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동네에 여름에도 장사하는 붕어빵 아저씨가 계신다. 어머님의 친구분(특징 : 에너지 넘침)이 근처에서 드럼 연습을 하다 알게 되었다며 추천하셔서 찾아갔더랬다. 한 봉지 사다 맛보니 팥소는 담백하고 반죽이 노릇노릇 아주 바삭하게 구워져 있었다.
"음~! 맛있는데? “
갓 나와 뜨겁고 달짝지근한 붕어빵을 먹으면 세상에 더 맛있는 건 없을 것 같다. 어릴 적 아버지가 붕어빵을 사 오시던 장면이 그리운 미소처럼 떠오르는 건 덤.
올겨울은 유독 붕어빵 인기가 높아 '붕세권'이라는 말도 나왔다. 파는 곳이 많이 줄어든 데다 개당 천 원 이하로 여전히 저렴해서, 붕어빵을 사 먹을 수 있는 권역에 살면 부러움을 산다. 우리 가족도 매주 붕어빵을 샀고 줄 서는 일은 내 몫이었다.
순서대로 돌아가는 아저씨의 주물틀은 여태껏 봐온 여느 노점보다 깨끗했다. 가까이 가보면 지저분해서 뒷걸음질 치게 되는 노점이 있는 데 반해, 틀에 묻은 가루를 털어내는 솔까지 보송보송하다. 폴로셔츠에 앞치마 차림을 한 아저씨의 연세는 대략 60 정도일까.
반죽이나 팥소 등 남다른 비결이 있는지 유심히 살폈는데, 누구나 인터넷으로 살 수 있는 반죽과 소를 봉지째 바로 뜯어 쓰셨다. 그러면 반죽의 양이나 비율, 불의 세기와 굽기 등에 대한 노하우가 아저씨만의 기술인가 싶다. 여쭈니 20년 넘게 붕어빵을 구우셨다고. 추운 날씨,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아저씨만 바라보는 눈길들에 조바심이 날 법도 하건만 침착한 그의 손에서 덜 익은 붕어빵을 받아든 적은 없다.
크리스마스에 시골 주택가의 휴일은 한산했고, 줄 없이 아저씨와 1:1로 마주 보게 됐다. 어떻게 오늘도 나오셨어요? 하니 일요일만 쉬고 공휴일에는 나오신단다. 일요일은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는 유일한 날이라서 토요일 저녁부터 설렌다고도 하셨다. 영하 15도 이하쯤 되는 날 빼고는 손님들과의 약속이니 나오신다고 해서 그 말씀을 믿었는데…
1월 초부터 갑자기 붕어빵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첫째 주에 자리에 계시지 않은 걸 봤을 땐 어디 아프신 건가 걱정이 됐다. 둘째 주에는 차를 돌리기 전 공터를 다시 보았는데, 한구석에 검은색 끈으로 둘둘 싸인 포장마차가 세워져 있었다. 설마 저건 아니겠지 하면서도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셋째 주에 한 번 더 가보자 하고 들른 그 자리에는 전에 본 포장마차에 빨간 줄이 그어진 하얀 통보문이 주차위반 딱지처럼 두 장 붙어 있었다. 아. 역시…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이 푸드트럭을 운영하고 있었다. 함께 트럭 안에서 몇 년을 부대끼며 남다른 신혼을 보냈다. 푸드트럭 붐이 일 때라 각종 행사에 참여하면 수입이 쏠쏠했지만 늘 허가받고 영업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 기회는 귀했다.
축제나 야시장, 케이터링 등의 이벤트가 없는 평일에는 눈치껏 맡은 자리에서 영업했는데 누가 민원을 넣으면 자리를 옮기거나 벌금을 냈다. 구청 직원분들과 친숙해지면 누가 민원을 넣는지 짐작할 수 있었는데 주변 카페와 다른 트럭들이 대부분이었다. (원래 자기 자린데 여태 봐줬으니 자릿세를 내라던 근처 떡볶이 트럭 사장님 말씀이 아직도 기억난다)
조금 알아보니, 동네 붕어빵 아저씨도 누군가에게 끈질긴 신고를 당하시는 듯했다. 지역 카페에 ‘어느 할 짓 없는 인간이 착한 아저씨를 신고했느냐'라고 분노하는 팬들도 보였다. 줄 서는 걸 감안해도 통행에 불편이 없는 자리인데… 겨우내 손님들이 줄을 서는 붕어빵 수레를 보며 누군가 심하게 배가 아팠거나 불공평하다고 여긴 걸까. 한여름 삼복더위에 잔뜩 구워져 나온 붕어빵 앞에서 부채질하는 아저씨를 봤어도 그런 민원을 넣었을까.
몇 년째 매장을 운영해 보니 가장 큰 부담 중 하나가 임대료라는 걸 부정할 수 없지만, 임대료 없이 생계를 꾸리는 노점상이 부럽거나 미웠던 적은 없다. 길거리 영업이 대체로 안전하지 않고 그마저도 매일 날씨의 영향을 받거나 민원에 시달리는 등 변수가 많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합법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자리가 너무도 부족한 현실이다. 낡아빠진 수레부터 푸드트럭에 이르기까지, 마이크로 점포를 위한 대안 공간을 사회에서 충분히 만들어줄 수는 없을까.
서울과 시민이 공동의 조성자가 되어 다채로운 행사와 프로그램이 열리던 서울혁신파크에도 60층짜리 대형쇼핑몰이 들어선다고 한다. 입주자들이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쫓겨나면서 힘겨운 투쟁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자본가와, 자본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임대료를 낼 수 있는 사회 구성원 일부만 행복추구권을 보장받는 사회에서 붕어빵과 호떡 등을 파는 소상공인들은 조용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사라진 그들은 어디서 얼마나 더 고단한 일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