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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Jan 22. 2023

길고양이 구조, 그 험난함 (1)


고양이가 다친 걸 알게 된 출근길, 차에 탄 남편과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하아..." "후..."


 고 작은 아이가 혼자서 놀라고 아팠을 며칠을 생각하니 안쓰럽고 억울하다. 하필이면 예년보다 추운 이 겨울, 귀엽고 똑똑한 그 녀석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어떻게든 빨리 병원에 데려가자. 사람을 경계하는 길고양이를 어떻게 잡을지는 막막했지만, 방법은 찾아보면 나오겠지.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고양이 문제와 싸우며 영업 준비를 마치고, 오후부터 길고양이를 잡는 방법에 대해 남편과 함께 본격적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야생동물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법적인 '구조·보호 조치 대상'이 아닌 길고양이. 구조업체를 통해 고양이를 잡으려면 30만 원 이상을 지불해야 했고, 개인은 포획틀(통덫, 구조망이라고도 한다)을 미리 설치해 포획하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먼저 시내의 반려동물 용품점 여러 곳에 전화해 포획틀을 판매하는지 물었지만 파는 곳이 없었다. 철물점도 마찬가지. 대여할 수 있는 동물보호단체나 캣맘(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며 돌봐주는 일반인들) 협회도 평택에는 없는 듯했다. 길고양이 TNR(T:Trap 포획하여 / N:Neuter 중성화수술 후 / R:Return 제자리에 돌려놓기) 사업을 한다는 내용을 본 것이 생각나 평택시 축산반려과에 전화하니, TNR사업은 하지만 구조망을 빌려줄 수는 없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해도 최소한 내일은 지나야 받을 수 있을 텐데… 말없이 하루 이상 더 아파할 걸 생각하면 도저히 그럴 수는 없는 일. 포획틀을 구해도 길고양이를 처음 잡아보는 우리가 바로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더더욱 오늘 구해야만 한다.

 한동안 쓰지 않던 당근마켓 앱을 켰더니 마침 가까운 지역에 중고로 나온 포획틀이 하나 있었다.


 

  판매자는 바쁜지 좀처럼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는다. 초조한 마음에 타 지역 포획틀을 검색해 다른 이에게 말을 걸려고 할 때 다행히 답장이 왔다. 직접 고양이를 구조하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빨리 병원에 데려가고 싶었기에 매장을 일찍 마감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통덫, 포획틀, 구조망으로 불리는 이것.

 

 통덫은 생각보다 커서 대형견도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안에 있는 맛있는 먹이를 먹기 위해 고양이가 발판을 디디면 발판과 연결된 문이 ‘철컹!’하고 닫히는 구조. 닫히는 소리가 커서 나라도 깜짝 놀랄 것 같다. 판매자가 예전에 고양이를 잡을 때 사용한 덕분에 마감이 날카로운 곳들은 테이프로 감싸져 있었다. 부디 고양이가 쉽게 들어가야 할 텐데...





 집에 오니 다행히 녀석이 있었다. 사료를 반쯤 먹고 남기고 쉼터에 가만히 앉아 있다. 항상 더 달라던 사료마저 남긴 걸 보니 어제보다 더 아프구나.

 포획틀 안에 넣을 캔을 하나 땄다. 좋아하는 캔이니 설마 먹겠지? 남긴 사료 옆에 캔을 넣은 통덫을 놓고 멀리서 지켜보며 고양이가 들어가 주기를 기다렸다. 녀석은 캔과 포획틀을 잠시 관찰하더니 갑자기 먹다 남긴 건사료를 먹는다. 야, 왜 지금 그걸 먹어!


"안 되겠어, 사료를 치워버리자."


 먹던 사료와 물을 치우고, 그러는 사이 도망간 녀석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돌아와 쉼터에 들어간 녀석에게 너 지금 빨리 병원 가야 한다고, 여기 한 번만 들어가자고 부탁과 사정도 해보았다. 그래도 꿈쩍을 않아 포획틀 방향을 바꾸어 쉼터 앞에 갖다 대니 낯선 상황이 수상한지 뛰쳐나와 줄행랑을 친다.


 "쉽지 않구나..."


 어떻게 해야 들어갈까? 이동할 때 다치거나 발이 빠질까 봐 철망 안에 깔아 둔 박스 곳곳에 캔의 내용물을 묻혔다. 냄새야 더 잘 풍겨보렴.

 이번엔 녀석이 돌아올 때까지 제법 긴 기다림의 시간이 흘렀다. 또 실패하면 잡으려는 걸 눈치채고 다신 안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까처럼 하면 또 도망갈 것 같은데 그냥 커다란 박스를 덮어서 잡는 건 어떨까. 비닐하우스 째로 들어 올리는 건 안 되나? 쉼터 입구에서 포획틀 안쪽까지 관을 만들어 연결하면 어떨까? 등등 집안에서 남편과 각종 시뮬레이션을 했지만 묘안이 없다. 그 사이 고양이가 쉼터로 돌아왔는데 먹는 일과 포획틀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냥 쉬고 싶은 모양이다.


 '차라리 내가 좀 할퀴어지더라도...'

 비장한 각오로 두꺼운 장갑을 낀 채 담요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담요로 덮어서 포획하려다 실패한 어느 유튜버가 생각났지만(그는 상처 입었고, 놓친 고양이는 거의 미친듯한 반응을 보였다)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칼바람은 사정없이 불고 있었다.


 남편이 쉼터에 씌운 비닐하우스를 벗겨내고 쉼터 입구와 포획틀을 더 가까이 밀착시키며 다가갔다. 혹시나 옆으로 빠져나오면 얼른 안아 올리자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눈치 빠른 녀석이 쉼터와 포획틀 사이의 작은 틈으로 미끄러지듯 도망친다! 손쓸 틈 없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우리: "안 되애...!!"(동시에)


 가버렸어.

 다신 안 올 수도 있어. 이젠 어쩌지?

 망연자실한 우리는 집 안으로 들어왔다. 종일 고민하고 애썼는데 이대로는 못 잡을 것 같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포기하는 순간 녀석의 상처는 복구할 수 없게 되고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으니까. 무능한 우리 때문에 저 작은 생명이 아픔과 추위로 고통스러운 밤을 보내겠구나 생각하니 미안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그날 밤 우리는 참담함과 단호함이 뒤섞인 기분으로 녀석의 쉼터를 철거했다. 대신 포획틀 전체에 크고 따뜻한 담요를 씌운 채 커다란 박스 안에 밀어 넣어 새로운 쉼터처럼 보이게 했다. 다시 돌아와 쉬고 싶어 한다면 포획틀에 들어가도록. 본래의 집이 없어져 당황할 수 있겠지만 한 번은 돌아와 궁금해하길 바라며.

 

 깊은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었다. 혹시나 포획틀에 들어왔다 갇힌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덜컹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일어나 구조망을 확인했지만 모두 바람소리였다. 다음날 아침까지도 포획틀은 활짝 열린 채 텅 비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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