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팔린 데는 어떤 까닭이 있었을까

변화의 시작

by Yujin



집이 팔린 건 작년 3월이었다. 시어머니께서 지난 몇 년간 내놓으셨지만 좀처럼 산다는 이가 없던 언덕 위의 오래된 아파트(참고로 한 동 짜리다)를, 계약하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당시 어머님은 스무 해 넘게 아기들을 돌보고 계셨다. 복지 기관에서 기저귀, 분유 같은 필수용품과 차비 정도를 지급하고 아기들을 위탁하는 봉사 활동. 작은 방에 함께 살던 우리 부부도 퇴근 후와 휴일에는 육아에 동참했지만 어머님의 피로를 덜기엔 역부족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돌본 JW는 잠시만 눈을 떼도 쿵!소리와 연단 울음소리가 들리고, 1초도 가만히 있지 못해 온몸으로 놀아줘야 하는 튼실한 아기였다.


처음엔 아기가 좋아서 돌봄 활동을 시작하신 어머님은 60대 중반을 넘기며 하루가 다르게 체력이 떨어졌다. 그만두고 싶어하시면서도 은퇴를 미루셨다. 점점 높아지는 집 담보 대출의 이자와 원금을 우리가 드리는 생활비에 위탁료를 보태어 빠듯하게 감당하셨으니. 늘어난 허리 보호 밴드를 두르고 이유식을 끓이는 어머님을 보면 이제 그만하시라 하고 싶었지만 몇십만 원을 매월 더 드릴 방법이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매장을 운영하던 우리 부부의 임금과 생활비를 모두 앗아갔고, 빚을 내어 차린 설 차례상에 까맣게 속이 타기도 했으니. 늘 '괜찮다'(=전혀 괜찮지 않다)면서 우울한 얼굴이었던 식구들은 밥을 먹거나 TV를 보며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말들을 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얼마 전 집을 보시고 마음에 들어 하니, 주말에 가계약을 할 수 있느냐'는 부동산의 연락. 어머님은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매장에서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있던 우리는 그 소식에 의아했고,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집이 팔린다고? 놀람은 설렘으로 바뀌어갔다. 정말 우리가 이사를 하는 걸까.

분명 기회였다. 무리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집과 원하는 방향으로 꾸려갈 만한 매장을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어머님을 채찍질하던 주택 담보 대출과, 뜨거워지는 솥 안의 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던 가게의 위험 요소들로부터 놓여날지도 모를.


어머님은 결정의 순간에 과감하셨고, 내가 부동산에서 JW를 안은 채 모든 사람에게 의혹의 눈초리를 쏘는 동안 도장을 찍으셨다. 늦게 도착한 매수인 영감님은 가계약 내내 빙글빙글 웃었다. 오래된 아파트이니 산다는 사람이 있을 때 싸게 해줘야 한다는 부동산 아저씨의 꾐에, 어머님은 시세보다 헐값에 내놓은 집을 한번 더 깎아주신 것이다. 영감님은 인터폰도 꼭 고쳐달라는 말을 부단히 반복했다.


처음으로 집이 팔린 뒷맛은 다소 씁쓸했지만, 하우스푸어에서 벗어나게 된 어머님은 마음의 큰 짐을 내려놓으셨다. 그 무렵 양부모가 결정된 JW만 보내고 나면 고된 육아도 끝날 것이다. 반면 우리에게는 비로소 모든 일이 시작이었다. 집을 비워주기까지는 약 3개월이 남아있었고, 그건 마냥 당혹스러워하기엔 여유로운 기간이 아니니까.


그때까지 이사 갈 지역과 집을 정하고, 그곳에서의 생계를 고민하고, 운영 중인 매장도 정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