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트리피케이션

을지로3가 '힙지로'에 대한 소회

by energypaper

내 첫 직장은 이문세의 '광화문연가'가 생각나는 덕수궁 돌담길 근처였다.


대학을 갓 졸업한 풋내기 직장인에게는 퇴근 후 선배들에 이끌려 이 술집 저 술집을 전전하던 것이 본격적인 사회생활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졌지만 교보문고 광화문점 뒷골목 어딘가에 존재했던 피맛골의 이름 모르는 대폿집들과 서린, 우정, 유정, 이강순 등 낙지볶음집들에서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던 기억이 아련하다.


당시에는 공채문화가 있다 보니 회사 인근에서 식사를 하든 저녁 술자리를 하든 같은 공간에서 선배들과 마주치게 되면 늘 술값을 대신 계산해 주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문화가 존재했었다.


'네가 선배가 되면 똑같이 베풀라'는 가벼운 부채 의식과 밤이 되면 다소 풀리는 경직된 회사의 위계질서 등등에 이끌려 매일 밤을 선배들과 정동, 서소문동, 소공동, 무교동 일대를 전전하고 다니다 지금의 을지로3가까지 넘어갔던 기억이 있다.


당시의 을지로3가(지금의 힙지로라 불리는)는 공구상가의 밥집과 퇴근 후 소주 한잔 기울이는 대폿집이 전부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후 강남 소재의 직장으로 옮기게 되면서 이 나와바리를 벗어나게 되었으나, 늘 만남의 자리는 이 언저리를 벗어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15여 년 전 우연히 누군가에 소개로 지금은 없어진 '우화식당'을 시작으로 을지로3가 골목을 본격적으로 다시 드나들게 되었다.



슬래트 처마밑에 코다리를 널어놓은 독특한 외관과 네다섯 개 테이블의 좁은 실내 탓에 자리가 없으면 가로등 밑 야장에서 달을 보며 한잔 하는 낭만(?)도 누렸었다.


엄청난 가성비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매운 코다리찜과 소고기전. 그리고 까칠하지만 정이 깊던 가게 주인장 할머니. 오랜 세월 좁은 부엌에서 서서 일하다 보니 허리와 팔이 아파 재개발이 되면 자식들에게도 이 힘든 삶을 물려주지 않고 접으시겠다더니 이제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계시나 모르겠다.




피쳐폰의 구린 화질로 대충 찍어 맛없게 보이나, 극강의 매콤함에 보리밥까지 비벼먹게 되는 마성의 가성비(17,000원) 코다리찜



이 우화식당을 필두로 노가리 골목의 원조 을지OB베어, 지금은 골목을 단일 프랜차이즈거리로 만들어버린 만선호프, 건너편 뮌헨호프, 감자국의 동원집, 냉삼의 전주집, 원조녹두밭, 길 건너 양미옥 뒷골목의 돼지갈비 안성집(육개장 맛집), 드럼통 등심의 통일집(된장맛집), 곱창전골의 석산정, 김치찌개 은주정, 소곱창 우일집, 냉삼의 한도삼겹살, 문경등심, 동경우동, 굴짬뽕의 원조 안동장, 을지오뎅(도루묵구이), 군만두와 오향장육의 오구반점, 물갈비 전주옥 등등. 이 동네는 파면 팔수록 맛집의 천국이었다.


대개 위생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은 주방과 끈적이는 식탁, 재래식 화장실이 주는 불편함들이 있었지만

그 불편함을 상쇄시키는 가성비와 비라도 내리면 홍콩 누아르가 연상되는 이 동네 골목 분위기. 특히 요즘같이 선선한 가을 저녁에는 가로등 불빛아래 야외 테이블과 어우러지는 낭만에 젖어 이 골목 저 골목의 숨겨진 노포(老鋪)를 찾아다니는 방랑식객이 되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슬금슬금 이 동네에 청춘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노가리골목을 소개한 맛집 탐방 프로그램들이 한몫했다는 설도 있고, 외국인 게스트하우스가 한몫을 했다는 설도 있다) 자주 들르던 단골집은 어느새 대기줄이 생기는 맛집이 되었고, 동네는 청춘들의 북적임과 소란함에 점점 낯선 동네가 되어갔다.


동네가 이른바 '레트로'열풍을 타고 뜨다 보니 비어있던 건물들에는 국적불명의 홍대 연남동풍의 가게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고, 임대료가 오르다 보니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 원조가게들은 하나둘씩 밀려 떠나갔다.

이젠 가성비도 좋지 않고 기다리면서까지 맛보아야 할 맛집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기존 단골들은 그 북적임과 소란함에 적응을 못하고 점점 이 동네의 언저리로 밀려나게 되었다.


'아마 내가 처음 이 골목을 들어섰을 때 이 동네 단골들이 느꼈을 낯선 불편함이 이랬으리라'.


이 기세는 을지로3가를 넘어 오른쪽으로는 4가, 5가로, 아래로는 충무로까지 조짐이 보인다.

'노포들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밀려나고 청춘의 분위기에 적응 못하는 노땅들은 노(老)트리피케이션으로 밀려난다'는 농담을 하면서 우리는 밀려 밀려 충무로 인근 인현동에 자리 잡았다.

당분간 우리의 서식지가 청춘들의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여기가 마지노선이다. 여기서 더 밀리면 남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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