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설레는 59세 임여사
드르륵, 드르륵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엔 엄마의 재봉틀 소리와 복작이는 동네 아주머니들로 가득했다. 그때 엄마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재봉사로, 주로 커튼이나 이불 커버, 테이블보 같은 홈패션 위주로 작업하곤 했다.
당시에 엄마가 얼마를 받고 그걸 팔았는지, 아니면 그냥 선물로 나누어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워낙 정 많고 여린 사람이라 본인의 노동비는 생각도 않고 원가에 넘겼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요즘도 그렇기 때문이다.
내가 자라고 아빠가 오랜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하면서, 엄마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그야말로 정말로 '돈이 되는 일'만 전념하다 보니 이 재봉틀 취미는 언젠가 사라졌다. 그러면서 우리 집을 울리던 - 그리고 내가 시끄럽다고 짜증 냈었던 - 달달달 재봉틀 소리도 어느새 잊혀 갔다.
드르륵, 드르륵
그러다 어느 날, 오랜만에 집에 갔더니 잊고 있던 소리가 다시 났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재봉틀과 실, 예쁜 천이 놓여 있었다.
딸, 나 노루발 하나 사 줘
가정용 부라더 미싱기였다. 거의 30년 만에 엄마 취미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커다란 원단이 아니라 알록달록 색감이 예쁜 리넨이었다.
엄마는 그걸로 고무줄을 넣거나 리본을 다는 등, '노루발'이 필요 없는 옷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노루발을 사달라는 이야긴 몇 번을 해도 "그게 뭔데?"하고 넘겨 듣다가, 내 옷을 하나 둘 만들기 시작하고 내가 그 옷의 주인공이 되다 보니 결국 사줄 수밖에!
그놈의 노루발이 뭔지 몰라서 물어보니 "오바로크 칠 때 쓰는 거야!"라며 밝게 말씀하셨지만, 아니 그 '오바로크'는 도대체 뭔데?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인터넷을 뒤져 주문해 줬다.
엄마, 우리 이걸로 돈 벌자
제법 점점 실력이 늘어가며 '공업용 미싱기' 타령도 어느 정도 하기에 그것도 사주겠다고 말했지만, 다행히(?) 엄마는 손사래 쳤다. 공업용 미싱기는 말 그대로 공업용이라 책상부터 맞춰야 하고- 해서 집에 둘 곳 없으니 괜찮다 했다.
그런데, 가만 보고 있자니 엄마 실력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녀 필터'가 씐 탓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예뻐서 어디 가면 이거 어디서 샀냐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엄마, 이거 B가 예쁘다던데." 하면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그럼 B 것도 만들어 줄게!" 했다. 이걸 보아하니 아마 30년 전에 커튼을 만들 때에도 엄만 원단 값이나 받았으면 다행이겠다 싶었다.
아무래도 이게 너무 아쉬워서, 스마트 스토어를 하나 차려줘 봤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변수로 스마트 스토어 문을 황급히 닫았다.
"어린이 단체복 60벌 주문할게요"
첫 주문에 어린이 단체복 60벌이라니!
아시다시피 우리 엄마는 작은 가정용 부라더 미싱기 하나로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가내 수공업을 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한 어린이집에서 단체복 60개가 한 번에 들어왔다.
일단, 주문이 들어왔다는 건 이게 꽤 괜찮겠구나라는 긍정적인 표시기도 했지만, 60이 다 되어가는 엄마에게 이런 고된 노동을 시킬 수는 없었다. 전화로 사정을 이야기하고 주문을 취소시켰다.
1:1 맞춤을 해야 하는 우리 집 노동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다. 그리고 생각했다. 스마트 스토어라는 오픈마켓 형식은 엄마의 취미와 맞지 않다.
엄마는 동네 친구들을 통해 알음알음 옷을 만들어주고 원단 값만 받기 시작했다. 특히, 어머니 연령층에서 체형이 다양한 점이 먹혔다. 키와 체구가 모두 커버 가능하니 생각보다 동네에서는 꽤 유명해졌다. 결국 이 '커뮤니티'와 '입소문'을 이용해 엄마가 돌파구를 찾았다. '밴드'였다.
갑자기 밴드에 초대 코드가 왔다. 이제 옷을 그냥 친구들과 보는 카카오스토리 말고, 밴드로 해서 뭔가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나 보다.
보고 있자니 꽤 귀여워서(?) 친한 친구들에게 링크를 보냈다. 붙임성 좋은 한 친구는 최근에 친해져서 엄마가 이름을 잘 몰랐던 친구였는데, 옷이 예쁘다고 댓글을 달자 엄마는 정말 모르는 사람이 가입한 줄 알고 메시지까지 보냈다. 그렇게나 설렜나 보다.
엄마 나이 59세. 우리 별당 마님이 즐거워하는 걸 찾으니 내가 다 설레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