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종로에서 만난 오빠

우연처럼 시작되었지만, 이별은 말 없이 찾아왔다.

by 애나 강


어느 여름날, 종로에서 만난 오빠

가끔, 아주 가끔…
문득 아무렇지 않은 날, 아무 이유 없이
기억 속 먼 풍경 하나가 마음 한켠을 스친다.

스무 살, 한창 풋풋하던 시절.
친구들이 단체 소개팅을 하자며 설레발을 쳤다.
사실 나는 이런 자리가 어색했다. 낯선 사람과 마주 앉아 서로를 가늠하는 그 공기가 불편했다.
하지만 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따라나섰던 날, 장소는 종로의 한 롯데리아였다.
넓은 매장, 시끌벅적한 분위기. 기대는 없었지만 묘하게 긴장이 되던 순간이었다.

다들 자리에 앉아 인사를 나누던 중, 누군가 한 명이 늦는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첫인상은 차가운 도시 남자.
말수도 적고, 표정도 무뚝뚝해서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시선이 갔다.
내가 고른 소지품이 그 오빠의 것이었다는 사실이, 묘한 우연처럼 느껴졌다.

그날은 짧은 대화만 나누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며칠 후 친구들로부터 단체로 또 한 번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이번엔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다.
그리고 다시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 오빠는 나보다 한 살 많았다.
나는 그를 “오빠”라고 불렀고, 그 호칭 하나가 거리감을 부드럽게 녹였다.
명동에서의 첫 데이트가 아직도 선명하다.
북적이는 거리, 분식집의 소박한 식사, 그리고 명동성당.

나는 무교였고 종교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성당 안에 들어가 맨 뒷자리에 앉아 오빠의 모습을 바라보던 순간이 기억난다.
성호경을 긋고 묵묵히 기도하는 모습이 이상하게도 든든하고 진중해 보였다.
아마도 그 순간, 조금은 마음이 더 깊어졌던 것 같다.

성당을 나와 걷던 길, 구두 매장 앞에 멈춰섰다.
오빠가 조심스레 말했다.
“금강 티켓이 있는데, 구두 하나 선물해줄까?”
농담 반 진심 반의 말투.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럼 구두 받고 도망갈지도 몰라요”라고 했고,
오빠는 그냥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받지 않은 구두,
받지 못한 마음.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나는 조금 설렜고 조금은 서운했다.
그리고 동시에, 괜히 도망갈까 봐 무서웠던 것도 같다.

그 후로도 우리는 가끔 단둘이, 때론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몇 달을 함께했다.
조금씩 가까워지고, 조금씩 익숙해지고,
조금씩 좋아하게 된 그 시간들.

그러던 어느 날, 연락이 뚝 끊겼다.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황당했고, 믿기지 않았다.

알고 보니 부모님이 갑작스럽게 호주로 유학을 보내기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사라졌다.
작별도, 안녕도 없이.
내게 남은 건 맥 없이 꺼진 휴대폰 화면과 멍한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몇 달은 멍하니 지냈던 것 같다.
다시는 연락이 없었고,
나는 나대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조금씩 그를 지워나갔다.

시간은 약이라는 말이 맞다.
결국 나도 나만의 삶을 살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또 다른 사랑을 했으며,
지금의 평범하고도 소중한 하루들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문득, 아주 가끔…
그 시절이, 그 사람이, 그 오빠가 생각난다.

가끔은 궁금하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쯤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결혼을 했을까? 아이가 있을까?
명동성당을 여전히 찾고 있을까?

내게 그는 처음으로 '조금 진심을 품었던 누군가'로 남아 있다.
만약 다시 마주칠 일이 있다면, 가벼운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넬 수 있을까?
"그때… 잘 지냈죠?" 하고.

물론, 세월이 흐른 지금
서로의 삶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겠지만,
그때의 우리는 분명 진심이었고
서툴지만 진짜였다고 믿는다.

혹시라도, 다시는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 시절의 추억 하나쯤은,
내 마음 어딘가 따뜻하게 남아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
그 오빠는 잘 살아가고 있겠지.
그렇게 믿고, 나도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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