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jin Jan 24. 2023

길고양이 구조, 그 험난함 (2)


 ‘퇴근하면 부디 포획틀에 들어가 있어야 할 텐데.‘


 하루 종일 뒤숭숭한 상태로 일을 했다. 일부러 사료도 치우고 쉼터도 없애 고양이가 더 배고프고 힘들어질 상태를 유도했는데, 오늘도 없으면... 

 통덫(포획틀)에 들어가 있대도 문제다. 갇힌 채 장시간 그 안에 있기라도 한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텐데.

 어제 병원을 알아보면서 남편과 함께 정한 고양이 이름은 <뽀>. 녀석이 염려되어 일찍 퇴근하고 싶었지만 사정상 그럴 수 없는 날이었다.

 

 집에 온 건 평소보다 조금 더 늦은 시각이어서 총총히 뜬 별빛이 환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 멈칫하며 남편을 앞세웠다.


“먼저 올라가 봐."


 혹시라도 뽀가 없으면 실망할까 봐, 평소처럼 올라갈 자신이 없었다. 없다면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아 남편이 확인해 주길 아래에서 기다렸다. 포획틀 쪽으로 다가간 남편이 외쳤다.


 "어! 문이 닫혀있는 것 같은데?"

 "진짜?"

 "응."

 “잘 봐. 다른 고양이가 들어온 거 아냐?"  


 포획틀을 설치하면 엉뚱한 고양이가 잡히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안심할 수 없었다. 집 주변에 다른 고양이들도 살고 있으니까. 어두웠지만 다시 한번 들여다본 남편이 외쳤다.


"맞는 거 같은데?"


 기쁨과 반가움으로 계단을 한달음에 뛰어 올라갔다. 박스에 넣어둔 포획틀을 천천히 밖으로 빼내어 덮어둔 담요를 들춰보니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뽀가 맞는 것 같다. 안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있는 작고 소심한 회색 등짝이. 남편이 포획틀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동안 담요를 크게 펼쳐 전체를 감쌌다. 이동시 고양이가심한 공포감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시야를 차단해 주면 도움이 된다는 글을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커다란 철망을 들고 아래로 내려가는데 1층에 계신 시어머님이 창문을 열어보신다.


"걔 들어왔니?"

"네...! 지금 병원 가려고요!"


 차 뒷좌석에 포획틀을 싣고 벨트로 고정시켰다.


"오빠, 뽀 맞는지 한 번만 더 확인하자. 병원까지 갔는데 아니면 어떡해."


 잠시 담요를 들어 올려서 보니, 긴장해서 잔뜩 굳었지만 녀석이 확실했다. 신이여 감사합니다.


"미안해. 많이 놀랐지! 언제부터 들어가 있었어. 이제 치료하러 갈 거니까 조금만 참자."


 대부분의 동물병원은 문을 닫은 시각. 미리 알아본 24시 동물센터로 출발했다. 코너를 돌거나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거대한 철망은 아래위로 튀는 소리를 냈고, 그때마다 "으악!", “아이고", ”미안!" 소리가 우리 입에서 터져 나온다. 최대한 천천히 달려 병원에 도착한 건 밤 9시 20분이 좀 넘어서였다.


병원 건물의 주차장에서.

 

 도착하기 전 미리 전화로 양해를 구했다. 한 번도 만져본 적 없고 경계심 강한 고양이인데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서. 길냥이가 오는 것을 반기지 않는 병원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행히 진료는 가능하지만 9시 이후는 야간 할증으로 진료비의 20%가 가산된다고 했다. 아픈 녀석을 치료할 수 있다는 기쁨과 안도감에 가득찬 그 순간 비용 문제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24시 동물센터에는 고양이 대기실과 강아지 대기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깔끔한 시설과 상당한 규모. 담요로 싼 포획틀을 고양이 대기실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진료실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우선 고양이가 다치게 된 전반적인 상황을 말씀드렸다.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이야기를 들은 수의사는 뽀를 안에 데려가 상태를 보고 오겠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는 대기실에 앉아 대략의 치료비를 가늠해 보았다. 얼마나 들까? 한 50만 원? 하니 남편은 더 나올 걸- 하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이윽고 상담실 문이 다시 열렸다. 선생님은 생각보다 뽀의 상처 부위가 크다고 하셨다. 피부가 뜯겨나가 근육이 다 드러난 상태인데 사람으로 치면 중환자라고. 화상 환자를 한 번 생각해 보라고도 하신다.


"고양이에게 이 정도 크기면 사람한테는...(얼마나 큰 부위일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고양이가 입은 상처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크기보다 훨씬 큰 상처인 셈이다.


 지금 치료를 할 수 있느냐고 여쭈니, 바로 꿰맬 수 있는 상처가 아니어서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한다. 염증 수치를 낮추고, 소독하고, 수액을 맞는 등 치료를 하다가 수술을 해야 할 거라고 했다. 각종 검사를 병행하면서.


"그럼 얼마나 입원을 해야 하나요?"

"최소한 3주 이상은 하셔야 할 거예요."

"(헉…) 3주나... 그럼 비용은 어떻게 될까요?"

"입원 기간, 치료비, 수술비용 등을 생각해 보면 400만 원 이상 나올 것 같네요."


"사백. 만원이요...?"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다친 길고양이를 구조해 왔는데, 치료비가 최소 400만 원이라고? 몇 초 숨을 고르고 다시 물었다.


"(여유로운 계산일 거라 믿으며) 선생님 혹시 그보다 덜 나올 가능성은 없을까요? 꼭 필요한 것만 해서..."

"네. 필요한 것만 해서 그 정도는 아마 나올 거예요. 어떻게... 입원을 시키실 건가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비용이다. 치료는 해야겠지만 감당할 수 있을까? 분위기상 그보다 더 많이 청구될 것 같은데. 다리가 부러진 반려견의 수술비 몇백만 원에 차라리 안락사를 시켜달라고 했다는 지인의 이야기가 불현듯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너무 잔인한 결정이라며 충격 받았었는데, 직접 이런 상황에 처하니 누군가는 그런 결정을 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모든 생명의 가치는 동등하고 존중해 마땅하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400-500만 원(그 이상일 수도 있는)의 지출은 이 작은 동물의 생명뿐만 아니라 나와 남편의 생계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금액이다. 어렵게 구조한 이 고양이는 분명 치료해 주고 책임지려고 데려왔는데, 대체 왜 이렇게 치료비가 비싼 거지? 호기롭게 고양이를 구출해 오던 때와는 달리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잠시 상의할 시간을 주세요."


 수의사가 자리를 비켜준 동안 남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어?(물론 치료는 하겠지만)“

"뭘..."

"지금 생각하는 거. 떠오르는 대로 말해봐."

"...... 난 그냥 입원시켜도 될 것 같은데. “

“그럼 일단 입원시키자. 대신 내가 중간에 다른 병원으로 옮기자고 할 수도 있어."

 

 뽀를 입원시켰다. 검사비와 치료비, 하루치 입원비를 포함한 청구서에는 사람과 달리 보험 적용 따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사전에 안내받은 20%의 야간 할증까지 붙어있다. 20%는 결코 적지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따뜻한 곳에서 덜 아픈 밤을 보낼 뽀를 생각하니 안심되었다면 거짓말일까. 치료를 할 수 있게 해주어서, 치료 받을 수 있어서 모두에게 고마운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뭐가 문제야.


 한 생명을 구조해서 말도 안 되게 행복하고,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 자꾸 멍해지던 그 밤. 집에 와서 쉬려고 넷플릭스를 켜둔 것도 잊은 채, 고양이의 치료 비용과 다른 동물 병원에 대해 바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입원 결정 직후, 넥카라를 한 뽀. 이 때 본 상처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길고양이 구조, 그 험난함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