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짓들

도농복합시에서의 일상(2)

by Yujin

평택으로 이사하고 나서 시작했거나 일어난 몇 가지 일들.


[홈 요가]

"오늘도 영상 따라 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나마스테."

요가를 다닐 만한 곳이 집(농촌)에서 멀다 보니 방에서 요가를 하게 됐다. 특별히 유연성이 좋거나 수련을 오래 한 건 아니어서 몸에 무리를 줄 수도 있는 중급 이상의 아사나보다는 스트레칭과 힐링, 명상 위주의 기본 동작들을 고르는 편. 특히 한 동작에서 오래 머무는 인 요가(Yin Yoga)를 좋아한다. 저녁에 10분씩을 목표로 하다가 15분, 20분, 25분으로 조금씩 늘리며 습관을 붙여 지금은 주 4회 이상 수련한다.


일찍 눈뜬 날엔 새벽에도 할 수 있고, 선생님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면 당황하는 대신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 다시 볼 수 있으니 장점이 많다. 뒤집어 입은 티셔츠와 잠옷 바지여도 누군가를 의식할 필요 없이 몸과 마음을 일치시키는 기분이란.



[주 5일 근무]

베이커리를 열고 본격적인 주 5일 근무를 시작했다. 소상공인으로서 근무 일수를 자발적으로 줄이는 게 쉽지 않은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근무 일수를 반강제로 줄여본 경험이 삶의 질을 높이는 촉매가 됐다.

일주일에 6일을 근무할 땐 몇 시간도 제대로 쉬기 어려웠는데 하루 이상 푹 쉬니 긴장이 풀리고 컨디션이 되살아났다. 좋아서 시작한 일도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면 늘 좋을 수만은 없는 법이어서, 스스로에게 에너지를 불어넣는 시간은 매우 소중하다. 떨어진 기운으로 가까스로 버텨봤자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일이 아니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휴무일 중 하루는 푹 자고 일어나 하고 싶었던 활동에 집중하면서 보낸다. 다른 하루는 시부모님을 병원에 모셔가거나 산책하고, 다함께 저녁을 먹는다. 집안일을 돕거나 쇼핑 혹은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오기도 하고.



[식집사 입문]

반려식물 입양을 시작했다. 집 근처에 큰 화원이 있어서 구경하러 간 일이 발단이었다. 이름 모를 꽃들과 키 작은 나무들이 가득한 곳에서, 손목에 깁스를 한 사장님은 일이 많아 힘들다고 하시면서도 활기차보였다. 처음엔 구경만 하다가 사장님이 선물로 주신 다육이를 받아 들었는데, 그 후로 방문할 때마다 눈에 띄는 식물들을 하나씩 데려오고 있다. 길어야 1주일쯤 보는 꽃 몇 송이에 비싼 값을 치르곤 하다가 화분째 입양하니 최소 몇 달씩 자라는 과정을 보며 설레고 교감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물만 줘도 잘 자라는 녹보수와 마삭, 칼랑코에, 무화과 같은 아이들은 잎사귀를 쓰담쓰담 해주고 싶을 만큼 착하다. 살뜰히 보살핀 방울토마토와 무화과는 수확도 해보았는데 얼마나 귀하고 아깝던지! 최근에는 쑥갓도 수확해서 빵에 넣어 먹었다. 함께 파종한 바질은 곤충들이 자꾸 잎에 구멍을 내긴 해도,잘 자란다.

얼마 전 꽃을 피운 '지옥이'(파리지옥)는 온 가족이 힘내라고 열심히 응원해주었다. 그동안 지옥이가 곤충을 삼키거나 먹는 장면을 아직 본 적이 없어서 사냥 능력이 있긴 한지 의문이 든다. 집게 같은 손이 하나씩 무리를 비집고 나와 기다란 꽃대를 올리고 하얀 꽃을 피우기까지 신비롭기로는 최고인 아이! 키우는 식물 중 유일하게 물을 위에서 주지 않고 화분 아래로 주는데, 해보면 이게 더 편하다.


힘들게 꽃을 피운 파리지옥 '지옥이'.

[셀프 미용]

서울에서는 시간과 체력을 아끼려고 미용실에 가서 남편과 함께 꾸벅꾸벅 졸곤 했다. 이사 온 후로는 여유 시간이 생기면서 한 달에 한 번쯤은 자기 머리를 직접 가꾸자는 합의에 이르렀다. 두피가 얼얼한 약품으로 머리카락과 몸을 괴롭히던 화학염색 대신, 천연 염색인 헤나부터 도전했다.

밝은 연둣빛이 도는 헤나 가루를 마요네즈 농도로 물에 갠 다음 샴푸 한 머리에 골고루 바르고, 랩이나 샴푸 캡으로 싸둔다. 2시간 있다가 린스하면!

바르고 헹구는 내내 은은한 풀냄새가 나고 따가움도 전혀 없었. 경제적인 면은 물론 두피도 튼튼해진다고 해서 지금도 헤나를 애용한다.


셀프 염색을 하니 커트 욕심도 생겨 미용 가위와 커트보, 이발기를 구입했다. 내 머리는 어느 헤어 디자이너가 올린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직접 잘랐고, 남편과 시어머님의 머리도 요구에 맞게 조심조심 잘라보니 생각보다(?)멀쩡했다. 얼마 전 다시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손질했는데 정원사가 된 듯 뿌듯해서, 계속 맡겨주신다면 꽤 잘 자를 수 있을 같다. 내 머리는 아직 남편에게 맡기기 두렵지만.




건물과 사람에 가려 답답했던 서울과 달리 평택에서는 높은 하늘과 평평한 논밭의 탁 트인 풍경에 숨이 잘 쉬어진다. 사람보다 훨씬 많은 이름 모를 들풀과 야생화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새와 곤충들, 집 계단을 뛰어다니는 청개구리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건 덤. 인간이 동물이나물을 키우는 것 같지만 그들 또한 우리를 키우듯, 모든 환경과 존재들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 아직 그 영향을 모두 알 순 없지만, 돌아오지 않을 이 시기의 풋풋함과 미숙함이 사랑스럽다.


일상에 감탄하고 감동하다보면 결국은 인생이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함께 살아가는 우주의 존재들을 관심 있게 바라보고 궁금해하는 마음의 여백. 빈 공간이 커질수록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용과 관조의 태도 또한 깊어질 것 같다.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할 것 같던 때 도저히 알 수 없었던 '내려놓는다'는 말의 뜻을 조금씩 이해하는 어른이 되어간다. 그건 체념이 아니라 겸손한 비움이란 걸. 당장의 결과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까닭 있는 세상의 이치는, 남들에게 그렇듯 내게도 똑같이 적용되므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혼란스러운 생각에 빠져 안간힘을 쓰는 대신 한 걸음 떨어져서 스스로를 보는 것은 아닐까. 매일 아침 앞의 무화과 나무에 시선을 던지거나 출근길에 펼쳐진 논밭을 흐뭇하게 바라보듯이.

오늘도 나를 아끼고 응원하는 세상의 크고 작은 눈짓들처럼.


집 마당에 활짝 핀 오월의 장미. 5mm씩 벌어지나 했더니 갑자기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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