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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꿀 Nov 18. 2021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은유카드] 가위, 목도리

오늘의 단어: 가위,  목도리
*3~4개월 전에 썼다가 공개하기 싫어 저장만 해둔 글을 내보냅니다. 왜냐고용? 브런치 결산 받으려면 글을 발행하라고 해서요 흐흐 *


어제도 가위에 눌렸다.


금요일, 어린이집이 휴원하면서 3일 간의 주말을 보냈다. 혼자서 아이 둘을 돌볼 자신 없어 동네 언니랑 함께 공동육아를 했다. 함께한 덕분에 '덜' 힘들긴 했지만 그런데도 순간 순간 힘에 부쳤다.


온전히 육아 탓이 아니란 걸 안다. 최근 아이들을 재우고 바로 잠드는 게 아쉬워 남편과 맥주 한 잔 하며 넷플릭스를 시청했다. 그러다보니 새벽에 잠들기 일쑤였고, 피곤한 몸으로 모든 일상을 소화하고 거기다 오로지 노동이 전부인 육아와 가사를 하려니 체력이 바닥날 수 밖에.


일요일, 아이 둘을 데리고 동네 언니네 집에 가있는 동안 남편은 집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낮에 남편이 자면 저녁엔 내가 잘 수 있으니까 기꺼이 시간을 내어줬다.



드디어 밤! 남편이 아이 둘을 데리고 거실에서 자고 나혼자 안방의 드넓은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잠에 빠져들자마자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쾌한 기분. 이어서 몸이 뻣뻣히 굳으며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듯한 무거움.


제길! 가위다!


학창시절부터 종종 가위에 눌렸다. 심한 경우에는 위에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는 듯한 '유체이탈'도 경험한다는데(우리 남편의 경험이다) 나는 다행히 그저 몸이 굳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어제는 좀 달랐다. 뭔가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면서,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서둘러 주기도문을 외웠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잠결에 주기도문이 전부 생각날 리는 없고, 강조해서 반복하는 대목이 있다. 바로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다. 귀신, 더군다나 잠자리에서 사람을 괴롭히는 귀신은 분명히 악한 존재일테니까.


주기도문을 반복해 외우며 발버둥 쳤더니 드디어 가위에 풀렸다.


무서운 것 보다 푹 못 자는 게 낫지


가위에 눌린 침대에서 혼자 자려니 너무 너무 무서워 거실에 있는 가족들 품에 파고들었다.




나는 귀신이 있다고 믿는다. 귀신이 없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기이한 일들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귀신을 만난 이들을 그저 심지가 약한 사람으로 몰고가고 싶지 않다. 더군다나 나는 작가니까, 더한 존재까지 고려해야 창작이란 걸 한다.)


심지어 성경에도 귀신의 존재는 기록돼 있다. 중요한 건, 귀신을 믿는다는 게 아니라 귀신이 있다는 걸 믿는다는 거다.  '그래, 귀신 너희들도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겠지'하는 단순한 존재 인정 정도.


반면, 귀신이 누구를 지켜준다거나 귀신이 사람을 해코지 하니 굿을 하든 뭘 하든 방법을 동원해 달래야 한다는 말은 절대 믿지 않는다. 사람은 한없이 약해지기 쉬운 존재다. 귀신은 그런 약한 틈을 파고든다. 은유적 표현을 하자면, 귀신에게 혼을 내어주는 순간 귀신이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알고싶다 1270회


지난 토요일,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며 더욱 그런 생각을 했다. 1270회에서는 청양에서 발생한 모녀의 죽음을 다뤘는데 사건이 미스터리했다.


올해 1월, 청양의 하천에서 모녀의 시신이 발견됐는데 둘다 옷을 벗은채였다. 부검 결과, 저체온으로 인한 사망으로 범죄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즉, 모녀가 하천에 직접 들어가 추위까지 참아가며 죽었다는 뜻인데 왜 그랬을까?


CCTV를 살폈더니 괴상한 장면이 포착됐다. 모녀가 집에서 나와 길을 걷다가 멈추고, 다시 걷다가 멈추길 반복한 것. 그러다 대뜸 마을의 한 나무에 기어오르는 것이었다. 사건은 타살 혐의없이 종결될 참이었지만, 왜 이상한 행동을 했는지 미스테리한 죽음의 전말은 밝히지 못한 상황이었다.


취재 결과, 엄마는 죽기 전에 신내림 굿을 받았다고 했다. 가위에 눌려 귀신을 본다는 딸이 걱정된 엄마는 스님을 소개 받았고, 엄마가 신내림을 받지 않아 딸에게 이어졌다는 말에 굿을 벌여 귀신을 받아들인다.


 후 엄마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내며 빙의하는 등 이상한 모습을 보였고 급기야는 딸과 함께 승천했다가 내려오겠다며 그런 일을 벌인 것이었다.



의사들은 13세 아이라면 충분히 귀신을 봤다고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심리적 문제이거나 환상을 보았을 수도 있다고. 그러나 당장 신내림을 받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스님의 말을 듣는 순간, 귀신을 믿게 되어버렸을 것이고, 그게 삶의 전부이자 생사를 좌지우지하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실제로 생을 마치게 됐다)


방송을 보며  다시 한번 느꼈다.
인간은 얼마나 약한가.
그리고 어른은 나쁘다.



돌이켜보니, 가위에 눌렸을 때는 몸이나 마음이 약해졌을 때였다. 기가 해지는 그 순간 몸도 경직된다. 의사들이라면 아마도 피로도가 쌓여 생기는 스트레스라 진단할 것이다. 종교적으로는 귀신 같은 존재에 의해 가위에 눌렸다고 표현할 것이고(모든 종교가 그렇게 해석한단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순간마다 나는 귀신 보다는 내 자신을, 인간을 믿겠다 결심 한다. 귀신이 아닌 God, 신을 믿겠다 다짐한다.


가위에 눌리는 건, 지금은 쉬어가야 할 때라는 신호다. 쉬자. 마음이든 몸이든, 조금 쉬고 내달리자. 그렇게 다짐하고 나면 조금은 괜찮아지는 것 같다.


추운 겨울에 목도리를 둘러 온기를 되찾듯이, 가위에 눌렸을 때 내 마음에 목도리를 둘러 다시금 온기를 주어야겠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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