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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엘 Jun 04. 2024

민주주의 반대말은 입틀막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

이번에 나온 내 책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 여러 신문에서 소개를 해줬는데 노컷뉴스가 가장 맘에 든다. 


해당 본문 내용을 조금 올린다.


 



나라가 이 꼴인데 아무도 이이첨을 탓하지 않았는가?


1616(광해8년) 12월 21일, 한낱 성균관 유생에 불과한 30세 젊은 선비 윤선도가 탄핵 상소를 올리는데 역대급이다.


누구나 생각했지만 아무도 할 수 없던 말을, 해낸다.  


_ 과거 시험이 불공정해서 아빠 찬스 없는 젊은이들이 헬조선을 외치고 있는데, 그 사실을 임금님만 모르십니다. 


_ 이이첨의 네 아들은 시험지를 빼돌리거나 대리 시험으로 과거를 패스했습니다.  


_ 이이첨은 관직 임명권을 통해 관리들을 제 편으로 만들고, 과거 시험에 부정하게 개입해서 유생들까지 제 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블랙홀처럼 권력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전하, 조심하고 또 조심하시옵소서. 


_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에서 올리는 말은 전부 이이첨 말입니다.


_ 전하께서는 이 사실을 모르십니까? 아니면 아시면서도 용인하시는 것입니까?


_ 이런 상소를 올리니 제 목숨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겠지요. 하지만 3대에 걸쳐 공직에 뽑힌 은혜를 입었으니 어찌 나라를 위해 바른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_ 아비는 제 손 잡고 오열했습니다. 상소를 말리면 나라가 망할 것이고, 상소를 허락하면 아들이 죽을 것이니 말입니다. 


_ 그러니 전하, 부디 제게는 무거운 벌을 내리시더라도 늙고 병든 아비에게는 자비를 베풀어주옵소서. 피눈물 흘리며 간절히 바랍니다. <광해군일기 중초본> 광해 8년(1616년 12월 21일).


절대 권력자는 절대로 토론하지 않는다. 


토론이, 제가 누리는 절대 권력을 갉아먹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반대말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불통과 독재, 그리고 입틀막이다. 


대통령, 아니 광해군도 그랬다. 


윤선도는 임금을 존중하고 나라를 걱정해 이이첨 실체를 폭로했는데, 광해군은 그걸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윤선도를 귀양 보내는 것으로 작디 작은 제 용량을 훌륭히 증명했다.


사람들은 권력이 두려워 침묵했지만, 침묵으로 이이첨과 광해군에게 유죄 선고를 내렸다. 


이 상소 한 장으로 윤선도는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다. 


1616년 조선 땅에 윤선도를 보낸 ‘하늘’은 2천 년 전에도 비슷한 인물을 중국 땅에 보냈다.


“하늘은 도덕과 정의가 땅에 떨어진 세상을 깨우칠 목탁으로 공자 선생님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서양에도 보냈다. 소크라테스다. 


“좋은 유전자를 타고 났지만 게으른 말은 반드시 쇠파리가 자극해야 합니다. 나는 신(神)이 여러분에게 보내신 쇠파리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여러분 등에 내려앉아 여러분 하나하나를 설득하고 꾸짖어서 각성하게 하라고 말입니다.”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론⟫, 29e.


중국에 공자를 보내고 그리스에 소크라테스를 보냈던 하늘은 광해군에게는 윤선도를 보냈다. 


처음이 아니었다. 하늘은 윤선도 이전에 또 다른 쇠파리를 광해군에게 보내 이 정도 메시지를 전했다.  


“계속 그렇게 살면, 피똥 싼다.”


광해군이 만난 첫 번째 쇠파리,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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