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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영 Aug 04. 2022

사과

장마와 사과

요즘처럼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이면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 있다. 


어릴 적 내가 다니던 학교 뒷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금호강 큰 줄기의 강이 있다.  그 주위로는  과수원이 많았다. 과수원에는 배나무도 있었지만 유난히 사과나무가  많았다.


장마철 바람이 세게 불고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과수원의 사과가 떨어져 강줄기를 따라 둥둥 떠 내려왔다. 그럴 때면 나는 주인집의 연배가 비슷한 동생이랑, 친구들과 자루를 들고 사과를 주우러 강가로 갔다.


장마기간이라 여전히 비가 내렸지만 우리들은 우산을 쓸 생각도 하지 않고 비를 맞으면서도 웃으며 즐겁게, 열심히 사과를 주웠다. 너무 열심히 주웠다.


내기를 한 것도 아닌데 서로 자루 가득 사과를 채우려고 친구가 강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도 모르고 주웠다.

혼자 허우적대던 친구는 다행히 별일이 없었고,  위험했던 그 순간은  사고 당사자가 영웅담처럼 우리에게 이야기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위험할 수도 있는 사과 줍기, 하지만 우리는 해마다 비가 많이 내려 사과가 떠다니는 때가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루를 들고 강가로 갔고, 그렇게 또 사과를 주워왔다.


자루 한가득 주워온 사과는 깨끗이 씻어 어른들이 삶아 주셨고 동네 이웃들과 나누어 먹었다. 그 시절 삶은 사과는 우리들의 최고의 간식이었다.


지금 아무리 크고 상품의 사과를 먹어도 그때 그 시절의 사과 맛은 찾을 수가 없다. 친구들과 함께여서 좋았고, 없던 시절 나눠 먹어서 더 맛있었던 '추억 듬뿍 사과 맛'이라 지금의 사과는 더 이상 그 맛이 아닌가 보다.


이렇게 어린 시절의 추억이 좋아서 일까? 지금도 사과를 과일 중 제일 좋아한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화가 나있는 나를 보면 슬쩍 나가셔서 “우리 딸내미, 집에 사과가 없어서 화났나 보네” 하시며 직접 사 온 사과를 건네주셨다. 술을 좋아하신 아버지라 좋은 추억보다는 속상한 추억이  많지만, 나의 추억 속 사과는 아버지와 좋은 추억으로 남아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한다.


몇 해 전 검사를 통해 사과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포기할 수 없는 사과, 나에게 사과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추억'이다. 약을 먹어가면서도 사과를 고 있는 나는 사과를 먹으며 행복했던 그 시절로의 추억 여행을 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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