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자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세는 머리서기(시르사사나)이다.
아사나의 왕이라고 불리는 이 자세는, 하고 못 하고로 초보와 고수가 갈리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10년 전, 처음으로 머리서기를 성공했을 때의 감각이 떠오른다.
온몸의 무게가 팔과 머리 위로 내려앉는 순간, 중력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고, 그 어지러움과 짜릿함 사이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몸의 중심을 느꼈다.
세상이 뒤집힌 자리에서 찾아낸 중심은 신선했다.
이제는 평평한 곳 어디에서든 머리로 서서 가볍게 올라갈 수 있다.
요즘에는 아침 조깅 중 반환지점에서 잠시 멈춰 2-3분정도 머리서기를 한다.
머리와 팔꿈치로 바닥을 누르며 발바닥이 공중에 떠있는 동안 조깅으로 피로했던 다리기 가벼워지고, 뇌로 가는 혈류가 증가되어 머리가 맑아진다.
역자세는 단순히 몸을 뒤집는 동작이 아니라 중력의 흐름을 뒤집어보는 경험이다.
평소 아래로만 쏟아지던 힘이 반대로 오르면, 척추 사이로 공간이 생기고 몸 전체가 위로 열리는 느낌이 든다.
잠깐의 역자세지만 몸속 에너지가 깨어나고, 다시 똑바로 서면 같은 하늘이 더 넓게 보인다.
사실 지난 10년 동안 내 요가 실력은 크게 늘지 않았다. 대단한 동작을 할 줄 알게 된 건 아니지만 몸은 분명 더 부드러워졌고 마음은 훨씬 단단해졌다.
요가는 내 몸만 바꾼 게 아니라 나를 지탱하는 축을 세워주었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중력의 흐름을 느끼는 방식이다. 예전의 나는 피곤하고 힘들 때 몸이 아래로 끌리는 힘에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런데 역자세를 자주 하면서 늘 같은 중력도 바라보는 방향을 바꾸면 전혀 다른 에너지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머리서기를 할 때는 중력이 나를 짓누르지 않는다.
오히려 팔꿈치와 정수리가 바닥을 단단하게 누르며 나를 세워 올린다.
평소라면 무게로 느껴지던 힘이 이 순간에는 기둥처럼 작용하면서 몸의 중심이 정렬된다.
이 감각이 반복되면서 나는 조금씩 깨달았다.
현실의 무게도, 하루의 피로도, 육아의 혼란도 사실은 나를 짓누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각도를 바꾸면 나를 단단하게 받치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육아도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힘만으로는 오래 가지 못한다.
어른의 시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잡아주려는 마음만 강하면 금세 지치고 막막해진다.
그래서 나는 육아에서도 흐름을 뒤집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먼저 말하기보다 아이의 말을 기다리고, 내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 아이의 감정을 먼저 받아들이고, 내가 만든 틀 안에 넣으려 하기보다 아이만의 모습을 인정한다.
각도를 조금만 바꿔도 아이의 모습은 달라진다.
엉뚱한 행동은 사실은 창의적인 사고의 과정일 수 있고, 고집으로만 보이던 성향은 자기 의지가 또렷한 아이의 힘일 수도 있다.
겁이 많고 소극적인 모습은 위험 감지력이 좋은 아이의 신중함일지도 모른다. 같은 아이에 대한 시선을 뒤집으면 다른 면모가 보인다.
마치 머리서기에서 중력이 반전되는 순간 몸의 중심이 새롭게 잡히는 것처럼.
시르사사나를 오래 유지하면서 알게 되었다.
균형은 힘에서 나오지 않는다. 미세한 흔들림을 인정하며 중심을 계속 찾아가는 태도에서 나온다.
짧은 역자세 속에서 숨을 깊게 하고, 내 중심을 다시 찾고, 마음의 공간을 회복한다.
육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완벽하려고 힘주는 것 보다 흔들리더라도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삶이 단단해지는 순간은, 거꾸로 서서 중심을 다시 맞추고, 몸과 마음의 흐름을 되찾는 연습에서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