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이브 팡라오를 통해 미리 예약해 놓은 픽업 기사님이 내 이름이 쓰인 종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당장 몇 시간 못 자고 다이빙을 나가야 하는 터라 서둘러 리조트로 향했다.
내가 배정받은 방은 6번 방이었는데, 도착해 확인해 보니 1년 전 그 방이었다.
다른 방들도 어차피 생긴 거야 똑같겠지만 괜히 더 반갑고 익숙한 기분.
아침식사 시간까지 5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얼른 자야지.
자고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가니 식사 공간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작년에 왔을 땐 큰 대회가 끝난 직후라 손님들이 많이 빠져나가 손님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엔 예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프리다이빙 동호회에서 단체로 온 두 팀이 있다고 했다.
외부 팀 사람들을 지나 요가장쪽으로 가니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동하 쌤과 상민 쌤, 상주 쌤, 고은 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 미처 이름은 기억 안 나던 센터의 고양이 두 마리도.
오랜만에 보는 거라 내 딴에는 퍽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쌤들은 마치 지난주 정도에 보고 오늘 다시 보는 익숙한 사람처럼 나를 대해줬다.
내 반가움에 비해 썜들의 반가움이 덜해 보여 약간 서운함이 들 뻔했지만,
이내 '아, 그래 이게 프리다이브 팡라오의 온도였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리핀 햇살 같은 뜨거움이 아니라 적당한 온기의 따사로움이 이곳의 온도였다.
사람도 공간도 그랬다.
호화로운 리조트는 아니지만 프리다이빙을 하는 데에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시설이었고,
사람들 또한 단 한 번도 서운 할 만큼 차가웠던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부담스러울 만큼 뜨겁게 다가오지는 않는 곳.
그 담백함이 참 좋았다.
고은 쌤은 나에게 몇 시간 자지도 못해 웬만하면 첫날은 좀 쉬엄쉬엄 풀장이나 이론교육만 진행하게 해주고 싶은데, 워낙 일정이 타이트해 그럴 수가 없다고, 강하게 키울 거라고 했다. 강사과정을 딱 7박 8일 오는 건 -월급쟁이에게 불가피한 선택이긴 했으나- 자칫 무리일 수도 있었다. 주어진 과제를 재수, 삼수 할 여유가 없었다. 더구나 나, 게으른 프리다이버, 는 한국에서 풀장 트레이닝이나 드라이 트레이닝 조차 하지 않았다. 1년 여만의 보홀이었고, 1년 여만의 바다였고, 1년 여만의 다이빙이었다.
아침으로는 늘 그렇듯 망고와 바나나, 오트밀과 양상추 샐러드, 모닝빵이 있었다.
오랜만의 바다 다이빙을 앞둔 터라 약간 긴장이 됐다. 먹는 둥 마는 둥 아침식사를 마치고
오랜만에 3mm 수트와 롱핀, 마스크와 스노클, 랜야드와 넥 웨이트를 챙겨 나왔다.
풀장에 들어가 웻슈트를 입으며 조금 들떴다. 적절한 긴장감과 설렘이 기분 좋았다.
강사 과정을 진행하시는 트레이너는 김동하 쌤.
일찌감치 보홀에 프리다이빙을 뿌리내린 강사이자, 우리나라에서는 프리다이빙이 매우 생소하던 2013년 KBS1 <다큐공감> '그랑블루, 바다로 간 사나이'에 출연하며 국내에 프리다이빙을 알린 인물이다. 작년 마스터 다이버 과정 때도 그렇고, 이번 강사과정에서도 프리다이브 팡라오를 선택한 것은 그와 그의 센터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이번에 나와 함께 강사 과정을 듣는 버디는 YR.
내가 도착하기 직전 레벨 4 마스터 다이버 과정을 끝낸 장기 투숙자였다.
체육교사인 그녀는 밝고 명랑한 성격이어서, 과정 내내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귀에 문제가 생겨 본인의 다이빙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불안함과 아쉬움을 내비칠지언정 그 기분이 남들에게 전염되지는 않도록 조절을 할 줄 아는 다이버였다.
그렇게 셋은 우리의 첫 다이빙을 나갔다.
Freedive Panglao
웻수트를 입은 다이버들이 바다에 도착해 뒤뚱뒤뚱 보트에 오른다.
프리다이브 팡라오 이름이 적힌 보트가 두 대 떠있다.
각자 배정된 부이에 따라 나누어 타고 입수지점으로 향한다.
가는 동안에는 뜨거운 햇살이 몸을 데우고 보트에 부서져 날리는 바닷물이 그 온도를 식힌다.
짭조름한 물이 쉴 새 없이 얼굴로 튄다. 입술을 한 번 핥고는 씩 웃었다. '바다다, 보홀 바다다!'
첫날 다이빙은 워밍업 겸 가벼운 과제들을 먼저 수행했다.
오랜만의 다이빙이라 호흡이며 이퀄라이징이 어떨지 몰랐다.
오늘은 그냥 오랜만에 귀를 적시는 정도로 하자 생각했는데
걱정에 비해서는 웜업 다이빙에 별 문제가 없었다.
나는 주로 웜업 다이빙으로 15m 행잉(hanging)* 한 번, 20m 행잉 한 번을 한다.
프리이머젼(FIM)**으로 천천히 내려가 목표 수심에 도착하면 왼손 엄지와 검지를 포개 줄을 잡고
그 두 손가락을 뺀 나머지 온몸에 힘을 뺀다.
눈을 뜰 때도 있고 감을 때도 있는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
눈을 뜨면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른 바다에 나 혼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고,
눈을 감으면 무중력의 우주 어딘가에 두둥실 떠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모두 고요하고 평화롭다. 정해진 시간은 없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컴퓨터를 보지 않는다.
2-3bar 정도의 부담스럽지 않은 수압이 느껴지고 약간의 음성부력이 몸을 당기는 느낌도 좋다.
컨트랙션(contraction)***이 느껴지면 반갑게 인사하며 달랜다.
'안녕, 오랜만이야! 아직 괜찮아. 조금 더 괜찮아. 오늘도 잘 부탁해!'
*행잉(hanging): 워밍업을 위한 다이빙 방식으로, 본인이 정한 적정 수심(본인 최대수심의 30% 내외)에서 하강로프를 잡고 매달린(hang) 채 시간을 보내며 본격적인 다이빙 전 물에 적응하는 행위
**프리이머젼(Free IMmersion, FIM): 하강과 상승 모두 하강로프를 당겨 다이빙하는 방식. 프리다이빙의 정식 수심 종목 중 한가지.
***컨트랙션(contraction): 무호흡 상태에서 호흡충동에 동반되는 수축 현상. 사람마다 시점과 증상, 정도에 차이가 있으나 주로 배와 가슴이 꿀렁꿀렁 요동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이 곧 산소부족을 의미하지는 않으므로 이로부터 오랫동안 더 안전하게 무호흡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Free Immersion
이 날 수행할 과제는 2분 동안 FIM으로 수심 30m를 천천히 다녀오기, 1분 30초 동안 CWT*로 30m를 천천히 다녀오기였다. FIM으로 30m를 내려가 컴퓨터를 보니 딱 1분이 돼있었다. 올라가는 데에는 1분 미만의 시간이 걸릴 테니 잠깐 바텀에서 쉬었다 올라가려고 캔디볼을 잡고 잠시 눈을 감았다. 올라가니 다이브 타임이 2분 34초가 돼있었다. 생각보다 바텀에서 오래 매달려 있었나 보다. 행잉 좋다 으헤헤.
*CWT(Constant WeighT): 하강과 상승 모두 핀(fin)을 이용해 다이빙하는 방식. 목표 수심에 도달해 턴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하강로프를 잡을 수 없다. 하위 종목으로는 핀을 착용하지 않고 하는 CNF(Constant weight No Fin), 바이핀을 착용하는 CWTb(Constant WeighT with bi-fins)가 있다.
두 과제를 모두 마치고 나서는 CNF 맛보기 연습을 했다.
강사 과정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노핀(no fins) 종목을 해보지 않았던 터라 핀을 벗고 부이에 매달려 있는 것 자체가 어색했다. 발가락에 물이 닿는 느낌이 좋으면서도 생소했다.
동하 쌤은 많은 강사후보생들이 막히는 부분이 두 가지 노핀 과제(DNF* 50m, CNF 20m)라고 했다.
일단 CNF는 덕다이빙으로 수면에서 내려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스트로크 중간중간 이퀄라이징을 하며 발차기와 리듬을 맞추는 것도 어려울 수 있고, 양성부력이 강한 0-10m 구간을 스트로크와 발차기로 뚫고 내려가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고.
*DNF(Dynamic No Fin): 프리다이빙의 대표적인 인도어 종목인 다이나믹(Dynamic, DYN)을 핀 없이 수행하는 종목
첫 연습인 만큼 상승만 연습해 보기로 했다.
FIM으로 15m 정도만 내려가서 스트로크와 발차기를 이용해 상승.
스트로크를 이용해 상승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발차기를 할 때 추진력이 생기기는커녕 제동이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발차기로 추진을 얻는 건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노핀과의 첫 만남. 꽤나 재미있었다.
+)
다이빙엔 문제가 없었는데 다이빙 컴퓨터*에 문제가 생겼다. 몇 년 전 꽤나 비싼 돈을 주고 산 Garmin의 Descent MK2i 제품인데, 강사과정 첫날 고작 몇 번의 다이빙 후에 '다이빙 금지. 수심계 오류'라는 표시가 떴다. 우씨, 한국에서 풀장이라도 좀 다녔으면 미리 알 수 있었을 텐데, 1년 가까이를 스마트워치로만 써오다 오랜만에 바다 다이빙을 하니 보홀에 와서야 수심계 오류가 나타난 거다. 다음 다이빙 때는 센터의 렌탈 컴퓨터를 차기로 했다. 강사과정의 다이빙들을 내 컴퓨터에 기록하지 못한다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이빙 컴퓨터: 다이빙 시 수심, 다이빙 시간, 수면휴식 시간, 수온, 다이빙 위치 등 여러가지 정보를 표시해주는 손목시계 형식의 보조장비.
오후에는 이론수업을 시작했다. 강사과정은 실기 못지않게 이론이 중요하다.
나는 취미로 프리다이빙을 시작했고, 강사가 된 지금도 여전히 프리다이빙은 나에게 취미 영역에 속하지만
어찌 됐든 강사가 된다는 것은 돈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다이빙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고,
그것에 대한 책임감이랄지 무게감이 첫 이론 수업에서 새삼 실감이 났다.
교육에 앞서 동하 쌤은 AIDA1~4, 그리고 강사과정 이론에 해당하는 모든 메뉴얼과 PPT슬라이드뿐 아니라 교육에 필요한 의료진술서, 면책동의서, 과정 별 이론 시험지 등 일체를 보내줬다. 초급 레벨의 이론 매뉴얼과 시험지를 보며 5년여 전 프리다이빙을 처음 배우던 시간이 떠올랐다.
이제 곧 내가 누군가에게 프리다이빙의 시작을 열어줄 수 있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강사과정 이론의 범위는 AIDA1~4 과정의 모든 내용을 포괄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타인에게 교육하는 과정에 대한 교육이 동반된다.
교육에 대한 교육. 그렇기 때문에 강사과정은 매일매일 특정 주제에 대한 발표 과제가 주어진다.
해당 내용을 숙지하고 그걸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거다.
특정 주제를 어떤 과정의 교육생에게 가르치는지에 따라 범위와 수준을 다르게 가르쳐야 한다는 점이 중요했다.
내가 오기 전 이미 일주일 정도 연속으로 다이빙을 한 YR의 귀에 문제가 생겨 내일은 풀장 교육을 하기로 했다. 나는 바다에서 하는 다이빙을 더욱 좋아하는 편이라, STA*과 DYN은 별로 좋아하는 종목들이 아니다. 그래도 과정에 포함되어 있으니 언젠간 하고 지나가야 하는 과제들이다.
*스태틱(STA): 제한수역(또는 통제 가능한 개방수역)에서 숨을 참는 시간을 겨루는 프리다이빙 종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