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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Jan 09. 2023

인생에 갑자기 고양이가 나타난다면,

 

 "어, 또 왔다."


 무화과 잎이 모두 떨어진 늦가을, 고양이 한 마리가 집 앞 테라스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뽀얀 흰색 몸통에 진회색 옷을 입은 고등어태비. 아직 앳된 티가 나는 것이 5-6개월쯤 되었을까? 멀리서 사진을 찍어 자세히 보니 아이라인이 진하고 귀 끝에 스라소니처럼 한가닥씩의 털이 뾰족하게 나와있어 더 귀여웠다. 햇볕 아래 식빵을 말고 앉은 새침한 녀석을 마주치는 일은 이후로도 반복됐다.


늦가을의 첫 만남.

 

 시험 삼아 사본 사료를 그릇에 담아 물과 함께 주니 녀석은 가루 한 톨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기특해진 나와 남편은 냥이에게 작은 펠트집을 선물했다. 하루 중 언제든지 들어와서 편하게 쉬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입지 않는 포근한 옷들을 안에 깔고서. 일광욕을 즐기던 자리에 놓았지만 과연 여기 들어갈까 라는 우려와는 달리, 다음날 출근할 때 집에서 뛰쳐나와 도망가는 녀석을 볼 수 있었다. 경계가 심한 녀석이 빠르게 도망갈 때 보이는 조그만 엉덩이 두 짝에도 우리는 흐뭇했다.


일단 펠트집 한 채를 선물했다.


  겨울이 오면서, 비와 추위를 피할 작은 비닐하우스를 추가로 준비했다. 거거에다 펠트집을 통째로 넣으니 하우스 문을 툭툭 만져보며 부스럭대는 고양이의 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잘 적응하네?'

 안에서 잠든 녀석의 솜털 보송한 등이 햇볕을 받으며 천천히 오르락내리락하는 뒷모습은, 평화라는 단어를 세상에서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듯했다.


 어느새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할 때면 사료 외에도 닭가슴살, 캔, 츄르 등의 간식을 장바구니에 담고 장난감, 스크래처까지 하나씩 고르는 나. 외줄타기 같던 20대에 고양이를 기르다 입양 보내고 자책한 경험이 있어, 처음에는 고양이에 정 붙이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남편의 얼굴을 보면.

 '에라 모르겠다...'

 고양이를 보는 그의 눈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나는 그 소년 또한 사랑하니까.


고양이 살림이 늘고 있다.

 

 눈이 내리던 어느 날 펠트집 안에 두꺼운 박스를 하나 더 넣었다. 정수한 물은 아침이면 녀석의 혓바닥 모양으로 패인 얼음이 되어있기 일쑤여서 뜨거운 물과 섞어 주고, 핫팩도 조물조물 만져 넣어주곤 했다. 출근 전과 퇴근 후에 꼬박 사료와 물을 주고, 잠들기 전 간식을 잊지 않았다. 나름대로 신경 쓰며 한 달 넘게 밥을 줬건만 녀석은 가까이 오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 귀를 눕히거나 쫑긋거린다. 경계심을 잃지 않는, 아니 오히려 더 키워가는 듯한 모습이 기특하기도 서운하기도!

 

 밥을 주려고 문을 열자마자 "하악!"하고 공격적인 소리를 내는 고양이가 가끔 괘씸할 때도 있었지만, 먹이를 더 달라고 문 앞에 앉아 시위하는 모습을 볼 때면 녀석을 잠시라도 진심으로 미워할 수는 없었다.


그 귀는 대체 뭐야...

 

 이따금 고양이가 쉼터에 돌아오지 않으면 남편은 밤새 문 앞을 몇 번씩 오가며 안절부절못했다.


남편 : "뚱고양이(덩치 큰 노란 고양이가 주변에 돌아다닌다)랑 싸웠나? 어디 가서 다쳤나? 왜 안 오지? "

나 : "그냥 놀러 간 거겠지. 한창 호기심도 많을 때잖아. 자고 일어나면 들어와 있을 거야."


 춥지만 자유로운 길거리가 녀석의 본래 집... 서로 얽매임 없는 관계이니 저러다 어느 날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가끔 가슴 한편이 싸해지기도 했다. 혹시 녀석도, 우리가 언젠가 떠나거나 밥을 주지 않을까 봐 정을 주지 않으려는 걸까?


 겨우내 터질 듯이 찐 털에 비행기귀를 하고 우리를 노려보는.

 후다닥 도망가다 벽 쪽으로 붙어 얼굴을 반만 내미는.

 눈을 밟은 발이 시려 한쪽씩 번갈아 들면서, 우리가 사료를 놓아주길 멀리서 기다리던 고양이.

 

 겁 많고 소심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황당하리만치 당당하게 굴며 우리를 들었다 놨다 하는 녀석과의 밀당은 계속됐다.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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