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새로운 일상 찾기
번쩍 하고 지나간 빛의 장막은 걷히고 눈앞의 현실로 닥친 시골 살이는 더 이상 아른한 로망이 아니었다. 시골에 빈집을 사서 솜씨 좋게 고친 사람의 책, 얼결에 시골집을 산 유투버의 브이로그, 브런치 작가들의 농촌 생활이 담긴 글을 보며 앞으로의 삶을 그려보려 했지만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코 끝까지 차오른 물처럼 답답하고 숨쉴 곳 없는 대도시의 날들. 자연 속 평온을 바랐던 나와 시어머님은 농사를 지어보고 싶었다. 온라인 귀농귀촌종합센터(www.returnfarm.com)를 먼저 검토해보니 귀촌이나 귀농을 택하는 보통의 연령대에 비해 30-40대인 우리 부부는 젊은 편이어서, 귀농 지원 제도(ex. 농업창업자금 대출, 주택구입/수리비 대출, 영농정착지원금 지급 등)의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몇몇 지자체에 귀농 지원의 세부 요건을 문의하고 온라인 귀농 강의를 들으며 내린 결론은 '귀농 정말 어렵구나!'. 먼저 원하는 지역과 그곳에서 재배하기 좋은 작목을 선택한 후 농업 기술을 습득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농지를 구해(농지는 다른 땅과 달리 경자유전의 원칙이 적용돼 매매 및 임대가 까다롭다) 청년 후계농(3년간 영농정착지원금을 지급하는 대상. 청년 창업농이라고도 한다)으로 선발되는 과정까지 더하면 적어도 1년 반 이상 걸릴 것 같았다. 그것도 시기가 여러모로 잘 맞을 경우. 대출이나 지원을 받는대도 왕초보 농부의 위험 부담은 크다. 첫 농사가 성공할 확률은? 그 이후에는 과연 다 갚을 수 있을까.
사람 대신 농작물의 생육 환경을 유지하고 관리해주는 스마트팜(지능형 농장) 경영도 알아보았지만,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기술이라 초기 투자비용이 높은 데다 농사에 대한 지식은 필수였다. 게다가 일반 농사에 비해 사례와 정보가 많이 부족했다.
농사가 어렵다면 시골에서 뭘 하며 살지?
운영하던 비스트로를 정리하고 다른 매장을 연다면 그건 비건 베이커리라고 염두에 두긴 했었다. 하지만 사방이 논밭인 시골에 비건 베이커리를 열 수 있을까? 이웃 할머님 할아버님들이 오시면 비건을 설명하는 데만 한참이 걸리는 건 아닐까. 비건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사람들과 최소한의 수요는 있어야 매장을 열고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저녁, 우리는 전구색 조명이 은은한 식탁에 둘러앉아 원하는 지역에 대해 한 가지씩 말해보기로 했다. 남편은 <서울보다는 남쪽>, 어머님은 <서울과 너무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비건 베이커리에 대한 수요가 있는 곳>이면 오케이.
이 세 가지 희망 사항을 토대로 조금 더 논의해서
1) 집을 팔고 남은 자금으로 대출 없이 집을 살 수 있는(거주 용도)
2) 인구 유출보다 유입이 많고, 비슷한 30-40대도 많은
3) 당장은 어렵지만 나중에라도 농사를 짓기 적합한
지역을 찾아 7개의 시 - 세종시, 아산시, 청주시, 천안시, 평택시, 안성시, 화성시 - 를 추려냈다. 모두 도농복합시여서 완전한 농촌보다는 적응이 수월해 보이는 곳들이다.
이제 직접 돌아보며 숨어있는 새로운 일상을 찾아 나설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