 사이트에서 별점 방식의 리뷰가 사라졌지만.
이따금 하얀 접시와 머그잔에 정성껏 플레이팅 한 음식을 책과 함께 여유로이 즐기는 손님이 오면, 우리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의식해 발소리도 거의 내지 않았다.
평택에서는 무포장 혹은 최소 포장 가게를 운영하기로 다짐했다. 개인용기나 텀블러 지참 시 할인을 적용하고, 천천히 여유롭게 음식과 공간을 즐기는 가게를 꾸려야지. 미리 포장해두지 않으면 주문 및 포장 시간과 함께 소통이 늘어나고 불필요한 쓰레기는 줄어든다. 숨 쉬고 손님과 눈 맞추며 사람답게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한쪽에 제로 웨이스트 용품을 전시해 환경에 대한 손님들의 관심을 촉구하면서.
살면서 처음 온 지역에 장사 자리를 알아보는 일은 어려웠다. 가족만 고려하면 그만인 집과 달리, 불특정 다수가 방문할 매장은 동네 분위기와 주변 가게, 배후 수요, 교통편, 인테리어 견적, 가시성 등 고려할 점이 많았다. 첫 매장은 갑자기 생기다시피 했으니 제대로 구하러 다닌 건 이번이 처음이나 마찬가지다. 비건 베이커리에 제로웨이스트 샵을 합친 콘셉트는 평택에 존재하지 않았고, 부동산에 문의하면 일반 빵집을 생각한 답이 돌아왔다.
'파격조건 임대. 000-0000-0000'
3주 정도 돌아보았지만 빈 상가는 많아도 마음에 드는 가게는 보이지 않던 어느 날. 지나가다가 전면이 넓고 바닥은 사다리꼴인 독특한 상가를 발견해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거기는 원하시는 조건으로 다 맞춰드릴 수 있는데, 더 좋은 곳도 많으니까 같이 알아보시는 건 어떠세요? 제가 몇 군데 추려 놓을게요."
상가를 전문으로 임대하는 부동산이었고 그때부터 매장 투어에 가속이 붙었다. 주말에 그(주임님)를 만나 평택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우리끼리 한 번 더 그곳을 천천히 보거나 다른 상가들을 더 찾아다녔다.
서울에서 운영한 20평 매장의 임차료는 월 200만 원, 공과금 약 100만 원.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를 코로나 시국과 아무것도 모르는 지역에 새 매장을 열게 되었으니 임차료와 공과금을 1/2 정도로 맞추어야 안전할 것 같다. 하지만 저렴할 거라는 짐작과는 달리 평택에서 유동 인구가 있는 10평 상가가 보통 월 120-150만 원. 동일 면적 대비 인구는 서울의 1/13 수준인데, 방문할 손님의 수를 생각하면 서울보다 훨씬 비싸다.
부동산에서 추천한 곳은 대부분 안정적인 상권에 있었지만 서울처럼 답답하고 삭막한 느낌이었다. 행복하게 일하고 싶은데 그런 입지에서는 예전과 차이 없이 일회용품을 계속 제공해야 할 것만 같다. 똑같이 나눠진 네모들의 집합 중 하나에서 사방이 막힌 채, 회색빛 아스팔트 도로를 매일 바라보려고 평택까지 왔나? 콘셉트가 명확하면 불리한 입지도 커버할 수 있다고, 가슴이 큰 소리로 외쳐댔다.
한 달 반이 되도록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영업하지 못하는 손해가 매일 쌓인다고 생각하니 초조해졌다. '마지노선'이라고 써둔 캘린더의 붉은 글씨는 점점 뒤로 밀려나 더는 갈 곳이 없다. 최소 100군데의 가게를 보았고 "솔직히 저, 이 분야에서 날고 기어요." 하던 주임님도 지쳤는지 연락이 끊겼다.
오늘은 기필코 결정하자며 평택에 간 날. 최종 후보지 세 곳을 마지막으로 다시 돌아보는데 어느 쪽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어떡하지? 막막하게 묻자 남편이 말했다.
"난 거기, 교회 자리 좋던데..."
"교회? 마흔 평 넘어 보였던 거기?"
밖에서 봤을 때 너무 넓기도 하고 내부가 엉망이라 공사 견적 쏠쏠하겠다 하며 물어보지도 않은 곳(나중에 알고 보니 교회가 아니라 학원이 있던 자리)이 떠올랐다.
마지막이어서 그랬을까. 다시 가서 보니 전면 통유리에 코너 상가라 안팎으로 환했다. 바로 앞이 공원이라 초록빛 나무들이 우거지고, 주변에 옛 아파트가 많아 배후 수요도 있어 보였다. 학원가라 조용하고 아이들과 부모들이 근처를 오갔다.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바로 연락처로 문의하니 월세도 예산에 딱 맞게 들어온다.
내부에 들어서니 생각처럼 심하게 넓지만은 않은 공간감. 하지만 철거 상태가 좋지 않아 인테리어 비용은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이 가격, 이 넓이면 해보고 싶은 건 다 가능한데. 괜찮은가?
고민하는데 상가를 보여주신 분이 전화로 채근하셨다. 다른 사람이 지금 계약을 할 것 같다며 바로 결정하라고(오랫동안 비어있던 자리 같은데 갑자기?). 우리 부부는 원치 않는 강압을 받는 상황에서는 반대로 행동하기에 그 순간 가장 많은 상가를 보여주었던, 주임님께 연락을 드렸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본 상가가 하나 있는데 기왕이면 주임님 통해서 계약하고 싶어요. 괜찮으실까요?"
위치를 확인하더니 상권이 좋지 않다며 걱정하던 그는 '결정했다'는 말에 빠르게 주인과 협의해 2개월 렌트프리(무상임대) 약속을 받아주었다. 이후 1개월의 공사 기간을 더 받아서 아낀 돈을 인테리어에 보탤 수 있게 됐다. 보너스로 외부의 별도 공간에 대해 사용 허락까지 받았으니, 9회 말 투아웃의 역전타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