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농촌 지역에 집을 구하고, 손님이 올 만한 도시 지역에 매장을 얻어 출퇴근을 하는 것이 우리 계획이었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전원을 누리며 가게도 운영하려면 농촌과 도시 양쪽 분위기를 모두 살펴야 한다.
오전에 출발해도 이동 시간과 밥 먹는 시간, 일몰 이후를 빼고 나면 집을 볼 시간은 짧았다. 주중에도 짬짬이 방문할 지역의 매물과 동선을 확인해 미팅 약속을 잡는다. 정리한 자료를 보고 주말에 내려가면서 전화를 걸면, 목록의 절반은 날아갔다. 보러 오는 걸 잊었거나 이미 계약이 됐거나. 혹은 주인 생각이 바뀌었거나.
가게와 집만 오가다가 낯선 지역으로 매주 다니는 일은 사실 즐거웠다. 점점 더 집에 있고 싶어 하는 남편과의 명분있는(이런게 필요해질 줄이야) 데이트 혹은 당일치기 여행같았달까. 붉게, 때로는 보랏빛으로 그라데이션된 석양을 보며 돌아오는 길에는 장시간 운전한 그가 좋아하는 맛집에서 배불리 먹고 하루의 긴장을 풀었다. 둘이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눈 날들이 또 있을까? 모든 상황이 생소하고 의논할 거리는 넘쳐났다.
맨 처음 보러 간 세종시는 공원이 많고 쾌적한 분위기여서 살기에는 좋아 보였지만 상권이 생각보다 휑했다. 몇 번 더 가봐도 마찬가지. 아산시는 농촌 지역에 우사가 많아 부동산에 '근처에 우사가 없는지'를 먼저 물었다. 맑은 눈을 한 소들의 구린 향기는 멀리서도 진하게 풍겨왔다.
값은 저렴하지만 거의 새로 지어야 하는 빈집도 알아보았다. 막상 가보니 입구부터 사람의 키만 한 잡초들이 무시무시... 차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고 고치는 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아 얼른 포기. 빈집도 다 같은 빈집은 아니다.
도시와 농촌 모두 적응하기에 어렵지 않을 것 같은 유력한 후보지는 청주와 평택이었다. 온종일 집에서 귀염둥이 JW를 돌보느라 함께 지방으로 다니지 못한 어머님과 JW를 차에 태우고, 마지막으로 두 지역 모두를 돌아보면서 집들을 재방문했다.
텃밭이 넓어 꽃이나 작물을 가꾸기에 좋지만 어머님 혼자 시내에 나가기 힘들어 보였던 청주의 집은 주위에 집이 몇 채 없었다. 반면 평택의 이층 집은 텃밭은 없어도 걸어갈 만한 시내와 단독 주택이 주변에 많았다. 장점만 가진 곳이 있으면야 좋겠지만 그런 집이 나타나지 않는 타이밍. 본 곳 중 최선인 두 곳도 빨리 계약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이다.
남편: "그래서 엄마는 어디가 더 좋아?"
시어머니 : "너넨 어디가 좋은 것 같니?"
우리는 평택 쪽에 더 마음이 갔다. 집을 소개해주신 분부터 밝고 정중하셨는데 필요한 만큼의 친절과 솔직함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지난 몇 년간 남편과 내가 좁은 방 한 칸에서 잠만 자다시피 지낸 걸 생각하면, 집의 한 층 전체를 쓰는 건 상상만으로도 멋진 일이었다. 각 층마다 방이 세 개, 욕실과 주방(겸 거실)이 하나씩 있어 충분히 독립적이다 못해 자유로운 살림이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최종 선택권은 어머님께 있었다. 평소 티격태격하는 아버님과 같은 층에서 잘 지내실지도 의문이 든다.
다음 날 다시 평택으로 향했다. 한 번 더 집을 구석구석 살핀 어머님께서는 도장을 꺼내드셨다. 이층 집의 주인은 이렇게 금방 집이 나갈 줄 몰랐다며 너무 싸게 내놓았나 싶었다고 하셨다. 집을 판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도 그분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집과 호감이 가는 분들과의 계약. 굳이 가격을 깎을 필요가 있을까? 마침 얼마 후 KTX 역이 생긴다는 발표로 해당 읍의 집들은 가격이 오르고 있었다.
두 달 만이었나, 그날은 모두 오랜만에 발 뻗고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