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깨굴] 2020.02.02 (2)

라떼를 먹으러 가는 자세

by 개꿀


온 가족이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낮잠 뒤에 항상 밀려오는 무기력함.


장 보러 대충 걸쳐 입고 나서려는데 남편이 커피 한잔 마시고 오라고 등을 떠민다. 고맙다.


바로 작은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는다. 전신 거울에 이 옷 저 옷 갖다 댄다. 지극히 평범한 8개월 임신부의 D라인은 아름답기보단 짠하다. 키 158cm, 몸무게는 비밀. 짠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커피 마시러 가는데 아무렇게나 입고 갈 수 없다. 요즘 동네에 마음에 드는 카페가 생겼다.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니어서 사람들이 많지 않다. 아주 상냥하고 풋풋한 여사장님이 계시는데, 그분께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건 아니다. 그저 자기만족이다.


집을 나서는 내게 남편이 말한다.


"라떼를 마시러 가는 자의 자세로군!"


그러고 보니 이렇게 잠깐 외출을 해도 마음에 드는 옷이나 아이템을 장착해야 하는 건 내 오래된 습관이다.


또, 어느 순간부터 주말 하루의 패턴이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간다. 매우 규칙적으로 말이다.


그동안 나 자신이 익숙한 것을 지루해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모험을 즐기고, 새로운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라 여겼다. 맞다. 20대까지는 아니, 결혼하기 전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분명 그러했다.


혈기왕성했던 20대에는 스스로를 '경험주의자'라 불렀다. 이왕 세상에 태어난 것 많은 것을 겪어보고 싶었다. 더군다나 꿈이 작가이니, 모든 경험이 자산이 될 것이라 믿었다. 나쁜 경험도,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들도.


그래서 20대의 나는 많이 무모했다. 주변의 걱정을 많이 받았다. 사이비 종교 캠프에 잡혀 갈 뻔도 하고, 영화처럼 탈출하기도 했다. 지나고 나면 위험천만한 순간인데도 그때 무용담처럼 경험들을 떠들곤 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경험주의자'가 아니라 경험주의자라 칭하며 내가 겪은 일들을 합리화하고 있었다.


실제로 어린 시절의 결핍이 작가로서의 큰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동화를 쓰며 그 시절 나를 보듬고, 나와 같은 아이들을 위로해줘야겠다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좀 더 등을 굽혀 낮은 곳을 보게 되었으니까.


그러나 모든 작가가 모두 아프고 가난(마음과 경제적으로 모두)하고 슬픈 유년시절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수는 아니지만 그 사람을 만들어온 특수한 고유의 경험은 분명 중요할 것이다. 행복과 기쁨의 경험도 마찬가지겠지.


사실 '경험'의 양이나 질은 중요치 않을 것이다. 그 경험을 통해 얼마나 민낯의 자신과 마주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닐까.


이곳, 동네 카페 2층 구석 창가 자리.

나 혼자다. 적막의 여유.

생각이 절로 샘솟는다.


새 작품을 구상하다 장 보러 갈 계획이다. 규칙적인 일상은 매우 중요하니까.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 되어간다.


B612_20200202_173642_180.jpg 오늘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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