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피해자로 살지 않기로 했다
늦은 밤, 낡은 빌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신림동 난곡, 후미진 골목을 좌우로 여러 번 꺾어 집으로 갈 때였다.
10미터쯤 앞서 가던 여자분이 나를 힐끔 돌아보더니, 당황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나 역시 당황했다. 내가 범죄자로 보였나?
며칠 후 학교에서 여학우들에게 그날 상황을 말했더니, 자신들도 그 여자분처럼 행동한다고 한다.
평균보다 큰 키, 큰 덩치, 게다가 20대 중반 남자. 그런 내게 밤늦은 뒷골목은 마법같은 마주침을 기대할 수 있는 낭만의 공간이거나 번잡한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사색 공간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뒷골목은 두렵지만 걸어갈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그 누군가에 속한 사람이 인류의 절반이고, 내 여자 가족일 수도 있었다.
밤길을 주저 없이 걸을 수 있는 것은 남자들만의, 젊은 남자들만의 특권임을, 나는 몰랐었다.
그 일 이후, 밤길에 우연히 여자를 따라가게 되는 일이 생기면, 발걸음을 잠시 멈추거나 다른 길로 돌아간다. 내 여자 가족에게도 누군가 그런 호의를 베풀기 바라며.
어떤 남자들은 내게 발끈할 수도 있겠다.
“일부가 저지른 범죄로 왜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간주하나?”
기분은 이해하지만, 그 말은, 지뢰밭에 깔린 지뢰는 일부분에 불과하니 지뢰밭은 대체로 안전하다고 하는 말과 비슷하다.
팩트와 논리는, 형평성이 있어야 완전해진다.
잠재적 가해자로서의 억울함보다 잠재적 피해자들 공포에 공감하는 것이, 성숙한 인간이다.
(너도 여성 가족이 있을 거 아냐, 라는 말은 차마 안 하고 싶은데, 해버렸네.)
2016년 5월 17일, 서울 서초동 상가 남녀공용화장실에서 23세 여자가 30대 남자에게 무참히 살해되었다. 화장실에 머물며 6명의 남자는 그냥 보내고 처음으로 온 여자를 공격했으니, 참으로 비겁한 자다.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추모객들이 모였다. 지나가던 몇몇 남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지겹다. 그만해라.”
“사람 하나 죽은 걸로 왜 지랄이야.”
본인들은, 본인 여자 가족들은, 본인 연인과 아내는, 안 당할 거라고 생각하는 그 오만함이 가소롭다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148쪽)
지난 주에도, 지난 달에도,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이런 식으로 애도 받아서는 안 되는 젊은 영혼들에게, 한 문장으로 만사(輓詞)를 대신한다.
“세상 모든 꽃을 다 가지고 온들, 당신 한 송이만 할까요.”
2022년 5월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가 쓴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를 추천한다. 성별, 세대를 불문하고 읽어봐야 할 책이다.
_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김진주, 얼룩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