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전기, 배관, 목공, 미장과 같은 굵직한 작업들이 끝났다. 이제 메인 바(bar)에 파벽돌을 붙이고 바닥을 반듯하게 갈아내어 코팅할 차례다. 마지막으로 집기들을 세팅하면 마무리일 것이다. 도면을 보신 벽돌 매장의 사장님께서 필요한 벽돌과 접착제의 양을 계산해주셨고, 트럭으로 배달도 해주셨다.
네 개의 바퀴가 달린 작은 의자를 타고 파벽돌을 붙이는 일은 흥미로웠지만 시간이 꽤 걸렸다. 끝까지 살리고 싶었던 곡선 부분은 벽돌을 잘게 쪼개어 붙여야 자연스러워, 남편이 톱날을 여러 번 교체하며 악력을 불태웠다. 남은 파벽돌은 벽 아래 빙 둘러붙여 걸레받이를 만들었다.
모아둔 쓰레기를 버리는 날! 공사 시작 전부터 놓여있던 철거 폐기물부터 중간중간 계속 나온 공업 자재들은 차를 불러서 버리면 80-90만 원의 비용이 든다고 했다.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하며 나온 쓰레기 양은 그리 많지 않아서, 각종 쓰레기 봉투와 폐기물 스티커로 배출하니 5만 원에 해결됐다. 노력했던 쓰레기 뿐만 아니라 인력과 처리 비용도 크게 줄인 셈이다.
바닥을 갈아낼 샌딩기는 외할머니 장례를 치르러 부산에 가던 날 도착했다. 치매 증상으로 요양 병원에 들어가신 할머니를 찾아뵙지 못한 지 5년째. 마지막 가시는 길에 손녀 얼굴은 알아보셨을까?서울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눈물이 제멋대로 불쑥 나왔다 들어왔다 했다.
급히 가느라 작업하시는 분께 내맡긴 일이 과연 잘 됐을까 싶어 매장에 들르니, 꾀죄죄하던 바닥이 세수한 듯 말끔해져서 반짝이는 신주(동) 선들이 보인다. 휴대전화로 바닥 사진을 찍어 페인트 가게로 갔다. 사진을 보시더니 이런 바닥에 에폭시를 바르면 그냥 떨어져 버린다는 페인트 가게 사장님 말씀. 본래는 에폭시를 생각했지만 옛날 교실바닥 같은 빈티지한 느낌을 살리기로 하고, 프라이머와 코팅제만 칠하기로 했다.
우선 바닥을 갈아내면서 깨지고 떨어져 나간 부분들을 직접 메웠다. 코팅제의 접착을 도와줄 프라이머부터 매장 전체 가장자리에 작은 붓으로 바르고, 롤러에 적셔서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오며 칠했다. 완전히 말린 후 같은 방법으로 한 번 더 반복. 나중에 코팅제도 두 번 칠했다.
중고거래 마켓에서 구한 테이블과 의자들도 모아서 사포질 후 스테인을 바르고, 집기들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오븐과 커피머신, 냉장냉동고, 제빙기 등은 미리 결제해 설치 날짜만 알려주면 되는 상황. 나무로 짠 주방내 테이블의 크기에 맞춘 유리 상판과 빵을 전시할 쇼케이스는 현장에 오신 유리 사장님께서 척척 견고하게 붙여주셨다.
모든 일이 언제부턴가 너무 빠르게 마무리되는 것 같다. 용도 변경을 해야한다는 이야기에 눈물부터 나고, 오픈이 미뤄진다며 마음 졸일 때가 엊그제 같은데...
혹시 반셀프 인테리어에 도전하고 싶거나, 이미 시작한 분들을 위해 시설비 내역을 공개해둔다. 경험에 의하면 거의 매몰 비용인 냉난방기는 시설에 준하므로 내역에 포함시켰고, 다른 모든 집기류는 제외했다. 작업 순으로 작성했으니 참고하시기를.
< 38평 비건 베이커리&카페 반셀프 인테리어/ 경기도 평택 >
설계도면 300
페인트 51
유리 스티커 제거(전용 칼, 사다리, 분무기, 세제) 10
전기공사 550 한전 납입 154 조명, 실링팬, 그네 90
수도설비공사(100리터 전기온수기 포함) 200
변기, 싱크대, 수도꼭지, 팝업, 트랩, 패킹, 식기건조 선반 43
목공사 400
꺼진 바닥 부분 미장 60
냉난방기(스탠드형, 설치비 포함) 250
파벽돌(접착제 포함) 25
산업용 청소기 28 폐기물, 일반쓰레기 처리비용 5 사포 1
바닥 샌딩 30
바닥 프라이머, 코팅제, 롤러, 붓 31 우드스테인 13
유리 상판 & 전시대 40
작은 로고 간판, 레터링 스티커 10
* 시설비 소계 : 2,291만 원(부가세 별도, 2021.7월 기준)
집기 구입에 들어간 1,039만 원까지 더한 총 인테리어 비용은 3,330만 원. 합해도 턴키 견적의 1/2~1/3 이하 수준이다. 기간은 착공일로부터 약 한 달이 걸렸다. 몸 고생, 마음 고생이 있었지만 구석구석 디테일을 살리고 의도한 것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인체에 무해한 친환경 자재를 사용하며 불필요한 쓰레기도 줄였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고 창의적인 일을 즐긴다면 한번쯤은 도전해 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모든 공사 비용을 차례로 송금하자 설명할 수 없는 허탈감이 몰려왔다. 폭염에 낯선 사람들과 에어컨도 없이 일하며 이러다 쓰러지겠다 싶었던 여름. 함께 힘들었던 만큼 내적 친밀감이 컸는지, 여기저기 굴러다녀 치우기 바빴던 음료수 병들과 담배꽁초까지 그리웠다. 왁자한 소음과 발길이 사라진 매장에 둘만 남겨지니 왜그리 막막한지.
점검한 오븐을 예열하고 테스트했다. 그런데, 머릿속에 저장해둔 레시피가 떠오르지 않았다. 적어둔 것들도 이렇게 헷갈릴 수가! 두 달이 넘는 베이킹 공백기가 생기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특히 오븐은 설치 장소와 브랜드에 따라 실제로 들어오는 온도가 다르다. 며칠을 테스트한 결과 기존에 쓰던 오븐은 원하는 온도보다 5도를 낮게 설정해야 정상 온도가 나왔고, 새로 산 오븐은 다이얼에 표시된 숫자보다 무려 18도를 올려야 맞았다. 바뀐 동선과 재료 위치에 익숙해지는 데도 연습이 필요했다.
전처럼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수 있을지 의구심을 느끼며 메뉴를 테스트하던 그 무렵. 건설사 대표님과 일하는 소장님이 <아무튼 출근!>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다. 공중파로 잠시라도 비춰진다는 말에 우리 매장에서도 촬영을 하기로 했는데.
촬영 당일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매장에 들어왔다. 카메라 앞에 잔뜩 긴장한 나는 어색한 웃음으로 대체 뭐라고 말한건지, 절로 고개를 흔들게 된다. 훗날을 위한 좋은 경험이었겠지?
가오픈을 앞두고 'VISHOP'이라고 쓴 초미니 간판을 바깥 기둥에 부착하고, 정문에는 커다란' V'자 스티커를 붙였다. 비숍의 이니셜이 V이기도 하지만 누가 봐도 잘 보이라고 체크(V) 표시를 한 건데 누군가는 알아봐줄까?
비건 Vegan(완전 채식) + 숍 Shop, 비숍Vishop이라는 네이밍은 음악을 듣다 떠올렸다. 들었을 때 비건 베이커리와 (잡화를 판매하는) 숍을 직관적으로 떠올리길 바랐다. 발음이 같은 체스의 비숍(Bishop)은 처음보다는 경기 후반부에서 힘을 발휘하는 말. 당장은 쉽지 않을 팬데믹을 지나 시간이 갈수록 인정받는 명소가 되고 싶다.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불안으로부터 아이디어를 꺼내 실현하는 건 값진 체험이다. 지금도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공간을 찾는 손님들, 달라지는 주변 풍경들이 매일 고맙고 기쁜 건 직접 꾸린 이곳에 대한 순도 높은 애정 덕분이 아닐까.
산다는 건 정연한 질서와 평온함보다, 지독한 혼돈과 고통 속에서 매 순간을 창조하는 행위는 아닐까. 크고 작은 바람에 끊임없이 흔들리다 어느 순간 자기라는 꽃을 피워내는. 짙은 안개와 소용돌이, 어둠과 잡음 속에서 끝내 내면의 빛을 찾아 폭발시키는. 가끔 잊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예술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