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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Jan 17. 2023

돌보던 길고양이의 이틀 외박이 의미하는 것


 크리스마스이브 내내 예약받은 비건 케이크를 만들었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공존, 그리고 얄미운 고양이에 대한 애정과 사심이 듬뿍 담아 만든 케이크였다.


고양이에 대한 사심을 담아 만든 크리스마스 케이크. 물론 비건.


 불꽃놀이와 와인, 깜빠뉴를 챙겨 퇴근하면서 냥이에게도 특식을 주기로 했다. 이 날을 위해 아껴온 비장의 무기인 값비싼 통조림~! 도자기 그릇에 옮겨 담고 여느 때처럼 녀석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찬바람이 매서웠지만 대문을 활짝 열고 현관에 그릇을 놓아보기로 했다. 보통 집 밖 테라스에서 밥을 주고 알아서 먹게 했지만 그날은 가까이에서 먹는 모습을 보고 싶었으니까. 냥이는 통조림의 고혹적인 향에 끌리면서도 낯선 공간에 발을 들이기는 싫은 듯했다. 웅크리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니 집안 온도는 뚝뚝 떨어졌다. 조적식 단독주택의 2층은 추운 날 1도를 높이려면 오래된 보일러님이 1시간은 열일하셔야 하는데, 네가 그걸 알 리 없지.


 “너어어~ 안 되겠어, 타협하자.”

결국 테라스 쪽으로 그릇을 조금 옮겨주었다.


  경계심이 강한 녀석은 냄새를 맡으러 왔다가 다시 물러서기를 몇 번, 한참을 고민한다. 남편과 나는 거실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최대한 고양이에게 관심 없는 척을 했다. 각자 핸드폰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 핸드폰 렌즈를 통해 고양이를 보면서, 아니 화면 속에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길고 숨 막히는 30여분이 흐르자 녀석이 조용히 다가와 통조림을 먹기 시작했다.


 

"찹찹찹~"

 오물오물 경쾌하게 연어를 씹는 소리. 맛있게 먹으면서도 이따금 우리 쪽을 보며 경계하는 녀석을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몇 분 동안 볼 수 있었다. 기록적인 날이라 줌으로 당겨 영상을 찍었는데(그땐 약간 변태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 모습을 남겨두길 다행이었다.






 이틀 후 쉬는 날, 연말이라 가족들과 영화를 보러 가려고 차에 막 오른 참이었다. 시동을 걸고 차가 데워지길 기다리는데 갑자기, 차 아래에서 튀어나와 도망가는 고양이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에 놀란 듯 약간 절뚝이면서도 전속력으로 도망가는 고양이는 분명 우리가 돌보는 그 아이다.

 

 "쟤 어디로 도망가지? 차 밑에 있었나?"


 남편은 아무래도 고양이가 따뜻한 엔진룸에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며 혹시 다쳤을까 걱정했지만, 나는 별일 없을 거라고 말했다.


 온 가족의 눈물을 쏙 뺀 뮤지컬 영화를 보고 마트에 들렀다가 돌아왔다. 평소처럼 고양이 사료와 물을 채워주는데, 우리가 오면 어떻게 아는지 금세 나타나는 고양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에도 가끔 그런 적이 있긴 해서, 어디 놀러 갔겠지 하고 일단 남편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사료는 다음날 아침까지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밥을 먹은 거야. 먹긴 한 건가?‘

  

 그날 저녁에도 사료는 전날 준 그대로 남아있었고, 먹성이 좋은 녀석의 그릇에 사료가 그렇게 오래 남아 있다는 건 그간의 패턴을 벗어난 일이었다. 이제 남편은 본격적으로 고양이를 염려하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수시로 들락날락거리며 오는지 안 오는지를 확인하는 남편이 고양이보다 더 걱정스러울 지경이었다. 고양이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고,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해봤지만 마음이 슬슬 복잡해지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음날 아침, 문을 열었을 때 쉼터로 돌아온 고양이를 발견했다. 어찌나 반가운지!


“길이라도 잃은 줄 알았잖아, 어디 갔었어.”


 그런데 바로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움직이지 않으려는 듯한 모습이 이상했다. 남편이 고양이에게 괜찮냐고 말을 걸며 자세히 보려고 서성이자 고양이는 눈치를 살피다 못 참겠다는 듯 도망쳐버린다. 약간 느린 속도로. 그 순간 남편의 비명처럼 나지막한 탄식소리.


" 아아...! 다쳤어... “


도망가는 순간에 본 옆구리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 있다고 했다. 그것도 많이.


다치기 전 어느 날, 계단에 앉아있던 고양이.


겨울철, 고양이가 엔진룸에 들어가는 사고는
생각보다 많다고 해요(특히 주택가).
다시 추워지는 날씨, 차에 타기 전 똑똑~! 노크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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